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소리
시럽은 달다. 가끔 카페 일을 하다 보면 시럽을 일곱 번 정도 추가해 달라는 손님을 만나곤 한다. 요청에 따라 해 드리는 거지만 펌프를 일곱 번 내렸다 올리면서도 이게 맞나 싶다. 이렇게까지 달게 마신다면,, 꿀물을 드시는 게 낫지 않을까?(꿀아메리카노는 없는 메뉴다)
커피에 어떤 맛을 원하시는 건지 의문이 들 때쯤엔 그러려니 제도가 도입된다. 뭐든 그러려니..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려니. 일곱 번을 추가하든 열다섯 번을 추가하든 그건 그 사람의 건강이고 그 사람의 인생이려니 한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음료를 다 만들기 전에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다 만들고 넣으면 많은 양의 시럽에 음료가 넘치곤 하니까. 집게로 얼음을 빼거나 어그러진 뚜껑을 달리 주거나 하는 일이 벌어진다.
달디 단 시럽을 일곱 번을 추가해도, 쓰디쓴 샷을 네 번을 추가해도 그러려니 하는 습관이 생겼다. ‘왜’를 묻지 않는 버릇. 그러려고 노력하다 보니 정말 그렇게 됐다. ‘왜‘ 이렇게 단 맛을 좋아할까? ’왜‘ 카페인이 많이 필요할까? 따위의 물음은 버린 지 오래다.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어떤 질문이든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니까. 해결되지 않는 물음을 머금은 채로 살면 바깥의 문제와 안의 문제가 혼재되어 어떻게든 살기 어려워지곤 한다.
이유를 버리고 살다 보니 그런 나 자신을 인지할 때 ‘왜 이러지?’싶다. 왜 나는 이유를 버리고 있는 걸까? 이유를 생각하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꼭 찾아야 하는 걸까? 왜? 이유를 버렸는데도 ’왜‘라니. MBTI도 N에서 S로 변했는데, 사실상 물음을 포기할 수가 없나 보다.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질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시럽을 좋아하는 손님은 단 맛을 좋아할 테니, 샷을 더 넣는 손님은 카페인을 원하는 걸 테니, 하는 것처럼 명쾌한 해답이 내겐 없다(생각하지 않기로 해놓고 답을 내어놨다).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내리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는 뜻일까.
이유를 묻는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인생의 어디쯤에 놓여있을까. 마냥 없애고 무시하기만 하다 보니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유쾌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무작정 파고드는 것도 해답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계속해서 ‘왜‘를 묻는 사람인 것 같으니, 그런 나를 적당히 받아주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시럽이 달고, 생각은 많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이유를 생각하되, 그냥 그러려니 하는 법을 배워본다. 나는 그런 사람이려니. 저 사람은 또 저런 사람이려니. 질문을 지우지 않고, 질문을 가진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본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런 게 있다. 다만, 달디 단 시럽은 조금만 넣는 걸로 합시다. 액상과당은 어찌 되었건 몸에 좋지 않으니까. 북어위크 음료는 건강한 편이고, 맛도 있으니 그대로 즐겨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