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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Oct 06. 2024

연포탕


  긴 여름이 지나고 시월이 왔고,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가을이면 단풍놀이로 전국이 들썩거리지만, 나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짙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관찰하는 일이다. 겨울이 오기 전 아직은 어디로든 여행할 의지가 남아 있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이 시간이 구름과 교감하기 가장 좋다. 가을하늘의 변화무쌍함은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구름을 좋아하게 된 건 헤르만 헤세의 ‘향수(鄕愁)’라는 소설을 접한 후였다.* 헤세는 구름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나그네길을 알지 못한다며 자신보다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고 할 만큼 구름을 사랑했다. 나는 헤세를 만나고 싶었고 구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설에서 ‘구름은 대지의 꿈이며 모든 방랑, 탐구, 희망,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구름을 보며 내가 떠났던 모든 길과 몰두했던 일들과 헛된 꿈과 그리움을 곱씹었다.


  젊은이는 설렘을 안고 집을 떠나 낯선 세계로 떠난다. 청운의 꿈을 안고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기를 소망한다.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험하며 뜬구름 같은 목표를 점차 형상화한다. 환희를 맛보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 한 해 한 해 꿈의 크기를 접어 줄이고 나름 괜찮다고 합리화하며 중년이 된 그는 먹구름 속에서나마 희미하게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좇아 나머지 힘을 쏟는다. 해가 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며 그는 불현듯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신기하고도 달콤한 솜사탕이나 작은 초콜릿 조각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는 것을.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구름에 마음을 얹는 날이 많아졌다. 고요한 적막 속에 자연을 느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잔잔하게 떠 있다가 갑자기 화가 나 거대해지고, 새털처럼 가볍고 투명하다가 카푸치노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때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설렘으로, 두려움으로, 때로는 위로로, 가끔은 슬픔으로 나는 구름과 함께 흘러간다. 구름이 빨라지는 아침나절과 한낮의 정체가 지나면 구름은 조금씩 붉게 물들고 그 따뜻한 슬픔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중년에 접어들자, 시간은 ‘빨리 감기(fast forward)’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신없이 스쳐 간다. 자고 일어나면 계절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었나 싶으면 한 해가 넘어간다. 일분일초가 아까워 발을 동동 구를 때도 있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 하지 못한 과제들, 익숙해질 틈도 없이 변해가는 얼굴과 몸매, 그리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죽음.


  세월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흘러 수각황망(手脚慌忙), 당혹스러운 감정이 조금 정리되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이해받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수 세기에 걸쳐 사랑받는 작가들은 자기 생각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걸까? 헤세조차도 어쩌면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만 위로받지 않았을까?


  이런 잡다한 생각조차 구름은 용납해 준다. 하루 종일 자기를 쳐다보아도 민망해하지 않고, 오랜 시간 그 존재를 잊어도 원망하지 않는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지루하지 않은 안식처가 되어준다.


  연포탕(軟泡湯), 연하고 부드러운, 두부를 넣어 끓인 탕국. 구름을 닮은 음식이다. 요즘은 낙지를 넣어 끓인 낙지 연포탕이 대표적이지만, 원래는 두부를 꼬치에 끼워 구운 후 닭고기를 넣어 끓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서늘함을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아직 선풍기가 필요하지만, 몸이 찬 나는 해가 지고 나면 뜨끈한 국물이 당기고…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속담 때문일까? 찬바람이 불고 낙지가 자주 보이면 연포탕 생각이 절로 난다.


  두부는 펩타이드와 리놀레산 성분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주어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소화흡수율이 높아 콩의 단백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가공품이라 한다. 가을이 제철인 낙지는 ‘개펄의 산삼’,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좋은 보양식으로 꼽힌다. 타우린과 단백질, 자율신경계의 가장 중요한 신경 전달 물질이라고 하는 아세틸콜린과 각종 무기질, 비타민까지 유용한 영양성분이 많은 식재료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낙지의 수명은 겨우 1년 정도라고 한다. 백년의 시간조차 짧게 느껴지는 인간의 수명에 비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삶. 그 짧은 생애 동안 낙지는 이른 봄에 산란하고 알을 돌보다 힘이 다해 죽는데, 부화에 성공한 새끼들은 죽은 부모의 몸을 먹고 자란다. 모성애에 대한 갑론을박을 떠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생긴다. 인간이 미물이라고 부르는 존재에게서조차 배울 것이 있다. 낙지가 갯벌 내에서 상위권의 포식자라고는 하나 인간은 대체 얼마나 많은 생물의 천적인지 모르겠다.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만두고 오늘만큼은 낙지를 뺀 구름 닮은 연포탕으로 추위를 달래봐야겠다.




* 헤르만 헤세, 「향수(Peter Camenzind)」, 성창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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