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색한 피트니스

by novel self


편안하고 마냥 즐겁게만 지냈다.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며... 그렇게 살아서였을까, 모두가 잘 맞춰 줘서였을까. 친구들, 가족들, 지인들이 먹는 것과 여행, 운동 등등에서…


아니, 운동은 이제 아니구나.


나는 우리 아파트 단지 옆 L피트니스를 다니고 있었다. 그곳은 최소 10년에서 최대 20년 이상을 운동하고 있는 언니들로 가득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정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L피트니스를 선택해서 다닌 이유를 생각해 본다.

반론부터 내 놓으면, 우선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W피트니스에는 운동 강자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게다가 수영이나 내가 참여하지 않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많아 운동 초보인 내게는 적합하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로 W피트니스 회원권 가입을 할 때 수영 등 이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어도 L피트니스 회원권의 두 배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L피트니스를 다녔다. 여기는 규모도 작고 프로그램 가짓수도 적으며 회원 수도 적다. 회원들 연령대도 높아서 나이가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모든 종류 운동이 약한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L피트니스를 선택했지만 요가 경력이 있어서 동작이 약한 요가 수업이 지루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줌바를 비롯한 댄스 프로그램을 가끔 들어갔다. 요가는 어떤 곳이든 어떤 강사든 또한 어떤 회원이든, 누가 수업을 하고 참여하여도 불협화음이 거의 없었다. 설령 조금 있다 해도 부드럽게 얘기하며 서로 양보하여 더 좋은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댄스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달랐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혼잣말로 투덜거리거나 텃세를 부리는 기존 세력들끼리 왕왕거리거나 또는 불만이 있으면 피트니스 실장에게 바로 달려가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세계였다. 너무나 신기하여 여기서 견디려면 너털웃음을 가끔 웃어야 했다.


내가 예전에 했던 운동은 스쿼시와 요가였다. 스쿼시는 강사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을 하거나 두세 명과 운동을 했다. 그래서 각자 실력에 맞는 지도를 받아서 매우 흡족한 수업이었다. 랫슨에 이어하던 경기에서도 회원 각자 실력에 맞추어 비슷한 실력인 사람끼리 대결하도록 짝지어 주었고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 없을 때는 강사 선생님께서 직접 회원 실력에 맞추어 경기를 뛰어 주셨다. 요가는 정통 요가원을 다녔다. 정통 요가원 수업도 각자 건강 상태와 몸에 맞는 수업을 들으면 되었고 요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잔잔한 태도여서 (회원들은 매우 많았어도) 트러블 메이커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하나만 지도하는 곳에서 맞춤형 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복합적인 피트니스를 다니고 있다. 헬스, GX, PT, 골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도 있는 복합적인 피트니스를 다니면서 느낀다. 울 신랑이 만들어 준 온실 속에 내가 갇혀 살았나...


금전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분명히 예전에 다녔던 요가원을 다녔을 거다. L피트니스는 내가 다니던 정통 요가원의 4분의 1 가격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며 내가 소비자인데 L피트니스는 내가 구경꾼인 양 다녀야 한다며 신랑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다른 데로 옮겨.”라며 신랑이 웃었다. “사모님 편하신 대로 옮기면 되지.”라며 농담조로 말했다. 아니 이런 말을 하다니...


아들과 딸은 중학생 때까지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내가 가르치거나 그들 스스로 공부하여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아들과 딸은 학원을 보내 주거나 과외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 그렇게 해.”라고 말하고 학원을 보내 주고 과외를 시켜 주니 둘의 사교육비가 삼백만 원을 넘었다. 요즘 여학생들은 공부만 하며 살 수 없으니 화장품에 렌즈에 옷에 살 것들이 많다. 거기에다 영화도 봐야 하고 한강도 가야 하고 카페도 가야 한다. 다행히 아들은 사교육비 외엔 지출이 없었지만 딸의 추가 비용에다 둘의 용돈까지 계산하니 예전에 다니던 전문적이고 비싼 곳에서는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모르나. 그냥 비싼 데로 옮기라니... 수입의 어느 정도는 저축해야 하는 나로서는 비싼 곳에서 운동할 수 없다.


다시 L피트니스 운동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면, 요가는 문화센터나 TV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이고 쉬운 동작을 한다. 요가는 내 몸에 맞는 적합한 운동이다. 가벼운 동작을 하면 운동을 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한눈을 팔게 되었다. 줌바나 에어로빅과 같은 댄스로. 댄스 수업은 한 시간하고 나면 정통 요가를 제대로 한 시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댄스 회원들의 팽팽하고 매서운 분위기와 거침없는 말투가 내 출석률을 조금씩 떨어트렸다. 그런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요가 위주로 또는 필라테스를 가끔 하던 내가, 어느새 그나마 다정한 사람으로 보였던 댄스 회원의 권유로 커피 팀에 속하게 되었고 사적 모임까지 하며 그들의 충동적인 충돌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신랑이 퇴근하면, 졸졸 따라다니며 피트니스 에피소드를 꺼내어 코믹 코너 또는 하소연 시리즈를 늘어놓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다.


1년을 다니며 그런대로 적응하고 있었건만, 아파트 이름을 딴 조그마하던 L피트니스가 규모가 조금 더 큰 J피트니스로 재 오픈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시설까지 좋아지니 기존 회원에다 우리 아파트 건너편 스포애니에서도 오고 우리 단지 내 W피트니스에서도 오고 다른 동네에서도 몰려왔다. 과연 이들은 내가 지켜보고 경험했던 기존 피트니스 언니들과는 다를까? 아니면 비슷할까.
‘이들은 더 센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코로나로 인해 GX수업에 지장이 생기자 기존 회원들과 그에 가세하여 신규 회원들까지도 피트니스와 팀장에 대한 불평불만이 매일 하늘을 찔렀다. 거침없는 탄성들로 J피트니스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피트니스 카페를 지나가며 회원들과 피트니스 실장이 찡그린 얼굴로 언쟁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치며 스쳐 보는 건데도 불편했다. 카페 통로를 거쳐야만 탈의실로 갈 수 있는 구조여서 회원들은 그 불편한 광경을 피하려 해도 피할 길이 없었다.

알고 보니 피트니스 실장에게 GX실 모든 프로그램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대화였다. 굳은 표정과 불만스러운 표정, 중저음과 짜증 난 목소리의 대결로 보였던 대화는 언니들의 절실한 요청이었다. 계속하여 실장이 회원들을 협박하는 말을 하며 GX 프로그램을 열어 주지 않자 어떤 회원은 회원권을 취소하고 환불받아 가버렸고, 어떤 회원은 피트니스 실장에게 계속 조르거나 협박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 먼저 협박조로 말했는지는 몰라도 회원들 태도에 대응하여 실장은 폭력적인 말을 마구 던졌다.


“저희 피트니스는 GX실 수업이 없어도 그만이에요.” (실장)

“GX실 수업을 열어 주겠다며 회원권을 파셨잖아요?”(회원)

“계속 GX실 프로그램 얘기를 하시면 제가 GX실 프로그램을 그냥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장)

“그건 대표와 회원들이 결정할 일이지 않나요? 없앤다면 대표는 모든 GX 회원들에게 환불할 각오를 해야 하고 회원들은 그만 둘 마음을 굳혀야 하니까요. 실장님이 그럴 권한이 있나요?”(회원)

“네, GX실 프로그램을 하고 말고는 실장인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실장)


아무리 자기 사업장이 아니라 하여도, 덩치 큰 실장은 말투와 표정만 불편하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 GX실 수업을 듣기 위해 결제한 회원들 모두에게 무책임한 말을 마구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야성적인 노력이 한 달가량 계속 지속되자 피트니스 측은 마침내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었다. 결국 시에서 규정한 벌금을 감수하더라도 GX실 모든 프로그램을 열어 주기로 결정 내렸다. 이번 주부터는 모든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적진에 나가 적극적으로 대항해 준) 리더십 있는 회원들의 거친 함성 덕분에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회원들도 혜택을 본다. 그런데 코로나로 정부 방침과 피트니스 측 결정에 의해 GX실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을 24명으로 제한했다. 그리하여 수업을 시작하기 30분 전에 피트니스에 도착해서 명단에 이름을 올린 24명만 참석 가능하다고 공고했다. 다시 또 충돌이 일어나리란 걸 예상하리라.


수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암투는 삼일 만에 정착된 것 같지만 자리싸움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 자리를 맡기 위해 GX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그전 수업이 끝나 문이 열리면 바로 모두들 돌진한다. 첫날에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2년 차인 나는 세 번째 줄 왼쪽을 선택했기에 그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없다. 10년 차에서 20년 차 이상 언니들은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을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다. 치열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자리 배치가 끝나면 신나는 댄스가 시작된다. ’DANCE MONKEY’나 ‘Don’t start now’ 등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추기도 하고, 소리 지르며 추기도 하며 어느새 열정의 도가니가 된다. 흥이 절로 났던 수업이 끝나면 즐거웠던 몸짓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불쾌한 말을 뱉어낸다. 밀치기나 기싸움에 밀려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서지 못했던 회원들이 2차전을 벌인다. 다행히도 탈의실 싸움, 정수기 앞 싸움, 카페 테이블 싸움, GX실 내 싸움 등 난 하나도 목격하지 못했다. 감사하다. 다른 회원들을 통해 듣는 민원이나 싸움 얘기는 강도가 약하다. 그래서 그나마 운동을 다닐 수 있다.


조용한 곳에서만 가끔 운동하던 내가 이런 복합적인 피트니스에서 복잡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계속 운동할 수 있을까. 매일 운동하고 싶은데 과연 매일 갈 수 있을까. 실은 살짝 도망갈 궁리를 한다. 우리 단지 내 피트니스로. 수영을 안 해도 그 많은 프로그램을 이용 안 해도 맘 편하니까 돈을 더 내더라도 옮길까, 오픈 초창기이니 그냥 견뎌볼까, 하면서 이맘 저 맘이 교차한다.




망설이면서도 계속 J피트니스 댄스 수업을 들어가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댄스 수업은 기분 전환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리고 기분이 업되어 수업이 끝난다. 잊고 있던 내 모습이다.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내 모습을 찾아 의식하는’ 순간이다. 예전에 다녔던 곳의 운동만 내게 적합하다고 여기던 무의식 속 내 오래된 패턴(습관)이 편견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경험과 충돌하는 순간이다. 예전 운동 때는 아무런 충돌 없이 빨리 적응하고 순탄하게 다녔기 때문에 무조건 좋게만 평가했구나.

“무의식 속 내 패턴을 최고라 단정 짓고 그것만 계속 추구하며 고집하는 건 내가 만든 작은 사회 속에 나를 고립시킬 수도 있다.”

어쩌면 내 것만 옳다고 여기는 나를 나마저도 인정할 수 없어 색안경을 끼고서 나를 가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나를 가리려 해도 몸부림쳐도, 나도 모르게 내가 드러난다.

며칠 전 나의 아들이 딸에게 말했다.

“네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네 방에서 방송댄스를 연습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즐겁게 웃으며 지내는 모습은 바로 엄마의 과거이셔. 너의 그 모습이 어디에서 온 것 같니?... 엄마가 지니고 계셨던 모습에서 나온 거야. 지금도 그러시고 싶지만 엄마로서 가정이 더 중요하고 우리가 더 중요하셔서... 그러니 엄마를 너와 다르다며 부정하지 마. 바로 너니까."

그래, 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구나. 근래 들어, 나를 본인과 다르게 생각하며 나를 부정하는 딸에게 나의 아들은 아들이 처음 본모습이었지만 내 모습을 인정해 주며 나를 울렸다.(감동시켰다.) 아들은 나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찾아서 알려 주고 그 자체를 인정해 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아들이 나에 대해 딸에게 설명해 줄 때 비로소 깨닫게 된 내 모습을 이제는 나도 인정하기로 한다. 자발적으로 댄스 수업에 참여하여 노래까지 따라 부르며 리듬을 즐기는 숨어 있던 내 모습도 인정하기로 한다. 또한, 내가 항상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지하듯 나의 아들도 매번 나를 존중해 주고 지지한다. 그런 지지 덕분에 글쓰기 초년생이라고 변명하며 오늘도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한 글을 써 놓고 발행할까 말까 매번 망설인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를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서일까 매번 주춤한다. 하지만 ‘브런치 발행 글은 수정할 수 있잖아.'라는 명목 하에 무모하게 계속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도전 글을 습작이라고 위로하면서 더 발전할 나를 위해 계속 쓴다.

‘아직 출간한 책이 없으니 내가 책임질 글은 없잖아.' 이런 생각까지 하며 발행 글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려 하다니. 망설임이 책임감일 수 있건만. 아직도 모두에게 공개하지 못하면서 계속 쓰고 있는 나를, 내가 어찌하여야 할까.

……·


으흐, 나는 나를 안다.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할 나를 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쓰고 있을 나를 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그저 충동적으로 글쓰기 현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글을 쓸 때마다 내 위치를 깨닫고 멈칫한다. 첫 만남의 설렘은 간데없고 뒷걸음질 치며 돌아보기도 한다. 들뜬 마음은 어느새 주저하는 연인들처럼 이것저것 재고 있고, 그래도 쓰고 싶을 때는 막연하게 쓰고 나서 수정에 수정을 반복한다.

나를 향해 내면의 소리를 들어본다. 가만히 그저 조금씩이라도 인정해 보라고 나를 달랜다. 계속 써야 하는 나를, 어쩔 수 없이 계속 쓸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라고 말해 준다.


그래, ‘피트니스에서의 내 모습도 인정했잖아.’

지금껏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아 즐겁게 하던 나를 아끼고 사랑했듯이, 글쓰기 현장에서 아장아장 첫 발을 내딛고 있는 나도 사랑하자. 아직은 생소하고 어색해도 인간다운 삶, 자기 성찰,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이해)을 바라며 글 속을 통과하고 있는 나, 현재의 나 또한 인정하며, 아낌없이 사랑하리라.


(20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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