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eting notes
서정시의 본령은 훼손되지 않는 유토피아에의 동경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북간도는 분명 춥고 배고픈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 속의 북간도는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공간이다. 앞서 나온 '세우'에서도 보았듯 이 마법의 성(서정시)에서는 아무도 아프지 않다(김명수의 새 시집에 실려 있는 '나는 어린이 방에서 잠잔다'도 함께 보라). 이런 이유로 서정시는 현실도피를 돕는 기만술로 의심받기도 한다. 그것을 모르지 않았던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자신의 이름을 흙으로 덮고자 했다. 서정시와 결별하고자 했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열정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우표 수집가나 난을 치는 사람을 지식인으로 존경할 수 없다. 시인의 참고서지는 오직 시집밖에 없으니, 시인이란 시 말고는 모르는 사람이다.(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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