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의점에 간다』소통하지 않는다.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나는 편의점에 간다


불과 3년 전, 아파트 입주민 수가 10%도 안 되던 시기라 온라인 쇼핑몰도 마트 배달차도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살벌하게 빡빡이로 밀어버린 들판을 후들거리며 걸어서 외출을 해야 했다. 비라도 온 뒤라면, 운동화 한 짝이 진흙탕에 푹 빠져 몇 개 모르는 욕의 가짓수를 늘렸으며, 자연스럽게 열혈 민원인이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화답을 증오하기도 지칠 무렵에는 무거운 짐짝을 든 채 털썩 주저앉아 서울을 그리며 징징댔다.


추운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선명한 하늘색 자전거를 구매했다. 자전거를 타고 중심상가 혹은 더 먼 동네를 돌아다니며 발사믹 식초나 올리브유, 파스타면 등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가까이에 도서관과 공원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질렀다. 어여쁜 로스팅 카페에서 갓 로스팅한 커피의 산미를 구분할 일이 생기자 신도시가 살만해졌다. 그동안 아파트 단지 내에 아담한 이마트 편의점이 하나, 그 옆에 유명한 치킨집이 개업했다.


편의점 점주는 아주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한 분이지만, 도를 넘는 말과 행동은 엄격하게 필터링할 줄 알았다.

"아이코, 어서 오세요. 더우시죠. 넣어드릴까요? 오오, 친환경 장바구니를 갖고 오셨구나.

감사합니다. 이게 1+1 이벤트 제품인데 이걸로 추천해 봐 드려도 될까요?"

금요일 저녁이면,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주말 잘 보내세요." 등의 인사를 주었다.

이런 인사를 받으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오면 안 되나? 하는 염려가 들정도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분과는 말 섞는 게 나쁘지 않았다.


주변 편의점 사장들은 몇 번 방문하고 익숙해지면 개인적인 것들을 묻거나,

나에 대한 자신의 기억력을 자랑하고 선을 넘으려 들었지만,

그는 절대 개인적인 것들을 묻거나 내가 구매하는 물건에 대해 사족을 달지 않았다.

여타의 편의점과 달리 그의 친절은 물건을 사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만약 이것 또한 편의점주 양성과정에 세밀하게 고안된 '어나덜 레벨을 지향하는 지성적 편의점 교본'을 따른 것이라 해도 편의점의 거대한 관대함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애티튜드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편의점에 들렀다. 사장님 대신 편의점 조끼를 입지 않은 여사님이 한 분 계셨다.

보기 좋은 적당한 살집과 옅은 화장, 적당히 지루한 표정을 입에 문 모양새가 친절하신 사장님의 부인인지, 가족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

'과묵하시네.' 인사를 되받지 못한 겸연쩍음과 함께 살짝 경계심이 올라온다.

침묵의 드리블 속에 무겁게 든 컵라면과 우유, 바나나, 통에 든 아이스크림 한 개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이쯤 되면 입을 떼야할 것 아닌가?'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는 내가 카드 넣기를 기다린다. 턱으로 카드 넣을 방향을 지시했나 싶기도 하다.

"결제되었습니다." 기계가 말한다.

담배 진열장 뒤편으로 저만치 물러나 내가 물건을 하나하나 주워 담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고약하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며 재빨리 주워 담고 나왔다.


그녀와의 대치가 몇 번 계속되던 어느 날.

이번에는 내가 고약을 떨고 싶어 계산대 위의 물건을 부러 천천히 주워 담았다.

'조금은 친절해 줘도 되잖아?' 하는 '유치하고 소심한 대항'이다.

이번에는 나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녀 역시 아무 말하지 않는다.

출입구 문을 열고 나오는데 입구에 달린 종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 후로는 훨씬 먼 건너편 아파트의 CU 편의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넣어드려요? 종량제 봉투 드릴까요? 나무젓가락은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대 중반으로 여겨지는 CU 편의점 직원의 말투는 친절했다.

그리고 눈빛에는 감정이 없어 로봇 같았다. 나는 다시 거대한 관대함에 익숙해진다.

#김애란작가 #창비

"그는 내 전공을 묻지 않는다. 나는 내 전공을 모르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쓰레기봉투나 사는 여자와 구별될 것이다.

내가 그와 사랑을 하고 싶어 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 사생활을 아는 그가 못마땅해졌을 뿐이다.

알면서도 침묵하는, 그의 무식함이 뻔뻔스럽게 느껴졌을 뿐이다.

전자레인지에서 햇반이 돌아가는 일 분 삼십 초 동안,

혹은 서울우유가 돌아가는 이십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가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장을 꺼내놓듯 내가 먹고 싸고 하는 것을 드러내는데

너는 언제나 푸른 제복을 입은 채 무심하다.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식품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포장마차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패밀리마트에서 콘돔을 샀던 미성년자 같은 성년으로 모두 다르게 알고 있는 동네에서

그는 최소한의 진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나는 편의점에 간다. 창비, 2017)



책을 읽는 동안 목구멍 깊숙이에서 낄낄낄 혹은 껄껄껄 같은 종류의 웃음소리가 올라온다.

화자의 이러한 재미있는 유추가 나온 데에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독창성 플러스 복합성까지 주목해 봐야 한다. 전후 맥락을 떼고, 이 문단만을 보았을 때 주인공의 이런 유의 착각은 귀엽지만, 오랜 은둔자에게서 보이는 정신병적 집착으로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이해되기에는 약간의 투정을 곁들인 작은 고백으로도 보인다.


편의점은 현대인의 '타자화된 일상'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편의점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익명성에 익숙해진다.

편의점은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에 따라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감정이 실린 눈빛이나 구매물건에 대한 평, 개인사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은 성가신 일이다.

모든 이들에게 너 누구냐?라고 묻지 않는 거대한 관대를 경험하게 되는 공간이다. 아무개가 24시간 아무 때고 들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누구와도 자유롭게 소통하면 안 되는 공간으로서의 존엄을 지닌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편의점에는 이 규칙을 가끔 잊거나 말을 섞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븐일레븐 사장의 친밀함을 더해가는 관심이 그녀에게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냥 두었으면 그녀는 거짓말쟁이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고, 편의점 주인은 단골을 잃어버리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이동식 포장마차 아들은 21세기 고객 응대의 기초인 개인 질문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뜬금없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고백한다. 당황한 그녀는 결국 거짓말을 한 번 더 보태야 했고,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어색함과 민망함이 생겨났다. 이런 종류의 감정들을 불편함으로 퉁친 그녀는 발길을 끊는다.


불친절하고 눈앞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던 패밀리마트 중년 여사장.

거대한 관대 마인드 장착에 실패하고 오히려 호기심의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성인으로서 콘돔을 사는 자유스러운 구매행위를 수치스런 상황으로 몰아간 여사장의 호기심은 충족했으리라. 법적으로 문제 될 일도 아니고 큰 과오를 범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결국 이 세 업장의 공통된 미스 포인트는 '거대한 관대'라는 미덕을 잘 숙지하지 못한 결과이다.


한편 인상이 온화한 부부가 새로 오픈한 Q 마트는 세련된 매장에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는다.

고생 없는 삶을 산뜻한 Q 마트 부부의 부드러움, 친절의 이면에는 분명 자본주의적 잔인함과 계산이 들어있다. 편의점 이용자들은 평상시 필요한 물건들을 재빨리 계산하고 나가버리지만, Q 마트 구매자들은 느긋하게 상품을 둘러보고 예상보다 조금 더 바구니를 채우며 평범한 소비자이자 시민이 되어본다.


주인공은 편의점 두어 곳과 분식점 등을 기웃거리다가 누군가 소통을 시도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발길을 끊는다. 주인공은 소통하지 않는 현대인을 대표한다. 과연 그녀가 편의점을 선택한 걸까?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녀는 Q 마트의 거대한 관대에 가장 적합한 손님이기에 가장 마지막까지 정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맞았기에 선택한 장소에서 어느 순간 그녀는 결이 다른 것을 원한다. 다른 욕구를 느낀 것이다. 편의점 이용자가 거대한 관대를 받으려면 자신 역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편의점 직원이 자신의 신상을 낱낱이 알고 있으리라는 착각을 시작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가 이상적으로 선택한 편의점의 국룰을 깨버렸다. 편의점은 진정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를 감추고 더 많은 감정의 시간을 투영하는 장소가 아닐까?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현대인의 착각일뿐, 소통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소통하고 싶은 더 강한 욕구가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편의점을 통해서 소통의 부재라는 명제를 들여다보았다. 소통의 부재라는 화두가 2025년에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빠른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심리적인 간극은 상상 이상 멀어졌다. 각종 미디어의 홍수 속에 원하는 자료를 선택적으로 습득하고, SNS를 이용하면서 개개인의 가치관은 천차만별이 된다. 사람 간 대화는 어색하고 힘들어진다. 전화통화도 부담스러워지면서 부모와 자식, 친구 , 직장동료와도 모두 문자로만 소통한다. 적어도 문자에는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행위가 지속되면서 문자에 실린 감정도 검증하게 된다. 문자 보내기도 이모티콘 고르기도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대화가 필요해' 라는 말이 시대를 흘러간 코미디 화두가 아닌 것만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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