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피트니스 자리 명단

by novel self

우리 회원들이 또 돌변했다.

귀엽던 회원들이 줄다리기를 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피트니스 GX실 자리의 명단 적기를 하고 있다.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댄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담소도 나누고 긴장되어 있던 회원 얼굴들이 차츰 웃기도 했다. 유한 분위기가 되어 나도 좋고 모두가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댄스 수업 시간에 맞추지 못해 요가 수업에 들어간 날이었다.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너 알고 있니? 이번에 또 누가 피트니스에 민원을 제기했대.”
“으응? 무슨 민원요?”
“댄스 수업의 GX실 명단 적을 때 이름만 적는 게 아니라 오는 순서대로 서고 싶은 자리까지 지정하여 적자고 했대. 본인 자리가 애매하다고 자신 혼자를 위해서 피트니스에 민원을 넣었대. 난 자리 욕심 없어. 근데 누가 내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설마, 누가 언니 자리를 탐내겠어요. 댄스엔 자리 룰이 있다는 걸 다들 알잖아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 요가 강사는 누구예요?”

10년 정도 썼던 자리인데도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던 회원 언니는 딴 생각하듯 무심히 말했다.
“남자 선생님이야.”
“와아, 오늘 세겠네요. 나 자국 생기는 자세는 하기 싫은데...”

...,
그날 요가 수업은 내 예측을 빗겨가지 않았다. 플랭크까지 추가 진행하여 내 무릎과 팔꿈치에 붉은 자국을 다른 날보다 더 발갛게 남겼다.



생각대로 된다더니, 그다음 날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가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런, 어떤 회원이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 버렸다. 실수한 걸까. 자리 욕심을 낸 걸까. 두 회원은 겉으로는 서로 웃음을 건네는 좋은 사이로 보였는데, 그날 어떤 회원이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의 자리에 이름을 적어버렸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당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굳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의 눈이 떨렸다. 차마 그 언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겉으로는 아무도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자리 명단에 내 이름을 적는 차례가 오자, 얼른 이름을 기입하고서 운동복으로 재빨리 갈아입었다. 마음이 급해 운동화를 반만 걸친 채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를 찾아 뛰어갔다. 그때 명단에 이름을 잘못 적었던 회원이 내 옆을 지나가며 자기 자리에 누군가가 이름을 적어버려서 자신도 모르게 얼떨결에 그 옆자리에 이름을 적었다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우리 피트니스 잘못도 크다. 댄스 자리 지정제를 실시하기로 했으면 GX회원들 모두에게 알려 줬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회원들은 얼떨결에 줄을 섰고 그 줄에 밀려 우왕좌왕하던 몇 명 회원들도 이름을 아무 데나 적는 실수를 해 버렸다. 14번 자리인 나와 2,7,8,9번 자리인 회원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서 그날 피트니스에 갔다. 그래서 암암리에 각자 자리라 여기던 곳에 이름을 정확히 적었다. 하지만 앞줄 자리 회원들은 그 자리가 불변의 고정석이라는 불문률 때문에 늦장을 부리다가 한 명만 빼고 앞줄 모두의 자리가 뒤엉켜 버렸다. 앞줄에 신입 회원이 서기도 하고, 기회를 노리던 회원이 다른 회원 자리를 은연중에 뺏기도 했다. 앞줄 가장 오른쪽에 서던 회원은 자리 명단표의 위아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급하게 이름을 적느라 엉뚱한 곳에 이름을 잘못 적기도 했다. 그런 후 GX실에 들어가 보니 자신이 맨 뒷줄인 걸 알고는 그 회원은 수업을 포기하고 그냥 나가버렸다. 또한 다른 날보다 일찍 왔지만 미처 자리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회원들은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GX실 입장 인원이 제한되어 함께 운동하던 회원들마저도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매일 신입 회원들이 새로 들어오고 있다. 거기에다 기존 회원들 중에서 수시로 바뀌는 공지사항을 빨리 수용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하는 회원들은 번번히 자리 명단에 이름을 잘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젊은 신입 회원들은 변경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여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그날도 내 옆 15번 자리는 새로운 신입 회원이 등장했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기존 회원들과 신입 회원들 모두가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니, 피트니스 측까지 포함하여 입장이 다른 세 경우를 모두 지켜봐야 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마음이 불편했다.

이 와중에도 내가 모르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GX실 입구로 가며 카페 쪽을 슬쩍 보니 이름을 잘못 적은 실수를 한 회원 옆에 다른 회원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실수로 적었을지라도 그 회원을 토닥이며 챙겨주고 있었다.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 곁은 조용했다. 그 언니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챙겨주는 이가 없었다. 그 회원 언니와 종종 점심을 같이 먹는다고 소문난 총무 회원도 곁에 없었다.

내가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들과 얘기 나누고 있자, 몇몇 회원들이 다가왔다.

아무런 해결책없이 무심히 시간이 흘러 댄스 수업 시작 시간이 5분 채 남지 않았을 때, 자리 명단을 잘못 적은 회원이 자신이 적은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자, 명단을 잘못 적은 회원 곁에 있던 회원들은 그냥 그대로 이름 적은 자리에서 운동하라는 의견을 내며 양보하면 어디에 서서 운동할거냐며 웅성거렸다.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사람보다 상황을 눈치채고 적절히 행동하는 사람이 더 어른스럽고 시류를 선도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당사자끼리 얘기해서 결론지으면 좋겠지만 두 회원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고 오히려 나머지 회원들이 이 불편한 사항을 도려내고 싶은 의견을 제시했다.

“댄스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 언니가 자리 명단에 쓴 자리와 서로 바꾸면 어떨까요?”

이때,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을 ‘방귀 뀐 놈 옆에 있는 놈이 성낸다’로 바꿔야 할 판이 벌어졌다. 수긍하는 당사자 회원들과는 달리 그 주변 회원들이 오히려 자리를 바꿔주지 말라고 했다. 양보하지 말라며 화난 표정으로 자리를 고수하라고 종용했다.

정말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봐주나. 자리를 잘못 적은 회원은 주변 의견에 둘러싸여 자신이 제대로 결정한 의견을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때 한 회원이 와서 당사자들끼리 얘기 나누어 결정하라고 권했다. 막힌 길이 뚫린 듯 갑자기 후련했다.

용기있네. 이 상황에 선뜻 나서서 중재를 하다니. 이제 두 사람이 직접 얘기하면 해결될 것 같구나.’

두 사람은 서로 얘기를 나누었고 댄스 수업을 같이 하는 회원 언니가 원래 서던 자리에서 운동하기로 결정 났다고 했다. 서로 좋게 대화해서 결정했다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자리 명단을 잘못 적은 회원이 그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타까워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회원의 빈자리를 보며 또 마음이 아팠다. 수업 내내 생전 틀린 적 없던 회원들이 댄스 순서와 동작을 틀리는가 하면, 어떤 회원은 박자가 여러 번 꼬이기도 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도 마음이 착잡해서 어떻게 운동했는지 모르겠다.
그날 확연하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은 누구든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시샘의 대상일 수 있다는 거다.

내가 피트니스를 다니기 전에 일어났던 피트니스 내 사건들을 나는 잘 모른다. 소문으로 들은 얘기들은 내게 온전한 진정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건별 그 당시 회원들이 취했을 각자 실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왜... 세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걸까.’

세상 사람들은 왜 모르는 걸까. 아무리 훼방을 놓아도, “잘하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평정을 유지하며 계속 열심히 잘할거란 사실을 말이다.”



(사진 출처, 오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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