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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Jan 04. 2024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고통의 흔적은 사랑과 희망으로.


간혹 소설이나 에세이집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에 관한 내용을 볼 때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생애에 관한 책을 보면 많은 화가들이 이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처음 진단받았을 때 만해도 병명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 역시도 류머티즘 관절염이 노인성 질환인 퇴행성 관절염과 동일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인구의 1%가 이 질환을 갖고 있다고 하니 그런대로 유명세(?)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삶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사람과 경쟁하고 무언가 얻기 위해 노력한다. 불공정한 사회에 분노하고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에 지쳐간다. 젊은 시절, 나도 역시 그 또래의 청춘들이 치열하게 살았던 것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가난에 맞서 열정을 불태우며 일하고 넘을 수 없는 현실에도 당당히 다가갔다.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만족했다. 평온한 일상의 문이 불청객에 의해 덜컥 열리기 전까지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진단받고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삶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 같았고 미래의 나는 마치 깊은 산속에서 헤매고 있는 길 잃는 짐승 같았다. 사람들이 병명 자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주 몹쓸 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책이나 영화 등 작품 속 인물이 나와 같은 병을 갖고 있으면 가슴에 먹먹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들도 나처럼 이렇게 아프구나라고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는 태어나면서부터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았고 평생 동안 관절염과 열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다섯 살에 어머니가 죽고, 누나까지 사망하자 충격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그러나 자신의 삶과 고통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며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켰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50세 때 류머티즘 관절염을 진단받는다. 오른팔에 마비가 와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70대에는 붓을 잡지 못할 정도로 손가락이 뒤틀렸다고 한다. 그러나 손에 붕대를 감고 붓을 쥐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기에 그림을 그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일명 모지스 할머니라고 불리는 미국 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0세 중반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었다. 그녀는 평범한 시골 마을의 농부이자 아내로 살았다. 노년의 그녀에게 류머티즘 관절염이 찾아왔고 더 이상 바느질을 하지 못하자 붓을 들었다. 76세부터 101세가 되어 사망하기 전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따뜻하고 정겨운 그림으로 많은 나라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열정적 삶을 살고 아름다운 그림을 남긴 이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에는 이들이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들도 나처럼 아팠을까? 그들의 생활은 어땠을까? 고통으로만 점철된 삶에 집중했다. 이젠 그들의 삶을 관통한 사랑과 희망을 본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삶을 향한 희망이다. 뭉크, 르누아르, 모지스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이 없었다면 작품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단편집을 읽었다. '봄밤'이라는 작품 속 수환은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다. 신용불량자로 15년을 살며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했다. 치료 시기를 놓쳐 합병증에 시달리다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재혼한 아내 영경은 알코중독자인데 치료를 위해 같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수환을 간병한다. 그러나 외출을 빌미로 가끔 밖에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 수환은 영경이 외출할 수 있게 해 준다. 이혼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던 수환에게 영경은 삶의 등불 같았다. 수시로 술에 취한 영경을 업고 집에 오는 일 말고는 해준 것이 없다. 영경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크게 만드는 일이 그녀의 외출을 돕는 일이다. 병과 싸우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영경에게 해 줄 수는 있는 것이라고는 이 일뿐이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오직 둘만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각자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알려주는 것이 있다. 누구나 삶을 살고 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특별한 삶은 없다. 모두 살아가고 아파한다. 마음은 병이 있어도 아플 수 있고 병이 없어도 아플 수 있다. 다만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 사랑이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일로 연결된다는 것, 그것이 삶에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이젠 책에서, 화가에게서,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도 슬프지 않다.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육체적 고통 속에서 끝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자신과 타인을 향한 사랑, 삶에 대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통이 남긴 흉터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희망이다. 고통은 사랑과 희망을 이길 수 없다. 세월이 알려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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