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그 눈을 보고 소름이 돋아 소리 지를 뻔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일어났어요?”
“……”
“인재씨, 저 좀 도와줄래요?”
나는 그놈의 목소리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뭔가 독기 가득한 섬뜩한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였다. 원래의 영래 목소리. 그래서 더 오싹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달라진단 말인가? 이게 지금 지킬박사와 하이드인가? 이중인격이라도 된단 말인가? 영래는 인재에게 파란색 액체를 주사하고는 몸을 결박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풀어줬다. 신기하게도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기 시작했다.
“저기,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어요.”
“여기 소설가들을 가둔 게 영감님 아닌가요? 근데 왜? 아까 그건?”
“미안해요. 믿기 어렵겠지만 제가 언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지 몰라요.”
“다른 사람이요?”
“여기 소설가들을 가두고 상상력을 뽑아가는 사람, 그 사람도 나요.”
“아니, 그게 무슨…. 상상력을 뽑아가다뇨?”
영래는 언제 다른 인격이 자신을 지배할지 모른다고 뭔가에 쫓기듯 말했다.
“인재씨, 이제 대충 이야기한 것 같으니 얼른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부탁하신다는 게….”
“우리 민정이를 좀 부탁해요. 지금 소설가의 서재에 있어요.”
“영감님은 어디 가시나요?”
“네, 저는 이제 떠나려고요.”
“떠난다니, 어디로….”
“이제 끝낼 때가 됐어요. 빨리 마무리하지 않으면 이것도 힘들 것 같거든요.”
“끝내다니요?”
“이 편지를 민정이한테 꼭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서재 지하실에 가면 인재씨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걸 찾으세요.”
영래는 인재의 손에 회색 봉투와 카드키 하나를 쥐여주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인재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분위기가 뭔가 서두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분위기라 재빨리 움직였다. 바로 옆에 묶여 있던 동혁과 준수를 풀어줬다. 풀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까 영래가 자신에게 주사했던 파란색 액체를 주사했더니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으음, 여기 어디?”
“동혁씨, 저예요. 정신 차리세요.”
“엇, 인재씨, 여긴 어딘가요? 아니 저 사람들은 왜 다 묶여 있는 거죠?”
뒤이어 일어난 준수도 잠시 고개를 저으며 잠을 떨치더니 인재에게 똑같은 걸 물어봤다. 인재는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자신을 도와 다른 소설가들을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그 공간으로 검은색 연기가 스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불이 났을 때나 볼 수 있을법한 짙은 연기였다. 그 짙은 연기가 모든 틈새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설가들은 모두 깨어났다. 깨우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재도 모른다. 다만 영래가 나갔던 그 문만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으로 그 문을 가리키며 ‘저쪽으로’를 외쳤더니 모두 그 문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