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저> ‘안나’를 통해 본 피학적인 사랑
사진작가인 안나는 대체로 무표정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보인다. 타인에게 먼저 질문을 하기보다 주로 묻는 말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쥐어 주는 경향이 있다.
- 래리: 그녀는 불행을 원해.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해야만 자기 존재감을 느낀다고. 그래서 우울해지려고 불행을 안고 살지. 세상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그건 우울한 일이지.
래리는 안나를 불행을 원하는 우울증 환자에 자기 자신을 학대하기를 좋아하는 피학적인 인간으로 평가한다.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고 죄책감을 느끼기 위해 이성적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라고 알면서도 우유부단하게 자꾸만 자기 자신을 불행한 상황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실제로 안나는 충동적이고 유아기적인 댄을 거부해야 한다고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결국에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래리가 오만하고 권위적이며 지배적인 사람이라고 잘 알면서도 이혼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결국에는 그에게 돌아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만다.
자존감이 낮고 무기력한 안나는 한없이 유약하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이고 안정감을 추구한다. 그래서 안나는 수족관을 좋아한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갇힌 세상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살고 싶어서. 항상 특별한 보호를 받는 수족관 속 물고기를 동경해서. 댄과 연인관계이면서 왜 자신과 결혼했냐는 래리의 물음에 안나는 ‘댄과 끝내고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안나에게 행복이란 안정적으로 보호와 보살핌을 받는 느낌일 것이다. 안나에게 래리는 자신을 보호하고 안정감을 제공할 수족관이었던 것이다.
안나는 불안정하지만 다정하고 애 같은 댄이 아니라 지배적이지만 안정적이고 어른스러운 (그렇다고 믿는) 래리를 선택한다. 래리는 침대에서 때때로 자신을 창녀 취급하고, 전 남편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염려하면서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 ‘맞는 덴 익숙하다’며 무기력한 불행과 우울 속에서 죄책감을 안고 사는데 익숙한 안나는 자신을 학대하더라도 결혼이라는 관계의 안정감(일종의 수족관, 아쿠아리움) 속에서 보호받고 의존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이다. 안나에게 사랑이란 ‘부모 같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다. 상대에게 통제권을 쥐어 주고 자신은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허용되는 관계, 지배적인 배우자에게 ‘아이처럼’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며 복종하는 관계가 안나에게는 사랑이다. 댄에게 사랑이 엄마 찾아 삼만 리라면, 안나에게 사랑은 아빠 찾아 삼만 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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