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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의 노크

25화

by 뮤즈노트

'지저인?'


생뚱맞은 말이라고 독영은 생각했다. 지하 데이터센터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두운 조직이라는 은유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이사는 기지개를 켜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놈들은... 아주 교활한 편이지. 오늘은 늦었으니 일단 쉬도록 하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자고."


독영이 엉거주춤 일어서려는 데 그가 물어왔다.


"참, 현장 직원들 말로는 코인로커에서 어떤 문서들을 얻었다고 하던데..."

"...!"


독영은 코인로커에서 얻은 문서를 떠올렸다. 화장실 안에서 잠깐동안 스쳐 본 게 전부였지만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세목이 떠올랐다. 그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LCI의 티뿐 아니라 한서의 아버지 역시 코인로커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놀란 기색을 숨기며 백팩에서 꺼낸 두꺼운 자료를 티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사는 두꺼운 종이뭉치를 술술 넘겼다. 하지만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가며 주의 깊게 살피는 게 보였다.


"끙. 꽤나 흥미롭군."

"..."

"이게 전부였나?"

"그게 전부입니다."

"소수에 대한 자료들이라..."


독영은 내심 놀랐다. 한서의 아버지는 짧은 시간 동안 난삽해 보이는 자료의 분류체계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저인들이 이 자료를 왜 자네에게 넘겼을까?"

"모르겠습니다. 단지 그쪽 회사가 폐기 단계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고, 짚이는 바가 있어 코인로커를 찾아본 것뿐입니다. 지저인이란 사람들이 교활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저 혼선을 주기 위한 가짜 미끼일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고, 어쨌거나 상세한 분석을 해보면 좋겠는데..."

"원본 자료는 가져가셔도 좋습니다만, 복사본은 제게도 주십시오. 저 역시 나름대로 읽어보면서 단서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사는 손가락을 까딱하며 비서를 불렀다. 잠시 후 비서는 원본은 가져가고 복사본을 독영에게 가져다주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독영의 질문에 한서가 대신 답했다.


"일단 우리 집에 묵으면 돼요. 선배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게스트룸도 정비해 뒀으니 불편하더라도 당분간 함께 지내요."


이사는 딸이 귀엽다는 듯 눈을 흘긴 후, 말했다.


"한서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한서도 당분간 회사를 나가지 않도록 조치했으니 심심하진 않을 거야. 무엇보다 밖을 돌아다니는 건 현재론 좋을 게 없어. 수사기관이 우리와 공조한다곤 해도 금융사법권은 다른 기관 소관이니 일이 꼬일 수 있지."

"선배, 회사 일은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해요."


독영은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이곳에 있는 것이 좋으리라 판단했다. 독영은 감사 인사를 하듯 고개를 꾸벅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저택답게 게스트룸은 오성급 호텔 비즈니스룸 이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전화와 노트북 등이 놓인 작은 서재 공간도 있었다. 독영은 샤워를 하고 가운을 입은 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코인록커에서 찾은 문서의 복사본을 뒤적였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설계사의 따뜻한 손을 잡는다면, 또는 지저인이라고 알려진 지나가 어둠 속에서 그를 안아준다면...


독영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자책하며 머리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지저인에 대해 AI에게 물어봤다.


지저인(地底人)”은 말 그대로 지하(地底)에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로 쓰일 수 있습니다:

문학적·SF적 의미
주로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음모론, 도시전설에서 등장합니다. “지구 내부(지저세계, Hollow Earth)”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인류 혹은 다른 생명체를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줄 베른의 『지구 속 여행』(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지요.

은유적·사회학적 의미
현대 사회에서는 ‘지저인’을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은유로 쓰기도 합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질문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면 더 자세한 정보를 검색해 드릴 수 있습니다.

독영은 어린 시절 읽었던 미스터리 백과사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곳엔 지저세계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극지방 어딘가를 통해 지하에 살고 있는 문명을 만나고 왔다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독영이 의도한 것도 아닌 데, 어딘가에서 메시지가 쏟아지듯 다양한 추론들이 하나의 물줄기를 이뤄 그의 생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지저인이란 별명을 통해 볼 때, 그들은 오래전부터 지하를 선호해 왔을 것이다. 아마도 수백 년간 그래왔을지도 모른다. 지상의 존재와 섞이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암흑에서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지상과 관계를 끊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열역학적으로 닫힌 계가 된다는 것은 폐열을 버릴 수 없다는 의미이고 동적평형상태, 즉 지하세계는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지저인들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IT의 발달일 수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지상과 지하는 존재하기 마련. 다크웹과 다크넷 등 어둠의 인프라를 떠받칠 수 있다면, 큰 수익을 거두는 것도, 폐열을 지상에 버리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개미굴과 같은 지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본격화한다. 굳이 지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정보를 관리하고 조작할 수 있으며 지상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암호화폐, 주가조작, 합법적인 투자사를 내세운 금융범죄가 그들의 주된 수익원이 된다.


'지나도 바로 그런 지저인의 일원이었을까?'


"똑똑-"


두 번의 노크 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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