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opyholic Sep 09. 2016

하늘을 바라보며 홀로 차를 마시네

:: 백차 + 대월도

한가위가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날이라고 올해의 다짐을 다시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것이 어제 같건만 무슨 시간이 이렇게 무심하게 빨리 지나가는 건지......

아아, 그렇다면 나의 올해의 계획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생각하다가 도리질을 치고 만다.

으윽, 그런 무서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한가위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한가위의 중요한 must do가 있다면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딱히 달님께서 내 소원을 이뤄주시긴 하는건지 의심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엉청 밝은 보름달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이것 참!

보름달을 생각하며 이번 한가위에 정화수 떠놓고 빌 소원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마원(馬遠, c.1160-1225)  ㅣ 대월도對月圖  ㅣ 송 ㅣ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관


몸종을 저 높은 산중까지 끌고 올라온 것으로 보아 나름 재력이 있으나 차림으로 봐서 검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귀족이 달을 바라보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근사한 소나무 아래 자리도 참 잘 잡았다. 저런 곳에서 한잔하면 술이 달게느껴질 것만 같다.

이 그림은 송나라의 화원 중 하나였던 마원의 그림으로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의 지금도 유명한 이백의 월하독작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대체 월하독작이란 어떤 시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月下獨酌

꽃 속에 술 한 단지 놓고 홀로 술 한잔 기울이네.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네.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달은 원래 못 마시고 그림자는 그저 나를 따르는구나.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모름지기 봄을 즐긴다.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내가 노래하니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는 흔들거리네.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술 깨었을 때는 함께 즐겁고, 취한 후에는 각자 흩어지네.                        醒時同交歡, 醉後名分散.

영원히 정에 얽매임 없이 사귀어 아득한 은하수 저편에서 다시 만나세.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위에 소개한 부분은 4수 중 유명한 1수다. 어쩌면 이렇게 술 마시는 장면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더군다나 요즘 혼술이 대세인데.....

이백은 이미 그 시절부터 끝내주게 낭만적인 혼술을 즐겼던 셈이다.

(사실 그가 그토록 술을 많이 마신 이유는 자신의 뜻대로 정치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끄집어내도록 하겠다. 이번에는 그저 달빛 아래 술을 즐기는 정취를 만끽해주시길~)

그러니 나라고 가만히 있을쏘냐~

비록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은 없지만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실 차를 궁리했다.

마원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뭔가 달밤의 산중의 느낌을 닮은 차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고, 

별들이 흩뿌려진 밤 하늘을 닮은 흑유잔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백차구나! 

그리하여 3년 묵어 진득해진 수미를 꺼냈다.



이렇게 된 것 차일기도 쓰자 싶어서 꺼내고....

(제 못난 글씨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들 계시겠지요? ^^;;;; )



정말 차 안 마시는 사람들이 보면 웬 낙엽을 갖다 놓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3년이 넘은 백차는 약효를 띄기 시작한다.

해열작용에 탁월하고 당을 내리는 데도 효과가 뛰어나다.



넘나 좋은것, 흑유잔.

백차의 맛을 더 달고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특한 녀석.

이백도 대월도의 남자도 술잔에 달을 담았다면 나는 하늘과 구름을 담았다.



대월도를 보며 자연에 가장 가깝게 닮은 백차를 곁들여 월하독작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나도 절로 시 한 수가 떠오르는구나!!


   홀로 찻잔을 기울이며

빨간 책상 위에 석표호와 흑유잔 놓고 홀로 백차를 마시네

잔을 들어 하늘에 올리니 구름 한 조각이 두둥실 떠가네

구름은 비가 되어 내려오고 빗물은 땅에 스몄다 올라와 찻물이 되네

향기롭게 익어가는 백차의 상쾌함과 달콤함이 찻물에 녹아

별이 가득한 밤하늘 닮은 흑유잔 속으로 흘러들어가네

나는 하늘도 구름도 시간도 기억도 모두 담긴 잔을 들어 홀로 기울이네


올해는 정화수 말고 백차를 우려서 달님과 함께 마셔볼까. 

그럼 정말 내 소원을 들어주실지도 모르잖아!

이번 한가위 보름달에게 내가 빌 소원은 사실 정해져 있다. 

몇 개를 물망에 올리고 고민 중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 하나로 낙찰되겠지.

어쨌든 달님이 소원을 이뤄주시고 말고를 떠나서 굉장히 휘엉청 밝은 달로 와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 정말 대월도를 떠올리며 건물숲 어딘가의 옥상에 올라 백차를 한 잔 기울여야지.

혼자이든 배불러서 귀찮다는 가족들을 기어이 끌고 올라가서 함께이든 그 추억은 오래도록 남을 테니까.



이전 02화 그냥 그렇게 매일 차를 마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