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유명 나타(에그타르그) 가게 '파스테이스 지 벨렝'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맛집에 잘 가지 않는다. 기다리느라 지쳐서 막상 먹을 순간이 오면 주방장의 실제 요리 솜씨보다 덜 맛있다고 느끼지는 않는지 의심이 들곤 한다. 기다리는 동안 기대가 커진 만큼 어지간히 맛있지 않고는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미각이 잘 충족되지 않는 것도 같다. 물론, 명불허전인 음식점도 많았지만, 소문보다 그저 그런 음식점도 적지 않았다. 이런 소신으로 포르투갈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타(에그 타르트) 맛집 ‘파스테이스 지 벨렝 Pastéis de Belém’에 가지 않았다면? 모든 여행 안내서에서 강력히 추천하는 음식점인데? 아마도 억울한 마음에 울어버렸을 거다. (가지 않았다면 무슨 맛인지도 몰랐겠지만)
나는 가게가 문을 여는 오전 8시가 조금 지나 파스테이스 지 벨렝에 도착했다. 겉에서 볼 때 그리 커 보이지 않은데, 가게 안은 축구장을 방불케 할 만큼 넓었다. 아예 실내의 문을 헐어 뚫거나 문을 열어놓아 각 공간을 폐쇄적이지 않도록 서로 연결해 내부는 더욱 커 보였다. 손님들은 이미 곳곳에 한 테이블씩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나도 아늑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나타 두 개와 샌드위치, 허브티를 주문했다.
‘벨렝의 나타를 먹고 난 뒤 당신은 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먹어 온 에그 타르트는 모두 거짓이라고.’라는 여행 안내서(송윤경, <포르투갈 셀프 트레블>, 상상출판)의 묘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갓 구워져 나온 나타를 한 입 베어 물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환상적인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겉의 과자는 바삭하고, 안의 커스터드 크림은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달았는데 오묘한 조화가 그야말로 예술이다.
곧바로 ‘샌드위치를 시키지 않았다면 나타를 서너 개는 더 먹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했다. 든든한 포만감에 행복하기보다 서글프긴 처음이었다. 이후 다른 곳에서 나타를 두어 번 더 먹었지만, 벨렝의 나타를 맛보고 나니 다른 나타는 전부 가짜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절대적인 맛이었다.
유럽에서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가 두 곳 있다. 첫 번째는 이탈리아 피렌체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a dell'Accademia di Firenze에서 혈관 하나하나 생동감이 묻어나는 경이로운 다비드상 Davide di Michelangelo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예술 서적에 실린 다비드상 사진은 실제 다비드상을 0.001%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접 본 다비드상은 눈빛에서 무시무시한 공포에 떠는 절박함과 그러면서도 골리앗에게 처절하게 맞서 싸우고자 하는 다비드의 결연한 의지가 같이 느껴졌다. 예술품을 보면서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숭고한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눈물이 흐르긴 처음이었다. 두 번째가 바로 포르투갈 리스본이다. 파스테이스 지 벨렝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나타를 또 한 번 먹을 수 있다면 기꺼이 긴 비행 여정을 감내할 수 있다. 나에게 벨렝의 나타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 다비드상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할 만큼 가치가 있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디저트는 대부분 수도원에서 탄생했다. 과거, 수녀복에 풀을 먹이는 데 엄청나게 많은 달걀흰자를 사용했고, 남은 달걀노른자는 버리기 아까운 음식물 쓰레기였다. 이에 수도원 수녀들은 중세부터 설탕과 달걀노른자를 이용해 ‘유혹의 맛’을 개발해왔다. 이 유명한 나타 가게가 1873년 제로니무스 수도원 근처에 문을 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 수도원에서 벨렝의 나타 비법을 전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미사에 사용하는 밀떡을 만들 때 달걀의 흰자만 사용하고 노른자가 남게 되자 만든 음식이라는 설도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포르투갈의 환상적인 디저트에 수도원이 연관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 나타의 제조 비법을 아는 사람은 단 3명으로 따로 마련된 방에서 직접 만든 커스터드 크림을 넣어 구워낸다고. 한마디로 비법은 절대 기밀이다. 만약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세 사람은 함께 여행을 갈 수도, 같은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고 한다.
벨렝의 나타로 특별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가게 문을 나섰다. 이제 오전 9시인데 벌써 주문이 밀려서 몇몇 사람은 줄을 서고 있었다. 아마도 점심 즈음에는 매장 안은 손님으로 꽉 차고, 계산대에는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룰 것 같았다. 감동을 안겨준 나타와 설레어 보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 내용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진과 보실 수 있도록 내레이션을 넣어 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아래 영상을 살펴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