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의지, 삶의 용기를 찾는다
어제 밤, 3박 4일의 시골 방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시골집에서 하룻밤 자며 87세 되신 엄마 생신을 축하드리고,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해남 흑석산 자연휴양림에서 2박을 했다.
나흘동안 짜임새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마음이 개운치않다.
어제 서울로 떠나려는데, 기어코 엄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당신 몸도 성치 못한데, 아직까지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쌀 한 포대도 예전처럼 어깨에 둘러매지 못하는 힘빠진 아들이 애처로운 듯 했다.
대문밖까지 들리는 엄마 울음소리에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마눌과 딸 손을 붙들고 차에 태워 서울집으로 왔다.
휴양림에 머물며 해설사와 함께 한시간여 숲 산책을 했는데, 동식물이 공존공생하는 숲의 생태계에 대한 설명이 인상깊었다.
나무는 주변 다른 나무의 생육에 방해되지 않도록 방향을 달리해 줄기를 뻗치며 자란다고 한다.
숲에 사는 모든 것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고,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한다.
사찰 입구에 상사화가 만개한 천년 고찰도 둘러보았다. 대흥사는 지금은 수원에 머무는 친구 스님이 법문에 들어선 초기, 수행처로 삼았던 곳이라 십여년전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 열 세척으로 왜선 삼백 척과 싸워 이겼다는 전설의 격전지 명량 앞바다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 곳에는 기념사진이 되도록, 장군의 어록,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어제 낮에는 엄마의 서운함을 달래기위해 다시 시골집에 들렀다.
목포 시내로 모시고 나가 점심을 먹고, 시골집으로 돌아와 짐을 꾸리는데 엄마가 힘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이제 오래 못 살거 같어야. 살 용기가 없어야." 하신다.
도착했던 첫 날 저녁에도, 다음 날 아침 생신상을 드신 아침에도 그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늙으신 엄마에게 삶의 의지를 채워드리고자 엄마 손을 붙잡고 '나는 산다'를 함께 외치고, 며느리와 손녀딸은 손편지를 써서 읽기도 했다.
엄마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며, 나는 어떻게 생의 의지를 붙잡았나, 돌아본다.
생각해보니, 작년 봄 뇌종양을 통보받았던 순간부터 무너져내린 적이 없다. 주변 친구들은 멘탈이 강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을 생각하면 무너질 수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빈 자리를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젊은 나는 그렇게 버티고 살고 있지만, 늙으신 엄마에게 그리 가르칠 수는 없다.
엄마의 부재가 아들에게는 크나큰 슬픔임을 자연스럽게 느끼시면 좋겠다. 아직 아들은 엄마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음을 알아채시면 좋겠다.
엄마가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자식에게는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시도록 자주 전화드리고, 찾아뵈야겠다.
아들이 엄마에게 삶의 용기가 될 수 있도록, 막둥이 사랑을 엄마가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다음에 뵐 때는 언제 울었냐는듯하며 환하게 웃는 엄마를 기대하며 몸관리를 하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