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적응 생활이 끝났다. 방글라데시, 가이반다 지역에 위치한 GUK라는 NGO 기관으로 파견 오게 되었다. 그전에 미리 가이반다에 2박 3일 동안 방문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친숙했고 환경은 익숙했다. 첫날, 간단하게 미팅을 갖고 쉴 줄 알았다. 정확하게는 쉬고 싶었다. 예상대로 미팅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을 계획했고 우리와 함께 일할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끝이 났다. 하지만 미팅이 끝난 후 대표님께서 함께 직업학교의 학생들 수료식에 동행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계획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쉬고 싶었는데 거절하기는 어렵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여 따라갔다.
직업학교에서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봉제, 운전, 여러 기술, 컴퓨터 활용, 디자인 수업뿐만 아니라 해외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아랍어와 일본어 수업도 있었다. 현재 한국어 교육 수업도 코이카와 협의 중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교육에 필요한 재봉틀, 컴퓨터 등 교육에 필요한 물품들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이 수업들의 커리큘럼은 매우 기초적이었다. 컴퓨터 활용 같은 경우, 엑셀 기초 함수 위주로 가르쳐 주었다. 이 과정들이 총 4개월 간 이루어진다. 좀 더 깊고 오래 배우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후 우리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행사에 게스트가 되었다. 교장실에서 지역 구청장과도 만났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축하연설도 하였다. '배움에는 국경이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이상한 소리만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만 피식 나왔다. 한국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을 연설이었고, 그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을 행사였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100명 이상 참여한 행사에 구청장, 교장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생긴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만남은 계속되었다. GUK는 방글라데시 북부 지역에 가장 큰 NGO 기관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사업, 연구, 조사, 봉사 차원으로 방문했다고 한다. 이미 우리처럼 해외 봉사자들도 많이 들렀다 갔다. 한국인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이었만 그전에 일본,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봉사자들이 GUK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런 이유로 여기 직원이 아닌 여러 직종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중 우연히 방글라데시 기자 한 분이 우리에게 흥미를 가지신 것 같았다. 우리에게 다가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은 방글라데시 NGO 기관의 운영능력을 취재하고자 GUK에 방문하셨다고 하셨다. 우리의 이름, 나이, 전공, 국적 등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봤다. 홍수 대응 능력이나 피난처에서의 사람들의 생활, 교육, 음식, 위생 문제 등 뉴스로만 봤던 방글라데시의 현실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고 하셨다. 정부에서 지원은 해주고 있으나 자원이 부족해 모든 곳에 도움의 손길이 가지 않았다. 특히 몇 백 명이 쓰는 공간에 화장실은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더 고통받는다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는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이곳에 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연치 않은 만남들이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한국에서는 갖지 못할 자리였고 관심도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갑자기 이야기를 걸어온다면 신천지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야기를 건다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도 외국인이 혼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궁금해했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왔으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의도치 않은 만남들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도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