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다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 아침 미역국을 끓여 마눌 생일상을 차렸다. 결혼후 25년, 마눌 생일상은 내가 차려왔다. 다른 날은 차린 밥상을 받더라도, 생일상은 직접 챙긴다는게 내 다짐이었고 재작년 생일까지는 까먹지않고 쭉 이어왔다.
항암중이 아니었다면, 작년 생일도 챙겼을 것이다. 구토와 속 울렁거림으로 음식 냄새 맡는 것도 힘든 지경이라 도리가 없었고, 마눌 또한 생일을 챙길 기분이 아니라해서 그냥 넘어갔다.
작년 못챙긴 생일까지 올해 두배로 챙겨주리라 생각하고, 둘째와 작전을 짰다.
어제 오후 다이소에 들러 생일카드를 사고, 골목시장 어귀 꽃집에 들러 장미 열 송이를 담은 꽃다발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국거리 소고기가 있다고해서 예전처럼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면 되려니 했는데, 올해 두배 행복한 생일상을 원하는 마눌은 해물 미역국이 땡긴다고 한다.
저녁 밥을 먹고 마눌이 설거지를 마친 후, 주방을 접수한 후 딸과 함께 엄마 생일상 작전을 시작한다.
나는 미역국과 계란말이 담당이고,
딸은 불고기와 시금치 무침을 맡았다.
어제 저녁 임무는 오늘 아침 생일상을 위한 식재료 손질이 전부다. 딸이 학교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8시까지는 식사를 마쳐야 했다.
오늘 새벽 두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아침 6시반에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지만 핸드폰을 거실에 두고 잠드는지라 혹시나싶어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새벽 5시경 잠에서 깨어 시간을 확인하며, 문득 다행이다 싶었다.
알람이 안 울린게 맞구나, 하며 안심 했지만, 그보다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아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침 신경쓰지 말고 그냥 푹 자라는 마눌 성화에 다시 잠들었다가 알람 소리에 깨어 부지런히 아침상을 차렸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어제 끓인 미역국을 가열해 마눌이 손질해둔 전복과 새우를 넣고 다시 끓인다.
옆에 선 딸의 손길도 분주하다.
내가 계란말이를 하는 동안, 어느새 호박전을 부친다. 요리배틀을 하는 마냥 아빠와 딸은 약속한 시간에 생일상을 차렸다.
마눌에게 꽃다발과 손편지를 안기며 말한다.
"장미 한 송이에 10년이오.
100세까지 건강하고 평안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