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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으로 사라지고 싶던 아침

:: 노차두+계산추색도

by Snoopyholic

바람이 제법 서늘했던 일요일 아침.

잔뜩 흐린 하늘을 노차두 한 잔에 담았다.

밤마다 눈물 흘리느라 진이 빠진 나에게 내린 그날의 모닝티 처방.

네가 없는 주말이 이렇게 허전할 줄은 몰랐다.

익숙해져야겠지, 하면서 찻잔 속 몽글몽글 맺혔던 회색 구름을 마셨다.

누가 가슴을 턱~ 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숨이 막혔다. 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속에서 슬픔이 훅훅 올라왔다. 나는 아침부터 청승맞게 울기 싫어 안간힘을 쓴다.

눈을 돌리고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애써보지만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서 너의 흔적을 발견하곤 다시 치밀어오르는 감정들을 억누르느라 숨이 막혔다.

이런 때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다면.... 너는 상상도 할 수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곳으로.... 그저 내 속에 있는 너를 꺼내 독대할 수 있는 미지의 어딘가로........


북송 ㅣ 조길(휘종) ㅣ 계산추색도


나에게도 천하를 호령할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면 휘종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기이한 혹은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바위 하나 모두 모아 조성한 간악 같은 나만의 원더랜드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음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조각배에 올라 스르르 물살을 타고 닿은 계곡가에 내려, 그곳 깊숙이 지어둔 암자에 숨어 들어가 은둔하고 싶다. 그곳에서 차 마시고 책이나 읽다가 네가 떠올라 슬픔이 찾아오면 머리를 산발한 채 악을 쓰고 통곡을 하다가 눈물을 닦으며 아름다운 나무들과 꽃밭 사이를 거닐고 싶다. 물소리가 재잘재잘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이끼의 푹신함과 안개 속에 휩싸여 신비하면서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나의 머리와 마음을 정화해줄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마음의 모든 네가 작아지고 작아지다 사라지면 스리슬쩍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연하게 살아가는 거다.



하늘이 그런 몽상은 멈추라고 햇살과 푸른 하늘을 파견했다.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흐리멍덩하고 뿌옇던 시야가 또렸해졌다.

서늘하고 투명한 바람이 눈물이 흐른 자리를 시원하게 지나갔다.

나는 커다란 소나무처럼 붉은 갈색의 차와 초가을의 햇살과 파랗고 하얀 색으로 뒤섞인 하늘을 마셨다.

말랐던 입 안을 달큰하고 부드럽게 적셔주는 따뜻한 차의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고, 네가 떠나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



덧_

1. 휘종은 실제로 엄청난 돈과 공을 들여 거대한 간악을 조성하고선 주변에 유락시설을 갖추고 동짓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등을 내걸고 마음껏 유흥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 노차두는 보이숙차를 만드는 과정 중 하나인 악퇴 때 덩어리져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된 것을 골라낸 것인데, 최근에 영양적 가치 등을 고려해서 인기가 높아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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