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없는 세상을 바란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봤다. 대지진 이후 극한의 상황에 놓인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잘 그려져 흥미로웠다.
황궁아파트 103동은 지진에서 남겨진 유일한 아파트다. 남은 주민들은 공존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 식수등이 부족해지자 아파트 주민들은 생존 존폐의 위험을 느낀다. 아파트 주민들 조차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인에게 나눠줄 음식은 없다. 103동 주민들은 외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투표가 진행되고 결국 외부인방출이 결정된다. 쫓겨난 사람들은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게 된다.
황궁아파트 주민과 외부인은 강자와 약자의 구도다. 가진 사람은 강자가 되고 잃은 사람은 약자가 된다. 쫓겨난 외부인들은 약자다. 그들은 왜 공존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웠다. 내가 난치병 환자여서 일까? 마치 외부인들이 사회의 편견과 외면 속에 고통을 받고 있는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같았다.
사단법인 한국 1형 당뇨병환우회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세종시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1형 당뇨환자들의 처우개선을 호소한 가운데 환자와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달,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9살 딸과 부모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으로 한국 1형 당뇨환우회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환우회 회원은 아이가 인슐린 주사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태안 일가족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라며 눈물을 흘렸다.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산정특례)으로 지정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완치가 어려운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쉽다. 1형 당뇨는 하루에 8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부모가 24시간 아이의 간병에 매달려야 하고 비싼 치료비와 치료를 위한 기기 사용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소아당뇨'라는 잘못된 인식은 아이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한다. 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에 장애가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임에도 유전, 비만, 식습관 등 개인적 문제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저혈당 음식을 먹고 주사를 놓는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 희귀하고 치명적인 질환임에도 당뇨병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사람들의 편견과 외면으로 치료에 더욱 어려움을 받고 있다.
'위라클'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본다. 채널 운영자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불구가 되었다. 자신과 장애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겪은 에피소드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난 그중에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에서 버스를 타는 장면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여실이 보여준 것 같아 씁쓸했다.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그가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먼저 타려고 하지 않았고, 내릴 때는 도와준다. 승객 모두가 아무 말 없이 기다린다. 한국의 버스에서는 달랐다. 그가 버스를 타고 장애인석에 휠체어를 놓기도 전에 출발한다. 정거장에 도착했지만 휠체어가 내리기에 여의치 않아 문이 열리지 않자 다른 승객은 먼저 내리겠다며 문을 열라고 한다. 두 나라에서 보인 이 큰 차이는 무엇일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의식의 차이일 것이다. 질병과 장애는 우리는 삶 속에 항상 존재한다. 질병과 사고, 재난은 누구나 겪을 수 있으며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주토피아>는 어울려 살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차별받는 인간 세계에 대한 은유다. 희망은 반성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토끼 주디가 여우 닉에게 자신의 편견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반전은 시작된다. 당신은 편견을 고백할 용기가 있는가. 영화가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류머티즘 관절염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내 주변의 아픈 이들을 보지 못했다. 1형 당뇨가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봐도 그들의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희귀 난치성질환으로 등록되지 않아 산정특례를 받지 못했다면 나 역시 치료비를 걱정했을 것이다. 만약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시기를 놓쳤다면 휠체어를 탔을지도 모른다. 아프고 난 후에야, 내가 난치병 환자가 되어서야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보였다. 부끄럽게도 이 글이 아프기 전, 편견을 가지고 외면했던 나를 고백하는 글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주변을 둘려봐야 한다.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관심 어린 시선이 결국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고백으로 황궁아파트 주민과 외부인이 공존하고, 1형 당뇨 환아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고,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하지 않길, 편견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