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엔 불안 괴물이 산다
"이모! 나 이제 쉬면 뭐 할지 한번 생각해 봤는데..."
만나자마자 나의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에게, 이모는 말했다.
"근데 꼭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해?
그냥 쉬면 안 되는 거야?
너 좀 쉬어. 너 한 번도 쉬는 걸 못 봤어.
일은 도대체 너에게 뭐야?
일을 안 하면 도태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종로에서 반가운 둘째 이모와의 만남.
이모는 열심히 "쉴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랜 기간 퇴사를 고민하였고,
이 글을 올릴 때쯤이면, 나는 회사에
"퇴사의사"를 밝힌 시점일 것이다.
"쉰다."
"온전히 쉰다."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하지 않고,
쉼을 갖는다."
이 '쉼'이 내게 과연 어떤 의미이기에
이토록, 나는 어려워하는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잠시라도 쉬지 못했다.
아니, 쉰다는 생각을 갖는 것조차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업계에 오래 있거나,
한 전문성을 열심히 키운 내 지인들은 벌써
직급이 과장, 팀장이 되었다.
또한, 내 주변에는
'나의 취미=나의 일'이 몸소 실천되어,
일을 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원동력을 잃지 않는 지인들도 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었고,
때로는 꿈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늘 무엇을 하고 있지 않으면,
뒤처질까 봐,
그래서 결국 내가 원하는 '커리어적 삶'을
살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또한, 몸소 경험을 통해
느끼고 깨닫고 배워야 하는 나의 성격도
한몫하여 늘 나의 삶을 바쁘게 만들었다.
쉬는 것에 마냥 익숙한 사람은 없겠지만,
쉰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나를 들들 볶는 것은
내가 쉬어야 하는 타이밍 마저 놓치고
나 자신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 이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해.
마찬가지로, 쉴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을 더 돌아보고
다른 것도 더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야.
너는 지금 일에 관해서 한 길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네가, 시선을 조금만 돌려 옆을 살펴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어.
그 길이 더 행복할 수도 있고.
하지만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면, 그런 기회조차 알 수 없지.
그 길은 처음에 생각한 길이 아닐 수 있지만,
언제든 새롭게 발견될 수 있어."
퇴사는 이미 길게 고민하였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잠시 쉼과 여유를 가지고,
나를 다독이며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
그동안 앞만 볼 줄 알았다면,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나를 인정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