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1856)
<마담 보바리>는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작가, 사실주의 문학가로 알려진 플로베르가 1856년 발표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불륜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가 주장하는 대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단말마적 고통' 을 담고 있다. 1857년 보들레르 『악의 꽃』과 함께 각각 진행된 '종교적 도덕·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기소되었으나 승소한 것으로 유명하다.(보들레르는 패소)
이 소설은 총 3부, 3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번역본(민음사)으로 약 500여 쪽이나 되는 비교적 장편소설로서 줄거리(형식)는 이렇다. "어린 시절 수도원에서 낭만적 소설 등을 많이 읽은 주인공 엠마는 시골 의사인 보바리와 결혼한 후 소설과 같은 낭만적 삶을 희망했으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2명의 애인들와 불륜을 가지며 이상과 행복을 꿈꾼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소비로 파산에 이르게 되고 애인들에게 조차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한 엠마는 독약(비소)을 먹고 자살한다."
이 소설을 계기로 이전 낭만주의 사조는 사실주주의 사조로 전환되었으며, '인간은 늘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상상 속의 더 고귀하고 극적인 ‘또 다른 나’를 꾸며 그 이미지로 살아가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보바리즘(Bovarysme)을 유행시켰다. 또한 여러 등장인물(보바리, 오메, 뢰르 등)을 통해 부르주아지를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의 전체 꿈은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지의 멍청함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반증하기도 한다.
<여자의 일생>의 작가이자 플로베르의 제자인 가이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플로베르는 나에게 문학의 척추를 세워 준 사람”, “그의 말은 모두 금이다.”라 하며 스승의 문체 엄격주의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는 1821년 아버지가 외과부장으로 있던 프랑스 지방 도시 루앙의 시립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노르망디 출신인 의사의 딸로, 친정은 대대로 저명한 사법관을 배출한 집안이었다. 어린 플로베르는 주로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접촉하게 된 외과의사들과 병원, 수술실, 해부학 교실 같은 주변환경에서 염세주의적 견해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1832년(12세)에 <돈키호테>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1841년 파리대학 법학부에 등록했지만 1844년 간질로 추정되는 신경발작을 계기로 학업을 그만두고 루앙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며 집필에 전념했다. 1851년 집필을 시작하여 하루 12시간씩 고된 작업 끝에 드디어 1856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마담 보바리'는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플로베르를 프랑스 최고의 작가라는 반열에 올려놓았고 대중적 인기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작품의 몇몇 대목이 부도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하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플로베르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술적인 '미'였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현실만을 강조하면서 독창적인 예술작품으로서의 미를 무시한 당대의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다양한 색조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집요하게 완벽성을 추구한 '성 앙투안느의 유혹', 고대 카르타고를 다룬 비극적인 이야기 '살랑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에 발표한 '감정교육' 등이 있다.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지 않는 생명체처럼 완결된 작품을 꿈꾸던 플로베르는 미처 채우지 못한 원고와 미완의 작품 '부바르와 페퀴셰'의 제2부를 쓰기 위한 초고를 책상 위에 남긴 채 1880년 5월, 뇌일혈로 사망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 있듯이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8년, 저자의 고향인 노르망디에서 델핀 들라마르(Delphine Delamare)라는 '지방 의사 부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소설의 주 내용과 유사하게 그녀는 부유한 농가의 딸이었고, 의사와 결혼하게 된다. 지주 계급의 남자, 그리고 법률 공부를 하던 청년 등 복수의 연인과 관계를 맺으며, 이 과정에서 사치와 소비에 빠져 많은 빚을 지게 되고 결국 연인들에게도 버림받고, 채무에 몰려 비소(비산·arsenic)나 프루시안산 계열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 욘빌(Yonville)이란 지명도 실재 사건이 발생한 리(Ry)의 약국, 여관 ‘리옹 도르(사자의 집)’, 마차 ‘이롱델(제비)’ 등의 디테일이 실제 리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또한, 플로베르는 원래 <성 앙트완느의 유혹> 같은 환상적·낭만주의적인 작품에 빠져 있었는데 친구인 루이 부이에(Louis Bouilhet)와 막심 뒤 캉(Maxime Du Camp)이 “좀 더 현실적이며 평범하고 부르주아적인 주재를 써 보라”는 권고를 받아들였다고도 한다.
이 소설은 1856년 10~12월에 《르뷔 드 파리(Revue de Paris)》에 연재되었는데, 1857년 1월 “공중도덕과 종교적 도덕, 선량한 풍속에 대한 모독”으로 피소되었다. 검사인 에르네스트 피나르(Ernest Pinard)는 “음란한 장면들”이 공중도덕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과 “성스러운 것과 육체의 뒤섞임”이 종교적 도덕·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기소를 한 것이다. 또한 검사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옷을 다 벗어버린 여자와 같다. Art without rules is not art. It is like a woman who discards all clothing”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간통을 미화”함을 지적했다.
변론은 이 책에 헌사되어 있는 세나르였다. 그의 변론 이유 4가지 ;
1) 이 작품은 음란소설이 아니라, 엄격한 도덕소설이다. “이 책이 간통을 찬양한다고 말하는 것은, ‘죄와 벌’을 읽고 살인을 장려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하다”
2) 묘사와 찬양은 다르다. “작가는 사회에 존재하는 악을 그려 보일 권리가 있다. 그것을 숨기기보다 드러내서 독자에게 경고하려는 것이다.”
3) 당신들이 인정한 고전들도 다 간통과 악을 그린다. 검사가 예시로 제시한 몰리에르, 라신, 코르네유, 볼테르 등 프랑스가 자랑하는 고전들 역시 간통·살인·탐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4) 작가의 인격과 의도(성실하고 조용한 생활, 방탕한 보헤미안이 아니라,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사람, 작품을 통해 사회를 타락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 등)를 제시하여 플로베르 개인의 품성과 삶을 강조했다.
판결은 무죄였지만, 판사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긴다.
"“The mission of literature is not merely to depict the disorders of society in order to inspire a hatred of evil;
it is to elevate the soul, to strengthen the intellect, and to improve moral conduct.”
(문학의 사명은, 단지 사회에 존재하는 무질서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악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고양하고, 지성을 높이고, 풍속을 정화하는 것에 있다.)
'마리-앙트완느-쥘 세나르에게
(...) 귀하의 탁월한 변론을 거침으로써 저의 작품은 제게 있어서 어떤 뜻하지 않은 권위 같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
20, 아나카르시스
스키타이의 철학자
그의 명언 :
한 잔의 술은 건강을 위해. 두 잔의 술은 쾌락을 위해. 세 잔은 방종을 위해. 네 잔은 광기를 위해.
55,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65, 이 사내는 무엇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하나 바라는 게 없었다.
81, '샤를르는 문에 기대어 반쯤 졸고 있었다.'
샤를르는 여러 장면에서 늘 잠이 든다(26, 93, 110, 119, 130, 245, 378p 등)
"사랑하는 자신의 여인을 지키려면 우리는 절대 졸면 안 된다!"
- Durante -
116, 사보이 신부의 신앙고백
루소의 <에밀>에 나오는 부분으로 '신자는 자신의 양심에 따르는 신학'을 역설한다.
에밀에 대한 추가 내용은 brunch의 이 글을 참고해 보자(<에밀>에 나타난 종교의 문제)
148,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
169, 엠마에게는 자기 내부가 이렇게 술렁거리고 있는데도 주위의 사물들이 이처럼 조용한 것이 어쩐지 놀랍게만 느껴졌다.
그렇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많은 고민으로 괴로워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평화롭게 웃거나, 행복해하는 이들을 볼 때 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동일한 자극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182, '땔감이 저절로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땔감을 너무 많이 쌓아 올린 탓일까, 불길은 그만 사그라져 버렸다.'
애정이 식는 이유가 애정이 줄어든 것인지, 너무 많은 애정을 쏟아 소진한 것인지에 대한 비유인가 보다.
199, (공진회에서 엠마와 루돌프가 만난다) 데이지 몇 포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데이지(Daisy)는 “순수함·천진난만함·희망·새로운 시작”을 주된 의미이니 둘의 시작을 알리는 꽃인 듯하고 "숨겨진 사랑"이란 뜻도 있으니 적절한 제시가 아닐까?
이 기회에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듯하나, 한국/홍콩 합작 영화로 전지현, 정우성, 이성재 주연이었던 영화 <데이지>(2006)를 감상해 본다. 전지현은 우리 시대 남성의 우상이었지 않은가...
기대가 낮아서 인지 약간이나마 안타까운 사랑의 느낌을 받는다. 평소 정우성을 싫어하지 않는데도, 그리고 평소 이성재를 좋아하지 않는데도,내가 우리 시대 남성의 우상 전지현이 이성재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
213, (로돌프가 엠마에게 말한다) 운명이 그렇게 시킨 것이고 두 사람은 오직 서로를 위하여 태어났으니까요.
293, (로돌프는 엠마와 헤어질 구실을 찾으며 생각한다) 오로지 운명만을 탓해 주십시오!. 이 문구는 언제나 효과가 있거든.
젊은 베르테르는 샤롯테를 진실로 사랑한 나머지 “나의 운명은 그녀를 사랑하도록 정해졌다. 이 사랑은 나를 파괴한다.”며 자살하지만, 로돌프는 헤어질 구실로 운명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기도 하고, 운명을 너무 값싸게 호도하는 것 아닌가?
301, (엠마는 루돌프가 혼자 여행을 간다는 말에 경련을 일으키자) 샤를르는 그녀가 살구를 먹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노라 대답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인식인가? 개인적으로 샤를르의 둔박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분 중 한 장면.
319,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시아>
루시아의 광란의 장면을 부른 아리아를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광란의 장면을 한국어 가사로 감상하세요)
339, (엠마)"제일 딱한 것은 나처럼 쓸모없는 삶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340, (레옹과 엠마) 각자가 하나의 이상을 만들어가지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생활을 거기에 맞추고 있었다.
360, 다모클레스의 칼(검劍)
이 소설에서 우연히 '다모클레스의 칼'을 또 만난다는 것은 필연일까?([내생각] 다모클레스의 검(劍)과 리더의 불안)
365, 오랑캐 꽃
제비꽃(violet)과 같다. 갑자기 이용악의 시 <오랑캐 꽃>을 찾아 읽어본다.
오랑캐꽃
이용악 / 시인
ㅡ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 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ㅡ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370, (레옹을 만나러 가겠다는 엠마에게 샤를르가 말한다) "당신 정말 착한 사람이야"
엠마가 레옹을 보고 싶어 가겠다는 것도 모르고 순진한고 둔한 샤를르는 위임장 작성을 위해 가겠다는 것으로 오해한다. 아 이렇게 순진한 사람...
377, "(...) 자녀의 교육은 반드시 어머니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루소의 사상인데 (...)"
루소의 소설 <에밀>을 통해 제시된 교육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읽는 책들마다 에밀에 대한 언급이 너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 다시 에밀 읽기를 시도해야 할 것 같다.
386, (엠마는 루앙에서 용빌로 돌아오는 길에 거지의 노래를 듣는다)
"화창한 날의 후끈한 열기(Chaleur)에 못 이겨
젊은 아가씨는 사랑을 꿈꾼다네"
405, "독일 여자는 로맨틱하고, 프랑스 여성은 바람기가 있고, 이탈리아 여성은 정열적이고 (...) 흑인 여자는 예술가가 좋아한다"
502, (엠마가 죽고 샤를르는 우연히 루돌프와 마주치고)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루돌프는 엠마를 유혹하면서 가식적인 운명이란 말을 사용하고, 샤를르는 루돌프에게 엠마와 그의 연애 외 죽음 등에 대해 체념하듯 운명이라 말을 한다.
이제야 <마담 보바리>를 읽게 된 계기는 내가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평소 연예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것이 가장 그럴듯한 핑계다. 그러나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 불안의 해법의 하나로 소개된 예술 부분에서 소개([독서] 철학)도 되고, 특히 문형배 님의 책 <호의에 대하여> 에도 소개([독서] 에세이)되어 있어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가지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이 소설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출간 당시 환경을 고려했을 때 무죄 판결은 정당했을까?
상기 [1857년 피소 사건의 개요]에서 언급한 것처럼 플로베르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850년대의 제2제정(Second Empire) 시대의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이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다소 '관대한' 판결로 이해된다. 오죽했으면 변호사였던 세나르에게 헌사를 추가로 게재했을까? 현재의 법 체계에서는 당연히 '도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문형배의 <호의에 대하여> 참조.
2. 그렇다면, 1857년 진행된 보들레르 『악의 꽃』 재판과는 어떻게 다를까?
검사(플로베르 사건과 동일한 피나르 검사)가 지목한 보들레르의 문제 시들은 6편이었다.
1) Lesbos(레스보스) – 여성 동성애
2) Femmes damnées – 영벌받은 여인들(레즈비언 묘사)
3) Le Léthé(레테) – 관능적 포옹, 마약적 감각
4) À celle qui est trop gaie(너무 쾌활한 그녀에게) – 여성 폭력·피·성적 이미지
5) Les Bijoux(보석) – 여성의 신체와 보석을 노골적으로 묘사
6) Les Métamorphoses du Vampire – 흡혈귀의 변신–성적 환상
(황현산 역)
검사는 이 작품들을 “육체의 숭배”, “타락의 시학”으로 규정했다. 당시 소설은 ‘교화’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었지만 시는 더 즉각적으로 “미학적 충격”을 준다고 여겨졌고, 특히 종교·성·악마주의를 결합한 보들레르의 시는 “사회질서를 전복하는 위험한 실험”으로 본 것이다.
보들레르는 '유죄 + 벌금 + 시 6편 금지' 판결을 받는다. 아마도 플로베르만큼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했을 것이고, 보들레르 본인 자체도 "보헤미안, 파리 하층에 어울리는 반항적 예술가”라는 평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판결은 1949년에 이르러서야 금서 판결이 공식적으로 취소된 것으로 알려진다.
3. 이 소설이 사실주의 소설의 시작으로 이해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 판결이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사실주의는 이전 시대의 문학 경향인 낭만주의(Romanticism), 즉 감정의 과장, 영웅적 인물, 비현실적 사건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문예 사조라 할 수 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낭만주의와 다른 사실주의 소설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 작가의 감정·도덕 판단을 완전히 배제한 객관적 묘사 기법을 사용했다. 플로베르의 다음과 같은 말을 참조하자.
“작가는 작품 속에서 신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 연인 루이즈 콜레(Louise Colet)에게 보낸 플로베르의 편지(서간집) -
2) 플로베르는 특히 <마담 보바리>에서 지극히 평범한 시골 의사를 등장물로, 지루한 결혼생활, 중산층의 소비·욕망·권태, 잔잔한 일상의 세부 등을 주제로 하여 낭만주의의 '귀족, 영웅, 비범한 사건(로맨스)' 등과 대조를 이룬다.
3)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에서 외부 사건이 아니라 심리·욕망·권태의 인식 구조를 묘사(엠마의 불만, 자기기만, 환상과 현실의 충돌, 소비와 욕망의 악순환 등)하는 새로운 서술을 함으로써 인간의 내면을 낭만적 과장 없이 해부한다. 이는 후대의 심리소설·의식의 흐름 기술(Camus, Proust, Joyce)의 기반이 된다.
4) 플로베르는 언어의 절대적 정밀성, 즉 문체(Style) 자체가 예술이라 주장한다. 이는 과학(실증주의)에 기반한 문학인 자연주의와 구별된다.
1857년 무죄 판결로 인해 법적으로는 사실주의적 묘사는 음란이 아니다는 선례를 남겼고, 문학적으로는 도덕적 교훈을 배제해도 된다는 예술 자율성을 묵인했다. 사회적으로는 중산층의 욕망·권태·파산·간통 같은 “추한 현실”이 문학 소재로 정당하게 인정받았으며, 작가 개인에게는 감정 없는 문체, 철저한 관찰자의 태도를 더 공고히 한 계기가 되었다.
사실주의 작가로서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와 스탕달(Stendhal, 1783–1842),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1880),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1821–1881),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등이 있다.
4. 보바리즘이 무엇이고, 이 작품 <마담 보바리>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한다면?
보바리즘(Bovarysme)은 쥘 드 고티에(Jules de Gaultier)가 <마담 보바리>를 분석하여 만든 개념으로, '인간은 늘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상상 속의 더 고귀하고 극적인 ‘또 다른 나’를 꾸며 그 이미지로 살아가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주요 장면을 보자.
1) 엠마는 현실 경험보다 로맨스 소설, 귀족 연애담, 감상적 종교 서적을 통한 텍스트가 먼저 들어온 상태이다. 그래서 현실의 자기는 미완성이면서 “내가 언젠가 살아야 할 진짜 삶”으로 내면화한다.
2) 엠마는 결혼이 영혼의 합일, 불꽃 튀는 사랑, 드라마 같은 사건의 연속일 거라 상상했지만, 샤를르와의 결혼 생활은 지루한 현실일 뿐이다.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55p)
3) 당데르빌리에 후작의 무도회에서의 샹들리에, 화려한 드레스, 세련된 말투, 유머, 춤 등의 귀족 문화와 대비하여, 돌아오는 길의 마차 바퀴의 덜컹거림이나 말의 띠 끊어짐 등은 결국 집으로 돌아와 하녀인 나스타지에게 화풀이를 한다.
"사람을 뭘로 아는 거야. 썩 나가요"(85p)
4) 로돌프와의 연애는 '환상을 현실 위에 덮어씌우기'와 다름 아니었으며, 로돌프는 이런 엠마를 정확히 알고 이용한다.
(로돌프가 엠마에게) "나는 줄곧 당신 생각만 하고 있어요. 당신의 추억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요!(226p)
5) 레옹과의 밀회는 환상이 더욱 고조되고 환상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다.
(레옹이 엠마에게)"그 여신은 당신을 좀 닮았던 것입니다."(339p)
6) 엠마는 사랑과 더불어 옷, 가구, 장식품, 선물 등의 소비로 자신을 연출한다. 상상 속 자아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빚을 지고 이를 갚지 못해 결국 자살까지 이른다.
이런 보바리즘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현실과 괴리되는 소비문화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환상의 대상을 자기화하려는 경향 등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6) 플로베르는 동시대의 타 작가를 어떻게 평가했으며 본인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플로베르는 편지를 통해 발자크에게 "발자크는 거대한 창조자이며, 그 세계는 장엄하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를 '무엇보다 얼간이처럼 무식하고, 골수까지 촌놈이며, 허리가 휠 정도로 사치에 빠진' 작가라 혹평하기도 한다.(<고리오 영감> 작품해설, 민음사, 박영근 역, 408p)
조르주 상드(George Sand)에 대해서도 “상드는 인간으로서 훌륭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너무 도덕적이며, 언어는 흐물흐물하다.”라 했다는 것을 보면 그녀의 문학적 스타일을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보들레르에 대해서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의도적 저속성’을 비판했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진짜 시인이다. 그러나 자신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보들레르는 플로베르를 향해 “지독할 정도로 차갑다. 그러나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 했다 하니 플로베르는 따뜻한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투르게네프는 우리 시대 최고의 산문가다.”라 하며 투르게네프(Ivan Turgenev)를 좋아했으며, 플로베르의 제자인 가이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플로베르는 나에게 문학의 척추를 세워 준 사람”, “그의 말은 모두 금이다.”라 하며 모파상은 스승의 문체 엄격주의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다.
7) 플로베르는 당시 부르주아지에 대한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고, <마담 보바리> 작품 속에 있는 예시들은 무엇인가?
플로베르는 부르주아지를 부정적으로 비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 지적·정신적으로 얕고 피상적이고
- 물질·소유·체면·안정에 집착하고
- 자기 생각이라곤 없고, 상투적 문구(“사회 통념”)를 되풀이하고
- 권위와 체제를 좋아하지만, 진짜 고상함이나 정신적 위엄은 모르는 사람들
심지어는 “민주주의의 전체 꿈은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의 멍청함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등장인물과 그들과 관련된 여러 묘사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판적 사례가 나온다.
먼저 샤를르 보바리는 "지적·정신적으로 얕고 피상적"인 특성에 해당하는 "평범한 부르주아지"로 묘사된다. 그에게는 세상을 망치는 것은 반드시 악인이 아니라,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무난한 사람들’이라는 시각일 수 있다. 이름만 봐도 보바리 Bovary는 프랑스어 중 bovin(보방)과 비슷한데, bovin은 '소(牛)의, 우둔한'의 뜻을 가진다고 한다.
오메는 '위선·허영·자기 합리화' 성향을 가진 부르주아지를 묘사한 것 같다. 스스로를 “진보적 지식인, 과학의 사람”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얕은 지식과 헛된 과학주의로 사람을 망칠 수도 있는 인물이다. 히폴리트의 발 수술을 부추겨 놓고, 일이 망가지자 책임은 샤를르에게 떠넘긴 사례나 맹인 거지를 “위생상 나쁜 존재”라고 몰아세우며, 자기 이미지 보호를 위해 시설에 집어넣도록 공작한 것을 보면 반성, 죄책감 없이 늘 자기 성공과 출세만을 계산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처럼,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이름 오메(Homais)는 심지어 사람(Homme)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뢰르(Lheureux)는 '행복한 사람'이란 뜻인데 부르주아지 사회의 돈·신용·소비 메커니즘을 상징한다. 즉, 소비와 신용을 통해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부르주아 경제를 비판한 것이다. 결국 그 행복을 돈이라고 하면 돈이라는 행복 때문에 엠마는 파멸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죽음으로 몰린 엠마 자신도 부르주아지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로맨틱한 환상과 소비주의가 결합된 전형적인 부르주아 욕망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8) 작품 속에서 농사 공진회 부분(제2부 제8장) 유명한 내용이라는 평가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장은 '시골 농업 시상식 연설'과 '엠마-루돌프의 유혹 장면'이 교차적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는 플로베르가 영화보다 먼저, 문학에서 사용한 교차 편집(montage)적 구성으로도 인정되고 있다. 엠마를 통해 이 장면에서 “진짜 삶은 저기(연설)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유혹)에 있다”라고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궁금증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작가가 언급한 “작가는 작품 속에서 신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라는 플로베르의 문학론을 대표하는 장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장이 그렇게 '유명한' 공진회 장면이라는 것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번을 더 읽어야 한다!
9) 이 책의 부제로 사용된 '풍속 연구'는 어떤 의도를 내포하고 있을까?
19세기 프랑스 지방 중산층(부르주아지)의 삶과 가치관을 비추어 볼 때, 엠마의 비극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생산한 욕망”의 결과임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구(Étude)”라는 표현도 주관적 평가 없이 사실을 기록하여 감정 이입이 아닌 문체의 냉정함을 보여줌으로써 사실주의 문학의 전형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부제를 통해 작가는 단순한 “사회 풍속 묘사”가 아니라 풍속 비판을 시도한 것이다.
번역자이자 까뮈 전문가로 알려진 김화영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 책의 '작품 해설'과 2016년 EBS 기획특강(열린연단) 강의를 참고하여(https://naver.me/Fm3Erpak) 개인적으로 몇 가지 눈에 띄는 항목을 정리해 본다.
1. 1857년은 <마담 보바리>의 해
이 소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법정의 소송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이 소설의 출간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에 소송 사건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인과 전도의 오류'의 한 예이다.
2027년은 <마담 보바리> 출간 170년이 되는 해이니 2년 뒤에는 그와 관련된 의미 있는 이벤트를 기대해 본다.
2. 주제와 스타일
1851년 <마담 보바리> 작업에 착수한 플로베르는 유명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단말마적 고통'을 끊임없이 호소한다.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1856년에 출간했으니 약 5년간을 그 고통에서 헤맨 셈이다.
이 소설의 창작 과정은 애인이었던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많은 편지 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편지 중에서 플로베르는 "무에 관한 한 권의 책 (...)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을 실천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무엇(주제)을 그리느냐보다는 어떻게(스타일) 그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3. 작품의 구도
작가의 개입의 최소화하려는 듯이 시선은 '우리-샤를르-엠마-샤를르-오메'의 순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문학 수업을 듣는 듯한 설명이 이어진다.
2. 실재의 삶과 다른 대칭 세계
보바리의 2번 결혼, 용빌과 루앙, 2명의 애인, 농사 공진회에서의 '둘'의 언급, 소설과 현실, 엠마의 추락과 오메의 상승, 부르니지엥 신부와 반교권주의인 오메 등 여러 대칭 구조가 포함되어 있다.
3. 플로베르의 '침묵'
플로베르는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을 보이는데 <마담 보바리>에서도 예시가 있다.
"마차는 달리기 시작하여 (...) 담쟁이덩굴이 온통 파랗게 덮인 테라스를 따라 검은 저고리를 입은 노인들이 볕을 쬐며 산책하고 있는 자선 병원의 마당 뒤로 지나갔다 (...)."(제3부 제1장, 355p)
이렇듯 묘사가 시작되면 사건에 대한 행동과 말이 모두 시라지고 '침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덕분에 내가 소장하고 있는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시아>와 2015년 개봉한 소피 바르트(Sophie Barthes) 감독의 영화 <마담 보바리>와 앤 폰테인 감독의 <마담 보바리>(2014) 영화도 시청할 기회를 갖는다.
1. 발자크, <고리오 영감>
2. 스탕달,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파르마의 수도원>
3. 보들레르, <악의 꽃>
4. 윌터 스콧, <아이반호>
5. 루소, <에밀>
6. 플로베르, <감정교육>
7.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8. 모파상, <여자의 일생>
2025. 11. 15 ~ 11. 24, 한국에서 읽기 시작하여 上海로 떠나기 전날 정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