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출신인 데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건강에 관심이 많은 여동생과의 통화. 비타민C, 소금, 오메가3, 유산균, 키토산은 꼭 먹어야 한다며 ‘C, 소, 오, 유, 키’로 외워두라고 신신당부한다. 알았다고는 했지만, 요즘은 이 외에도 듣도 보도 못한 성분의 제품들이 쏟아져나와 다 챙겨 먹다가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에 이를 것 같다.
약간의 불편함은 건강한 삶을 지킨다. 나는 약이나 건강기능식품보다는 제철 음식을 기본으로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실제로 비타민을 종류별로 다 챙겨 먹는 것보다 사과 한 개를 먹었을 때 비타민 흡수율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구매, 세척, 조리, 저작운동 등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면 한없이 행복한 불편(?)을 감수하고 자연적인 형태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매일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 ‘양배추는 가난한 자들의 의사’ 등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 속설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건강에 대한 교양 프로그램을 보다가 채널을 돌려보면 어김없이 홈쇼핑에서 관련 상품을 팔고 있다. 어찌나 사람을 혹하게 하는지 건강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구매욕이 마구 솟아나기도 한다. 덫에 걸린 느낌이다. 그런데 몸에 좋다는 성분을 몸속에 채우기 위해 약이나 건강식품을 이것저것 삼키는 것만으로 과연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먹는’ 행위는 인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맛을 음미하는’ 행위는 삶의 질을 높여준다. 음식의 맛을 느낀다는 것은 재료와 양념의 조합, 향, 온도, 식감 등 총체적인 감각으로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여러 가지 조합으로 맛보고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활발해지고 예민해지고 젊어진다고 한다.
다행히 남자와 나는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일에 진심이다. 외식을 자주 하지만, 대부분은 채소가 많은 음식이나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메뉴를 고른다. 집밥을 먹을 때는 되도록 조미료나 인스턴트식품을 기피하고 끼니마다 식재료나 조리법을 다양화하면서 5대 영양소를 꼭 포함하려 노력한다. (라면을 끊어야 하는데…)
운동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운동기구나 운동복도 편한 것만 찾는 추세인가 보다. 배에 두르고만 있어도 뱃살을 빼준다는 기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움직이게 해 주는 승마 기구, 입고만 있어도 체열을 높여 체중을 줄인다는 신소재로 만든 땀복 등.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특화된, 아주 솔깃한 정보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이 특정 부위를 운동시켜 주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달리기나 등산, 산책처럼 온몸의 감각을 활성화해 줄 수 있을까? 편한 것만 찾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나는 진심으로 운동을 싫어하지만 산책은 매우 좋아한다. 오늘은 어떤 꽃을 보러 갈까, 내일은 어느 지역을 탐험할까, 이번 달엔 맛집을 찾아 제철 음식을 먹고 근처를 둘러볼까, 다음 달엔 식재료를 사러 어디로 가야 하나 등등 즐거운 고민이 많지만, 작은 여행이나 산책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발바닥이 따끈따끈하면 기분이 좋다. 때로 감수하는 약간의 불편함은 기분 좋은 피로감,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건강을 안겨준다.
키토산 얘기가 나온 김에 대하찜을 하려는데 대하가 없다. 요즘이 제철인 대하는 흰다리새우로 대체된 지 오래다. 양식이 되지 않는 대하는 가격도 비싸고 잡자마자 죽어버린다고 하니 굳이 대하를 쓸 필요는 없다. 제철의 새우는 성장기 어린이와 청년, 성인병이 생기기 시작하는 중년, 뇌 건강과 관절·뼈 건강이 중요한 노년까지 모두에게 좋은 식재료다.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고 키토산 외에도 오메가3와 DHA, 칼슘, 철분, 인, 아스타잔틴, 타우린, 카로틴까지 그야말로 영양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이 성분들을 다 약으로 챙겨 먹으려면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지 않을까 생각하니 새우를 만드신 조물주께 한껏 감사한 마음이다. 가위와 이쑤시개만 있으면 되니 손질도 쉽고, 찌거나 구우면 되니 조리법도 간단하다. 새우는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한 양배추나 파프리카, 표고버섯과 궁합이 좋고 면역력을 촉진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의 증가를 억제해 주는 마늘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기름진 비릿함을 잡아주는 깔끔한 소주, 찐 새우의 부드러운 식감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막걸리와도 잘 어울린다니 마늘버터구이와 찜으로 안주를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술도 끊어야 하는데…)
P.S. 지금은 5대 영양소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을 꼽지만 내가 배울 때는 단백질, 칼슘, 비타민·무기질, 탄수화물,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비타민과 무기질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칼슘을 포함한 무기질 군(群)이 분리된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빨리 달리다보니니 시야가 좁아진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바뀐 것도 몰랐는데 나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