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넘어서는 예술적 위대함은 정당한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1919)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의 전기에서 암시를 얻어서 쓴 소설로서 이 작품으로 그의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대강의 줄거리. 주인공 증권 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갑자기 부인과 자녀를 남겨두고 혼자 파리로 가 그림을 그린다. 파리에서 알게 된 더크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 예술적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스트릭랜드가 아프자 그를 집으로 데려오고 더크 스트로브 부인(블란치 스토로브)은 스트릭랜드를 간호하다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된다. 스트릭랜드가 블란치에게 흥미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자살한다. 스트릭랜드는 타이티에서 17살 아타와 결혼하나 스트릭랜드는 나병(문둥병)에 걸린 후 몇 년 뒤 벽면 사방에 그림을 그린 후 죽는다. 스트릭랜드 부인과 그 자녀들은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걸어두고 행복해한다.
책 제목인 <달과 6펜스>는 이 책에 전혀 언급 전혀 없지만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킨다.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지상의 비도덕적인 삶(6펜스 측면)과 예술성 추구(달)를 언급하려는 것일 것이다.
그의 유미주의(Aestheticism)적 태도는 '달과 6펜스'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났는데, 그가 스트릭랜드를 통해 유미주의의 주요 특징인 '위대한 예술이 예술가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지는 쉽게 동의되지 않는다. 스트릭랜드의 예술 작품의 위대함이 블란치(블랑쉬)를 다시 살리지도 않으며, 더크 스트로브의 진정한 존중에 화답하지도 않는다. 다만 스트릭랜드 가족의 자기합리화에만 기여했을 뿐이다.
즉 위대하다고 해서 예술이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지 않는다. 고통은 그냥 고통으로 남는다.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영국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이다.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의 고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어머니가 죽고, 2년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작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독일에 유학한 뒤 런던의 의과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작가가 될 뜻을 세웠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다가 첩보 부원이 되었으며, 1917년에는 중요 임무를 띠고 혁명 하의 러시아에 잠입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의 유미주의적 태도는 '달과 6펜스'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났는데, 이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의 전기에서 암시를 얻어서 쓴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그의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는 긴 생애를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장편 '과자와 맥주(1930)', '극장(1937)', '면도날(1944)' 등과 단편집 '나뭇잎의 하늘거림(1921)', 희곡 '순환(1921)', '윗사람들(1923)과 자서전적 회상 '써밍업(1938)등이 있다.
외젠 앙리 폴 고갱 (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1903)은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도예가, 작가로, 주로 후기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 그는 생전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인상주의와는 구별되는 실험적인 색채와, 종합주의 양식으로 후대에 인정받았다. 고갱의 화풍은 클루아조니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표작들의 주제는 원시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고갱은 처음에는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고갱은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2년의 금융 위기는 그의 주식 중개인 경력에 큰 타격을 주었고, 결국 전업 화가로 전향하게 되었다. 고갱의 미술 교육은 주로 독학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식 아카데믹 교육보다는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그의 미술계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주요 인상주의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피사로는 고갱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그를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과 기법들을 소개했다.
그는 1880년대 초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지만, 곧 더 대담한 색채 사용과 전통에서 벗어난 주제를 특징으로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브르타뉴와 마르티니크에서의 작업은 원주민 생활과 풍경을 묘사하려는 그의 성향을 보여주었다. 1890년대에 고갱의 예술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타히티섬에서 서구 문명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으면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갱의 타히티와 마르키즈 제도에서의 말년은 건강 문제와 재정난으로 점철되었다.
그 시기의 그의 그림들은 생생한 색채와 상징주의적 주제를 특징으로 하며, 사람, 자연, 그리고 정신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로 유럽 관객들 사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고갱의 예술은 그의 사후에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아방가르드와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와 같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와의 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화자는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를 통해 예술가의 위대함과 인간적 결함이 반드시 함께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화자는 여류작가 로즈 워터퍼드를 통해 스트릭랜드 부인을 소개받고 남편인 증권 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해 알게 된다. 화자는 스트릭랜드 부인 집으로 가서 남편이 어떤 여자와 파리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듣지만, 스트릭랜드는 혼자 파리의 허름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 화자의 친구 더크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 예술적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스트릭랜드가 아프자 그를 집으로 데려오고 더크 스트로브 부인(블란치 스토로브)은 스트릭랜드를 간호하다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된다. 스트릭랜드가 블란치의 누드를 다 그리고 나니 흥미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자살한다. 화자는 스트릭랜드가 오랜 방랑 끝에 머문 타이티로 간다. 스트릭랜드는 타이티에서 17살 아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만족하게 산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나병(문둥병)에 걸린 후 몇 년 뒤 벽면 사방에 아름답고 음란한, 신비로운 그림을 그린 후 죽는다. 화자는 스트릭랜드 부인과 그 자녀들을 만난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걸어두고 행복해한다.
7, 솔직히 말해서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사람과 다른 점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첫 문장.
주인공을 계속 지켜보면서 보통 사람과 다른 위대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7, 때를 잘 만난 정치가나 성공한 군인의 위대성은 그 사람의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람 자체가 가지는 특질이라 할 수 없다.
주인공은 그 시람 자체가 가지는 특질에서 위대성이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8, 그의 결점은 장점을 보완하는데 필요한 것
보통은 장점이 결점을 보완하는 것 아니었나? 주인공의 장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일까?
8,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가장 대수롭지 않은 것조차 기이하고, 복잡하고, 고뇌에 가득 찬 개성을 보여준다.
이러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매력은 일반적인 것에서 개성이 나올 때 이끌린다.
9,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영혼의 미술관>에서 저자의 말이 연상되는 문장이 나온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26p) (...) 예술에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그런 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과 소통해 주는 능력이 있다.(47p)"([독서] 문학 : 영혼의 미술관)
이 섬머싯 몸의 글을 읽고 알랭 드 보통이 생각을 확장한 것이 아닐까?
16. 정신 수양을 위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는 게 좋다.
세네카의 가난 연습과 얼마 전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의 '행복비밀 3'에서 언급한 '강력한 행동을 끌어내는 7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독서] 자기계발 : 타이탄의 도구들)
그러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과 전면적으로 대비되는 이 문장을 저자가 미리 제시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트릭랜드처럼 살지 못하는 다수의 우리 같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으려 한 것이 아닐까?
27. "똑똑한 남자가 어디 교양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나요"
화자가 교양 있는 스트릭랜드 부인이 몰취미한 남편과 결혼하는지 물음에 대한 미스 워터퍼드의 답변이다. 점점 스트릭랜드의 따분하고 미술을 모를 것 같은 몰취미함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2, 문명인이란 참으로 이상한 관습을 생각해 내어 짧은 인생을 이런 따분한 일에 낭비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화자는 스트릭랜드 부인이 초대한 사교 모임에 대한 비판을 한다.
39, 남자가 망신을 당하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나이의 한계는 서른다섯이라 생각
저자의 시대의 일반적인 생각인지, 화자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35세라는 한계는 너무 적게 잡은 것 같다.
56, 점심시간 전에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일이 별 효과가 없는 법이다.
이 말은 심리학적으로 다소 적합하다. 실제로 판사들이 점심 직전에는 가석방 승인률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연구를 들은 바도 있다. 그리고 저녁에는 사람이 좀 더 감성적으로 변한다고 하니 감정에 호소할 상대방이 있으면 반드시 저녁에 하기로 하자.
62, 죄인이 자기 죄를 선선히 고백해 버리면 훈계자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 <밀양>(2007)의 원작인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 죽인 살인자를 그 아이의 엄마는 교회 다니기를 권유받고 죄인을 용서하리라는 마음을 먹지만, 이미 그 죄인도 예수를 영접받고 마치 용서를 받은 듯한 모습에 결국 그 엄마는 자살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주님에게 용서의 기회를 빼앗기고 내가 다시 어떻게 그를 용서합니까?'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69,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스트릭랜드의 이 말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하는 많은 상황을 설명해 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헤엄을 치지는 못해도(뭔가 그 일을 잘하지 못해도) 갑자기 물에 빠지는 상황(그 일을 꼭 해야겠다는 강력한 끌림이 있는 것)에서는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77,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
82, 마음이란 이성으로도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는 법
90,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102,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112, (스트릭랜드) "난 과거를 생각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
영원한 현재. 현재를 계속 살고자 하는/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현재는 늘 영원하고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120, 스웨덴 사람은 혼란기에 슬쩍 횡재를 하는 데 비상하다.
저자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스웨덴 사람들은 서머셋 몸에게 매우 화를 냈을 것이다. 당시 스웨덴은 군사 강국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며, 식민 지배의 주체도 아닌 중립적이고, 조용하고, 계산적인 국가라는 이미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스웨덴인의 부탁으로 반대 이미지(혼란 속에서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는 인간)라 할 수 있는 스트릭랜드가 이백 프랑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다는 설정이다. 묘하게 두 성격을 대비하고자 하는 의도적 일반화인 듯하다.
136, 목신 마르시아스(Marsyas)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숲의 정령 사티로스의 하나이다. 자신의 피리 부는 솜씨에 도취되어 아폴론 신과 연주를 겨루었다가 패해 산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참혹한 벌을 받았다.(naver 지식백과)
197, 셰익스피어도 이아고를 고안해 냈을 때, 달빛과 싱상의 실을 엮어 짜 데스데모나를 상상해 냈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등장인물을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1908년까지 서머싯 몸의 4편의 희곡이 런던의 4대 극장에서 동시 상연되어 셰익스피어 이래 최대의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209, 마네 <올랭피아, Olympia>(1863)
나무위키에 소개된 <올랭피아>를 참조한다.(올랭피아 - 나무위키)
1863년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유화로 역사나 신화를 그리던 아카데미학파에서 벗어나 현실의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고전파 작품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다. 이후 마네는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신이 아닌 창녀의 누드('올랭피아'라는 제목 자체가 당시엔 매춘부 이름으로 흔한 이름), 아기천사가 아닌 비천한 흑인 하인 여성이 꽃을 들고 있는 것, 전통적인 정절의 상징인 개가 아닌 검은 고양이(서양에서 '재수 없음'의 상징), 황금 비율이 아닌 현실적인 신체비율 등으로 인해 당시 매우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마네가 실제로 매춘부를 모델로 그린 것은 아니다. <올랭피아>의 모델이 된 빅토린 뫼랑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정작 뫼랑은 화가가 되려고 모델을 한 것인데 당시 예술계에서 남자들의 텃세에 밀려 별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고 한다. 흑인 하녀역을 맡은 모델은 로르(Laure)라는 여성이다. 모네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209, 마네, <풀밭 위의 점심>(1862~1863)
위키백과에 소개된 <풀밭 위의 점심>을 참조한다.(풀밭 위의 점심 식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원래 제목은 《목욕》(Le Bain)이었다. 옷을 완전히 입은 남자들과 함께 캐주얼하게 점심을 먹는 누드 여성은 관람객의 예의 관념에 대한 모욕이었지만, 마네의 동시대인인 에밀 졸라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림들 중에 이러한 모습이 드물지 않다고 주장했다. 에밀 졸라는 "에두아르 마네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며, 모든 화가들의 꿈, 즉 자연의 웅장함을 담은 인물들을 풍경 속에 배치하는 꿈을 실현한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졸라는 그의 1886년 소설 《작품》에서 이 그림과 그를 둘러싼 논란을 소설화하였다.
이 누드 여인 역시 빅토린 뫼랑이다. 마네는 라파엘로의 작품을 뻔뻔하게 재해석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유명한 판화 중 하나(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 《파리스의 심판》(1515 년경))인 신화적 장면을 다소 저속한 파리 휴가객들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이 작품에 대해 논의가 있다고 하니 후일 읽어보면서 확인해 보기로 하자.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의 이름 또는 비슷한 그림이 여럿 있다.
클로드 모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5-1866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폴 세잔,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76~1877년, 오랑주리 미술관
216, 악동 소설(피카레스크 소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피카레스크(picaresque) 소설은 16세기 중엽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에서 유행한 소설 양식. 주인공이 악한이며, 그의 행동과 범행을 중심으로 유머가 풍부한 사건이 연속되지만 대부분 악한의 뉘우침과 결혼으로 끝난다. 현재는 그 뜻이 바뀌어, 독립한 몇 개의 이야기를 모아 끝에는 어떤 계통을 세운 소설의 유형을 이른다.
한 기사에 의하면([나를 키운 8할은] '호밀밭의 파수꾼' 등 '피카레스크'소설이란 | 한국일보),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도 이에 속한다고 전한다. 대개 여행 등 도전과 모험을 통해 스스로 발전을 꾀하는 결말이 많아 '성장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참고로 <호밀밭의 파수꾼>는 누적 판매 7,000만 부 베스트셀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 1위 소설이다.
217, 야곱처럼 천사와 맞붙어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해도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세기 32:28)
219, 남자에게 사랑이란 일상적인 일의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데도 소설에서 그것을 강조하다 보니 실제와는 다른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만 이런 줄 알았다. 화자는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자는 있다 해도 별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다행이다.
223, 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Naver 지식백과에 의하면,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브뢰헬은 순수한 풍경화를 그린 최초의 화가 중 한 명으로, 16세기에 풍경화를 전통적인 역사화와 종교화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는 네덜란드 소작농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회화 장르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 그림은 사육제(카니발)와 사순절이 한 광장에서 ‘전투’하는 장면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절제 사이의 갈등을 풍자한 그림이라 한다.
275,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
276, (사랑에 빠지면) "그런 사람은 갤리선의 노 젓는 나무의자에 쇠사슬로 묶인 노예처럼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요"
287. (스트릭랜드가 닥터 쿠드라에게) "여자에게도 용기가 있다는 건 기독교의 망상가운데 가장 터무니없는 망상이죠."
302, 전쟁 전부터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이 1919년 출판되었으니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막 종료된 시점이다. 서머싯 몸은 전쟁시기임에도 이 소설에 전쟁에 대한 배경을 담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한 모양인데, 전쟁이란 주제가 예술과 도덕의 불일치를 주장하려는 이 소설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나 작가는 1914년 정보국에 발탁되어 스위스 및 러시아 등에서 약 4년간 첩보활동을 한다.
307, "하나님의 연자매는 느리게 돌지만 가루는 아주 곱지요"
화자가 스트릭랜드의 죽음을 말한 후 아들 로버트가 한 말.
이 말은 서구 속담이다.
“The mills of God grind slowly, but they grind exceedingly fine.”(신의 맷돌은 천천히 돌지만, 아주 곱게 간다)
신(혹은 운명, 정의)의 작용은 즉각적이지 않지만 한 번 작동하면 정확하고 철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화자는 스트릭랜드의 아들 로버트의 말을 빌려 "마치 스트릭랜드가 무심하게도 가족을 떠났지만 결국 훌륭한 화가가 되었다."를 말하려는 듯 하나, 오히려 화자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볼 때 도적적인 삶을 살지 않더라도 예술적으로 훌륭한 성공을 가져오는 것은 역설적이고 또한 신의 맷돌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맞는가?"를 언급하려는지도 모른다.
308, 속인이 성경을 인용하면 악마도 언제나 제 좋을 대로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
이 말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이다.
“The devil can cite Scripture for his purpose.”
(악마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성경도 인용한다.)
감상평을 적기에는 머뭇거렸지만 비교적 빠른 호흡으로 완독한 소설이었다. 마지막 문장을 마며 혹시 내가 책을 건성으로 읽은 것은 아닌지 의아해했다. 책 제목인 "달과 6펜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역자 송무의 <작품해설>에 의하면, 달은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하고, 6펜스는 영국에서 거래되던 은화의 값이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킨다.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지상의 비도덕적인 삶(6펜스 측면)과 예술성 추구(달)를 언급하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왜 5펜스도 아닌 '6펜스'인 이유도 당시는 12진법으로 6펜스(당시 생존을 유지시키는 최소 단위) 단위로 사용되었고 5펜스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역자 송무는 <작품해설>에서 이 <달과 6펜스>가 '위대한 문학의 목록에 든 적은 없다'라고 평하고 있지만, 내가 고전 문학에 관심을 가진 몇 년간 많은 지인의 말은 물론 여러 책들에서 이 책을 다양하게 인용해 온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위대한 문학'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해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독서] 철학)에서 장-밥티스트 샤르댕의 작품을 언급할 때 <달과 6펜스>에서는 샤르댕을 어떻게 언급할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약간 이상한 점은 이 책에서 화자의 친구인 더크 스트로브가 자신의 부인을 언급할 때 '한 폭의 샤르댕 그림 같다'라고 말하고(96p), 샤르댕의 그림 <식전의 기도> 속 여인처럼 우아하다고도 말하는데, 부인의 모습을 상류층의 고급스러움을 말하는 것인지 평범함을 말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장-밥티스트 샤르댕의 그림에서 세상에서 존중하고 존경할 것은 평범한 사람의 생활 속의 평범한 인간이란 것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독서] 철학).
이 책 덕분에 고갱의 그림 몇 점을 관심 있게 즐기는 시간을 가진다. 고갱은 어두운 윤곽선으로 분리된 대담하고 평평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후기인상주의 회화 양식인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명칭은 금속판에 철사(클루아종 또는 "구획")를 납땜하여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유리 가루를 채운 뒤 굽는 칠보(cloisonné) 기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갱은 1889년 <황색의 그리스도>를 그리면서 클루아조니즘의 정수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고갱은 타이티에서 13세의 여인과 중혼을 한다. 그녀를 모델로 그림 <유령이 그녀를 지켜본다>를 남긴다. 타이티에서의 방탕한 삶에 대해 참고할 만한 기사가 있다.(타히티 10대 소녀들과 동거, 본토였다면 ‘엄벌’ 대상 | 중앙일보) 마치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가 17세의 아타와 결혼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책이 저자 서머싯 몸의 '유미주의적 태도가 뚜렷이 나타났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무위키에 의하면, 탐미주의(耽美主義, Aestheticism)는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유미주의(唯美主義), 심미주의(審美主義), 또는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라고도 부른다. 즉, 아름다움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19세기 무렵 합리주의에 반발하여 탄생했으며, 인간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오랜 기간 인간의 행복추구와 인간의 감정표현이나 인생상을 보여주기 위한 사적 수단으로 예술을 해왔다면, 탐미주의는 인간이 아닌 예술을 위해 예술을 한다는 순수 예술지향을 주제로 이전의 흐름을 깨버렸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인 "솔직히 말해서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사람과 다른 점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7p)는 주인공을 계속 지켜보면서 보통 사람과 다른 위대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 자체의 위대성보다 예술 자체의 위대성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그러나, 그가 스트릭랜드를 통해 유미주의의 주요 특징인 '위대한 예술이 예술가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지는 쉽게 동의되지 않는다. 그의 예술 작품의 위대함이 블란치(블랑쉬)를 다시 살리지도 않으며, 더크 스트로브의 진정한 존중에 화답하지도 않는다. 다만 스트릭랜드 가족의 자기합리화에만 기여했을 뿐이다.
즉 위대하다고 해서 예술이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지 않는다. 고통은 그냥 고통으로 남는다.
한국 문학계에서는 김동인, 김영랑, 이효석, 서정주, 1945년 이후 전봉건, 김광림, 마광수 등의 작품에서 이러한 탐미주의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와 그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영국 비평가 월터 페이터, 극작가이자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를 대표적인 인물로 꼽으며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도 유명하다.
그 외의 인물로는 에밀 시오랑 또한 언급된다. 그림 쪽에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구스타프 클림트, 오브리 비어즐리가 대표적이다. 리하르트 바그너를 탐미주의자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일본의 탐미주의 문학가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나가이 가후,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에도가와 란포가 있다. 그 외에도 야마모토 타카토와 같은 탐미주의 화가가 존재한다.
러시아-영미문학의 중간에 걸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있다.
영화 쪽에선 한국 감독 박찬욱, 독일 감독 레니 리펜슈탈,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등이 있다.
스트릭랜드 부인의 자기합리화는 극에 이른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왜 남편이 다른 여성과 도망갔을 것이라 계속 생각할까?(이 책 15장 참조) 그녀 입장에서 생각하면 스트릭랜드가 자기보다 더 매력 있는 여인과 떠났다면 그가 떠난 원인이 본인이 아니게 되나, 남자가 다른 여자 문제없이 자신을 떠났다면 떠난 이유가 오롯이 본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을 받아들이 못했을 것이다. 이 책 마지막 장(58장)에서 스트릭랜드와 그의 자녀들이 보여주는 만족감은 정말 비굴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여러 부분에서 등장하는 여성 비하? 혐오?적 표현은 시대성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불편함을 준다.
"똑똑한 남자가 어디 교양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나요"(27p)
(더크 스트로브가 집 나간 블란치를 계속 설득하자) '느닷없이 남편의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162p)
"여자에게도 용기가 있다는 건 기독교의 망상가운데 가장 터무니없는 망상이죠."(287p)
사실 1919년까지의 영국은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시대였다. 얼마 전 시청한 영화 <서프러제트, suffragette>(2016)를 보면 이런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참고로 1903년부터 시작된 서프러제트 시위는 성공했으나 1918년에 와서야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었을 뿐이다. 작가는 적어도 화자의 말이 아닌 등장인물의 말을 빌어 여성 비하적 표현을 하는 것으로 작가에 대한 비난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면 어떨까? 만약 스트릭랜드가 여성이었다면 그의 가출, 연인의 죽음, 타이티의 삶 등 모든 것이 남성과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을까?
서머싯 몸의 다른 작품 <인생의 베일, The Painted Veil>(1925)은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너세니얼 호손 <주홍글자>,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와 함께 세계 4대 불륜소설에 속하는데, 나는 지난해 다른 계기로 영화 <인생의 베일, The Painted Veil>을 먼저 시청한 적이 있다. 서머싯 몸이 1920년경 중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때의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달과 6펜스>에서 묘사된 여성과 달리 <인생의 베일, The Painted Veil>에서의 여성은 주체로 등장함은 물론 주인공(키티)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아닌 인식의 주체로 표현된다. 어찌 되었든 여성에 대한 비하에서 많이 극복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과 함께 <인간의 굴레에서>, <면도날>도 후일 읽을 후보로 추가한다.
참고로, 서머싯 몸은 이 작품의 홍보를 위해 '파리에서 알던 실존 화가 이야기'라는 말을 흘려 폴 고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판매 전략을 썼다는 후문도 있고, 이 책의 여주인공 같은 배우자를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로 바이럴 마케팅의 대가였기도 하다.
1. 셰익스피어, <오셀로>
2.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3.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4.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5. 서머싯 몸, <인생의 베일>
6. 서머싯 몸, <면도날>
1. <서프러제트, suffragette>(2016)
2026.1.16 ~ 2026.1.25, 중국 上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