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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Apr 30. 2023

유명 시인의 자기혐오 전략

fleeting notes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364


장정일을 유명 작가로 만든 작품은 단연 <햄버거에 관한 명상>(1988)이다. 그를 법정 구속으로 내몬 문제작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와 <장정일 삼국지>(2003) 등 소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작가로서 그의 노정은 시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렇기에 그가 내리는 시에 관한 박한 평가들은 유독 눈에 띈다. 좋든 싫든 출발점이란 건 그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된다. 그래서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 출신 부대 따위에 과장된 자부심을 갖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다. 장정일은 반대다. 이 기사를 보면 그는 여전히 시를 현실도피를 조력하는 일종의 기만술쯤 여기는 것 같다.


서정시의 본령은 훼손되지 않는 유토피아에의 동경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북간도는 분명 춥고 배고픈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 속의 북간도는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공간이다. 앞서 나온 '세우'에서도 보았듯 이 마법의 성(서정시)에서는 아무도 아프지 않다(김명수의 새 시집에 실려 있는 '나는 어린이 방에서 잠잔다'도 함께 보라). 이런 이유로 서정시는 현실도피를 돕는 기만술로 의심받기도 한다. 그것을 모르지 않았던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자신의 이름을 흙으로 덮고자 했다. 서정시와 결별하고자 했다.


그는 <장정일의 공부>(2006)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열정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우표 수집가나 난을 치는 사람을 지식인으로 존경할 수 없다. 시인의 참고서지는 오직 시집밖에 없으니, 시인이란 시 말고는 모르는 사람이다.(p.6)


직업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들으면 몹시 섭섭해 할 것 같다. 물론 이 안에는 시인으로서 장정일 개인의 경험에서 길어올린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겠지만, 시집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시인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수십년 간 꾸준히 평가절하한다는 점에서 어쩐지 의도가 있는 전략적 구분짓기 같기도 하다. 이 자기혐오 비슷한 행위에서 결국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는 그런 고상한 인간들, 시에 갇힌 사람들과는 달라'니까 말이다.


updated :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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