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불안한 사회 견디는 연대

by 서은

"오늘 편의점 조끼를 벗으면서 생각했어.

월세 60만 원과 교통비 8만 원 통신비 5만 원, 공과금 10만 원은 절약할 수 없는 금액이야.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으로 한두 끼는 그럭저럭 해결되니까 식비라고는 라면과 햇반, 물, 통조림 몇 개 사는 게 전부야. 쳇바퀴 돌듯 일하는 데 대한 보상이랄까, 사는 게 좀 있기는 해. 티셔츠나 청바지, 남들 앞에 내놓지 못하는 싸구려 화장품 등등. 필요한 걸 사는데도, 이게 정말 꼭 필요한가 계산하면서. 그러고 나면 통장에 남는 건 얼마이게?" 그녀는 생맥주 한 모금을 홀짝대며 말을 이어갔다.


"며칠 전에 라면 끓이다 TV에서 투견 훈련 시키는 걸 봤거든.

목줄에 묶인 채 러닝머신 위를 쉴 새 없이 달리더라. 주인이 돈 벌 욕심에 말 못 하는 개를 학대하는 거지. 그 개가 꼭 나 같더라, 근데 나는 누가 학대하는 거지"


"ㅋㅋㅋ 너도 말 잘 못하잖아? 그러니 사회가 학대하는 거지. 시스템 잘 갖춰놓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게 위로냐?' 다행히도 그녀는 내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친구들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데, 나는 먹고사는 데만 힘을 다 쓰고 있어. 기를 쓰고 돈을 모으는 게 맞기는 한데, 되게 힘든 날은 외식이나 쇼핑을 하게 돼. 당장 지치고 힘든데 절약이니 미래니 하는 건 떠오르지 않아. 그나마 허접한 소비라도 하고 나면, 내가 좀 정상적으로 사는 기분이 들거든. "

어제 편의점 창밖을 보는데 계절이 바뀌었더라. 사람들이 반팔을 입고 시원하게 걸어 다니더라고. 그게 되게 비현실적이었어. 김밥 하나를 레인지에 돌리려고 쥐었는데 손가락에 딱 힘이 들어가. 내가 손가락 중지로 삼각김밥을 꾹 누르고 있더라고. 유통기한 지난 것만 먹으니까 나도 점점 유통기한에서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학교는 영영 못 돌아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호칭만 변하겠지. 알바 아줌마가 되고, 알바 할머니가 되겠지. ㅋㅋㅋ."


"뭔 소리야, 친구야. 혹시라도 네가 알바 계속하게 되면 알바 아줌마 친구도 되고, 알바 할머니 친구도 돼줄게." 나는 또 속으로 생각한다. '그게 위로냐?'

내친김에 쓸모없지만, 해야 할 말 하나 더 보탰다. "우리끼리 연대해야지."

생각해 보면 친구나 나의 20대도 권 진주나 김 니콜라이와 다르지 않았다.




육천 원에 너무 맵지 않은 제육볶음과 뜨끈한 우거지 된장국, 푸릇한 쌈 야채를 주는 백반집이 있었다. 가성비는 떨어져도 종종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가 먹고 싶었다.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롯데리아에 갔다. 사거리의 중국집에서는 현금으로 계산하면 탕볶밥이 칠천 원이었다. 반은 탕수육, 반은 볶음밥. 밥 위에는 짜장을 얹어줬고 작은 그릇에 짬뽕 국물도 따로 나왔으므로 네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드물게는 치킨이나 떡볶이를 배달시켜서 이틀에 걸쳐 먹었다. 가끔은 지글 지글이나 보글보글하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

이 주 뒤 두 사람은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일인용 뼈해장국에는 안 넣어준다는 '국룰'을 함께 규탄하였다. 다시 이 주 뒤 중국집에서는 볶음밥과 짬뽕과 탕수육 소짜를 시켰다. 온전한 요리는 그동안 먹었던 반반 메뉴보다 맛이 더 좋았다. 니콜라이는 3조 2교대로 일했으므로 주말이 휴일이 아닌 때가 많았고, 진주는 근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시험 준비에 매진했지만 두 사람은 이삼 주에 한 번은 만났다. 즉석떡볶이집주인아저씨는 커플 세트를 권했다. 둘은 푸하하 웃었지만, 커플 세트가 저렴하긴 했다. "우리 무슨 맛집 동아리 같다. 그렇지?"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2024)



혼자일 때는 늘 뭔가 부족한 혼밥 메뉴에 지쳐 갈 무렵,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밥친구가 되었다. 학창 시절 같은 이유로 서로를 피해 다니던 두 사람이 먹방으로 다시 만나, 이제는 같은 이유로 연대한다. 부족함을 서로의 존재로 채워준 이들의 식탁은 풍성하고 맛있어 보인다. 끓여진 채 나오는 일인용 뼈해장국은 감자도 안 들어가 있을뿐더러 진정한 지글지글 보글보글을 경험할 수 없다. 감자가 들어간 먹음직스럽고 풍족한 감자탕은 지글지글 보글보글을 제대로 행사할 기회이다. 생각해 보면 식당에서 나오는 반반 메뉴는 어떤 만족감도 못 줄 때가 많다. 뭐 하나 제대로 먹는 게 나았을걸.이라는 때늦은 후회도 준다. 온전한 메뉴들을 늘어놓고 나눠 먹을 수 있다면 크게 일탈하는 소비는 아니면서도 제 그릇을 먹는 기쁨을 얻는다. 연대의 힘은 한 끼의 식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문장들은 강하게 혹은 척박하다. 때로는 숨이 가빠서 '쉼표가 어디 있지?' 잠시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을 드러내기에는 딱 좋은 문장들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끊임없는 유머와 유행어를 모색한다. 다 읽고 나면, '아, 그렇지. 내가 살아왔던 삶이고 여전히 수많은 누군가가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삶이다.'라는 감각이 살아난다.


사회 최고 극빈자로 자식 말고는 국가에 기여할 게 없는 계층이었던 고대 로마의 프롤레타리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문을 낭독할 즈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임금 노동자로 정의된다. 권진주와 김 니콜라이가 사는 세계에서는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배달 라이더, 콜센터 상담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자본주의 구조에서 불안정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이들이다. 소수의 거대 부르주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들이 가진 거라고는 노동력뿐이라 시간과 노동을 팔고 살아가지만 늘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다. 글로컬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김니콜라이는 여전히 귀화 한국인이 되지 못하는 글로컬하지 못한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다.


둘의 연대는 애초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을까? "둘이 친하게 지내."라는 담임교사의 무심하고 차가운 한마디에 독자는 '왜'라는 의문을 갖는다. 학교에 낼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재촉 봉투를 받는 두 아이. 같은 형편의 아이끼리만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해? 싶어서 역정도 난다. 이 둘이 아무리 서로를 피해 다녀도 결국은 연대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아니었을까? 더 이상 빈틈이 없어져 버린 사회구조상 평범하고 가난한 권진주나 김니콜라이가 다른 클래스의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조건과 유사한 사람을 만나 자식을 낳고 키우게 된다. 고만고만한 삶이 이어진다.


소수의 어른들이 고안해 둔 세계에서 권진주나 김니콜라이는 약자로 태어났다. 세상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진주와 니콜라이는 제 몫의 일을 하며 부족한 데로 살아간다. 소극적 안전망은 스스로 어찌어찌 만들어 나가지만, 적극적 안전망은 기대하기 힘들다. 시시때때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 만큼 잘못한 건 없다. 생각할수록 부당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 진주와 니콜라이는 작고 뾰족한 재생 버튼을 눌러 인터내셔널가를 재생하면서 알고리즘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4시간 51분 분량의 95개국 인터내셔널 모음가를 들려준다. 연대에 의해서 자신들이 가난한 도시 노동자가 아닌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외친 16세 봉제공 엠마 리스와 인터내셔널가를 함께 부르며 이들에게도 미묘한 저항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이 사회를 다시 한번 무너뜨린 세대에 대한 저항의 곡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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