시아버지는 경제관념이 조금... 뭐랄까... 무너져있는 사람이었다.
스무 살에 현재의 우체국의 전신인 체신부 금융담당을 하면서 너무나 큰돈을 만지다 보니 작은 돈에 무뎌진 걸까
아니면 사업을 한다는 형님 때문에 진 빚 때문에 그를 만회하려 '한방'을 노리다 보니 큰돈만 찾아서일까
여하튼 아버님 폰을 보니 카드론과 각 금융권으로부터의 이자 연체 독촉 문자와
시아버지가 관리하시던 산과 건물 주인으로부터 빌려간 돈은 보증금에서 깎고 돌려주겠다는 전화를 받아야 했고,
사무실 정리를 하다 보니 요구르트 아줌마가 찾아와 시아버지께서 드시고 정산 안 한 13개의 음료값을 받으러 온 것부터
시아버지 사시던 아파트 6층 아줌마가 개인적으로 꿔준 돈을 받으러 오는 등
온갖 빚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시아버지뿐만 아니라 원래 사람이 죽으면
돈 준다는 사람은 하나 없어도
돈 받으러 오는 사람은 줄 선다는 옛말이 있긴 했어도
막상 내가 실제 겪어보니
장례식 때의 감성적인 애도는 아주 오랜 옛일처럼 느껴지고
현실은 한정상속에 관한 서류를 떼는 일과
시아버지 사무실을 치우는 폐기물 처리 비용과
인터넷 폰 티브이 등등을 해지하며 또 드는 비용 등
고인의 삶에 대한 정리 또한 돈이었다.
돈...
너무 자주 말하면 천박해 보이는 듯해서 조심스러우나
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이토록이나 사람을 옭아맬 수 있는 것이 있나 싶다.
그래도 신랑은 주말에 골프 약속을 잡고,
나도 오늘 날씨가 좋아 지인들과 커피숍에서 약속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갔다 오고 친구들과 논다.
산 사람은 이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시아버지께서 받을 돈이 있다 해도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산 사람의 말만으로 돈은 인출되고 입금된다.
예전에는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란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죽은 사람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땅에 묻히면 그만이지만
산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고, 돈을 벌고, 자신이 먹고 살 걱정을 하며 노력해야 하니
산 사람이 더 고생이지 않을까? 했는데
시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면 이젠 좋은 거 먹으러 다니고, 코로나 시국 끝나면 좋은 데로 놀러 다니시고, 손주들 커가는 모습 지켜보며 축하할 일도 많을 텐데 싶으니
진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란 말이 이해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