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검댕이 눈썹과 봉숭아 꽃물
제 빛깔, 제 모습
예뻐지고 싶었다.
처음이었다 그런 내 맘.
그녀는 갓 따온 사과처럼 상큼하게 다가왔다. 희다 못해 눈부시기까지 한 우윳빛 피부. 숯이 적어 보호 본능을 일으킬 만큼 가녀린 눈썹, 쌍꺼풀은 없지만 사슴처럼 크고 맑은 눈빛, 피아노 건반과 어울릴 것 같은 걀쪽한 손가락. 그 끝엔 봉숭아 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꼭 다문 입술이 펴지며 소리 없는 미소가 번질 땐 여리여리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누르뎅뎅한 피부와 숯검댕이 눈썹의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변두리 학교로 전학해 온 그녀가 깊고 어두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녀는 내게 미지의 세계를 열어준 열쇠였다.
어느 날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감지한 나는 가위 하나 찾아들고 거울 앞에 섰다.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젖히고 숯이 많은 검댕이 눈썹을 다듬기 시작했다. 다듬는다기보다는 가위 날에 잡히지도 않는 짧은 눈썹을 닿는 대로 잘라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살점이라도 집혔다간 선혈이 낭자할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듬고 보니 희끗희끗 갈래갈래 길이 나 있어 적잖이 실망하고 있을 때, 마른빨래를 안고 들어오던 엄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독설을 쏟아냈다. 어깨는 앞으로 오그라들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엄마 앞에서 고갤 숙인 난 내 행동이 죽을 죄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얼마나 혼났는지 예뻐지기는 잠시 동안 까마득히 먼 산을 휘돌기만 할 뿐이었다.
돌돌 말린 멍석이 때 되면 마당 가득 펼쳐지듯 그녀를 닮고 싶은 소망은 악을 쓰며 다시 나를 부추겼다. 피부 탈이 잦은 내게 문제가 생길까 봐 엄마는 선뜻 허락하지 않았지만 기어코 내 열 손가락은 봉숭아 꽃물들이기 의식을 치러내고 말았다. 열 손가락 모두 작은 비닐 집속에서 욱신욱신 쑤셨지만 샐비어 빛 빨간 그녀의 손톱이 내 것이 된다는 생각에 기나긴 밤을 비몽사몽 헤매도 힘든 줄 몰랐다. 따뜻한 봉숭아 액은 점점 손톱으로 스며드는지 손가락은 아리다 못해 끊어질 듯 아팠다. 진작 투정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졌어야 했건만 그녀를 닮기 위한 나의 의식은 종교적일 만큼 엄숙하였다.
저녁놀 붉은빛이 손톱 안에 가둬질 기대감으로 밝아 오는 아침을 성스럽게 맞이했다. 하지만 길고 길었던 인고의 시간은 길손처럼 떠날 채비를 꾸리고 있었다. 샐비어 빛? 저녁놀 빛? 오호라! 내 손톱에 남은 건 희멀건 김칫국물 같은 바랜 빛뿐이었다. 손가락이 뒤틀리는 아픔까지 감내했건만 내게 남은 건 퉁퉁 불어 터진 손가락뿐이었다.
그 후로 신부화장 전까지 단 한 번도 눈썹 정리를 한 적이 없으며, 봉숭아 꽃물에 손톱을 내준 적도 없다. 학창 시절,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동무들의 호들갑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숯검댕이 눈썹이 이리도 소중한 건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봉숭아 꽃물의 추억은 내 생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쁘고 아름다운 모습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몰랐겠지. 찬란하게 빛나는 다른 이의 빛깔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치며 살았을지 모른다.
선명하고 다양한 남의 빛깔을 탐한 적도 있지만 내 팔레트의 색감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손절할 줄 알았다. 말처럼 쉽게 떨치기 힘들다가도 더는 게 맞다고 결정되면 그 빛깔은 미련없이 떠나보냈다.
사람마다 제 빛깔, 제 모습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한 그녀 덕분에 흉하지 않은 나만의 빛깔을 가지려고 지금도 애쓰는 중이다. 고운 때깔은 아니어도 수수한 내 빛깔에 그녀의 미소를 보태는 중이다.
꼬불꼬불 소풍 가는 길만큼이나 마냥 즐겁던 어린 날, 자신에게 어울리는 빛깔을 간직했던 그녀는 지금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춤선처럼 살아가리라 생각하지만 눈썹에 타투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예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