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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18. 2024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다르다

결혼을 거부하는 여자의 심리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402




# 4

“잘 지냈어?”


아영은 자주 마시던 카페라테를 앞에 두고 상우에게 안부를 물었다.


“좋아 보이네. 너는 잘 지냈어?”


어색한 침묵을 뚫고 상우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거든. 아영아, 우리 결혼하자. 너만 괜찮다면 나도 너와 결혼하고 싶어. 당황스럽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도 이젠 너와 결혼할 준비가 된 거 같아.

솔직히 말할게. 나는 아영이 네가 약간 부담스러웠던 거 같아. 10년을 만나놓고 새삼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영이 너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참 잘 잘하잖아. 분명 장점이지. 네가 나를 좋아하고 때로는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그런 면모 때문에 우리도 오랫동안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온 거고.

그런데 네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 내가 가끔씩 하던 말 기억나?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매몰차게 거절해도 된다고.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네 그런 장점이면서 또 단점인 면모가 좀 힘들었던 거 같아…… 만일 결혼을 한다면 한계에 부딪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제는 괜찮을 거 같아. 네 그런 면모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러기로 결심했거든.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자.”


한참을 듣고 있던 아영이 말을 꺼냈다.


“상우야, 정말 감동이다…… 하기 힘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걸 어쩌지. 상우아, 나 지금의 자유로운 상태가 너무 좋아. 예전의 나였다면 바로 결혼을 승낙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정말 미안한데…… 이제는 내가 결혼할 수 없을 거 같아. 정말 미안해.”


아영이 매몰차게 거절하는 대상이 상우, 자신이 될 수도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이 둘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 5

몇 달 뒤, 아영은 난생처음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 상대와의 대화는 즐거웠고, 몇 번의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데이트 상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며칠 전 상우에게 받은 문자가 떠올랐다.


‘아영아, 나 상우야. 잘 지내지? 내가 그동안 또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네 의사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도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이기에 결혼하고 싶은 거야. 너라서 결혼에 용기를 낼 수 있을 거 같아. 충분히 생각해 보고 천천히 연락 줘. 그럼, 기다릴게.’


# 6

“거기 ○○ 웨딩홀이죠? 11월 토요일 중에 예약할 수 있을까요? 아…… 이미 예약이 다 찼다고요? 그럼, 12월은요? 네? 12월도 마감이라고요? 그럼, 예약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는 언제인가요?”


상우가 아영에게 말했다.


“아영아,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한다는 건 다 거짓말인가 봐. 12월, 추운 한겨울도 다 마감이더라고. 가장 빠른 날짜가 내년 6월이래.”

“급할 건 없잖아. 그럼, 결혼식은 내년 6월에 하고. 집은 먼저 합치자. 나 전셋집 계약이 곧 만료거든. 이사 두 번 할 필요 없이 이참에 같이 살 집부터 얻는 게 어때?”


돌고 돌아 우여곡절 끝에 아영과 상우는 결혼을 하기로 합의했고,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아영이 처음 결혼을 언급한 지 1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그사이 상우는 자신의 결혼관을 정립했고, 아영은 혼자 있는 충만감을 알게 되었다.


오래 연애하고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둘이 동거하기는 처음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아영은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언제든 두 사람이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는 상우도 마찬가지였다.


# 7

결혼식장 예약을 못 해서 1년 정도 먼저 동거를 한 것이 오히려 두 사람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아무리 서로 좋아하고 사귄 기간이 길더라도 데이트를 하는 연애와 일상을 공유하는 결혼은 같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이 살기에 적합한 좋은 룸메이트인지, 서로 다른 생활패턴과 성향을 양보하고 포기하며 맞춰서 살 수 있는지, 가사 분담은 실제로 잘 되는지 점검할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는 실질적으로 결혼을 한 상태나 다름이 없기에 양가 가족들이 집에 왕래하기도 하고, 때때로 가족 행사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유예 기간이기에 가족 간에 어느 정도는 조심하며 서로의 문화를 서서히 이해하고,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영과 상우는 서로 처음 보는 낯선 모습에 때로 당황하고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같이 거주하며 앞으로의 목표, 자녀계획, 육아방식, 집안일 분담, 가계 경제 계획, 소비 패턴, 양가와의 관계 등 결혼에서의 중요한 문제들을 충분히 논의하고 협의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일상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 8

유월의 어느 멋진 좋은 날, 턱시도를 입은 상우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영은 상기된 표정으로 하객들 앞에서 성혼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나 박상우는 김아영을 아내로 맞이해 평생 사랑하고 아끼며 슬픔과 고통, 행복과 기쁨을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구속과 속박이 싫고 결혼에 자신 없다던 상우는 인생에서 한번뿐인 아영과의 결혼식 준비에 열성을 다했고, 자신에게 더욱 깊은 사랑과 믿음, 세상을 일깨워준 아영에게 평생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 김아영은 박상우를 남편으로 맞이해 평생 사랑하고 아끼며 슬픔과 고통, 행복과 기쁨을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영은 처음 상우에게 결혼을 제안했을 때, 자신이야말로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그때 자신은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싶었고, 자신의 외로움을 상우를 통해 달래며 그에게 의존하고 싶었다고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한 현명한 상우가 고마웠고, 그 또한 평생 상우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탐스럽게 핀 붉은빛 부겐빌레아의 향긋함이 초여름 산들바람을 타고 번졌고, 하객들은 아름다운 신랑 신부를 향해서 아낌없는 축복의 박수를 보냈다. 더할 나위 없는 멋지고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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