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네일 셀프 제거 망한 이야기

by 바다에 내리는 눈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아무래도 몸치장이나 꾸밈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물가도 비싸고 차려입고 나갈 데도 없고 남들 눈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다 보니 그렇다. 머리야 현지 미용실에서 어쩔 수 없이 만진다지만 매니큐어, 패디큐어 같은 것은 아예 안 하고 한국에 가면 1년에 한 번 기분 전환 겸 하는 편인데 최근에 동남아로 휴가를 간 김에 손톱에 젤네일 서비스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보다 손재주가 떨어지는지 보통은 3,4주는 가는 젤네일이 며칠만 지났을 뿐인데 벌써 벗겨지려고 밑부분이 덜렁거리는 거다. 오히려 머리 감고 설거지하고 집안일할 때마다 걸리적거리고 불편해서 “그래 무수리 팔자에 무슨 젤네일이냐” 하고 스위스로 돌아와서 젤네일 제거해 주는 네일숍을 검색하다가 문득 집에서 스스로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한국에서 전동 손톱 정리드릴을 사 온 게 기억이 나서 갑자기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40, 젤네일을 새로 바르는 것도 아니고 제거만 하는데 이런 비싼 값을 지불하기 싫다는 알뜰한 주부력 40, 동남아의 따뜻한 날씨와 맛있는 음식들이 그리운데 스위스는 아직도 춥고 감자랑 소시지만 먹어야 돼서 짜증 난 감정 20의 이유로 과감하게 작업에 착수했다.


분명히 어딘가 설명서가 있을 테지만 찾기는 귀찮으므로 일단 느낌대로 가장 작은 드릴로 손톱을 갈기 시작했다. 그런데 면이 평평하게 갈리지 않고 뚝뚝 끊기면서 울퉁불퉁하게 갈려 나가서 제일 큰 드릴로 갈아 끼웠는데 이제는 너무 큰 면적이 마구 갈려 나가서 무서웠다. 그래서 중간 정도의 드릴로 수시로 알코올과 아세톤으로 손을 닦아 주면서 딴에는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하듯이 어찌어찌 젤네일을 열 개의 손톱에서 제거하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하아… 이게 말이 되는 시간 낭비인가? 게다가 손톱은 완전 아작이 나서 울퉁불퉁하고 홈이 파인 곳도 있고 너무 알코올과 아세톤으로 닦아 내서 그런지 살갗도 아리고 아프다.


그냥 돈 주고 할 걸…


코로나 유행 초기 2020년의 어느 날 밖에도 잘 못 나가는데 갓난쟁이 애는 맡길 데도 없고 몸은 아프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충동적으로 새치 염색을 한다며 어디서 난지 모를 집에 굴러 다니는 시커먼 염색약을 거울도 안 보고 막 머리에 발라 댔는데 뒤에서 보면 얼룩덜룩하고 머릿결은 다 상해서 그

후로 아무리 트리트먼트를 해도 복구가 안 되는 바로 그날처럼… 망했다.


망했다고는 하지만 별 거 아닌 일이다. 어차피 중년 아줌마 손톱이 울퉁불퉁한지 싱크홀이 뚫려 있는지 남편도 모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모른다, 이 사건을 친지 며칠 지난 오늘까지도. 그리고 손톱에 색칠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이 읽으면 이해도 가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다. 마치 태닝을 한 번 해 본 적 없는 내가 남이 태닝기계를 사서 집에서 셀프 태닝을 하다 망한 이야기를 읽으면 잘 와닿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사소하고 구차한 일상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 웃으면서 여기에 적는 건 이런 일들이 이제 정말 나를 크게 흔들지 않는다는 발견에서 오는 안도감 때문이다. 새로 한 머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머리를 감아 버리던 아가씨가. 내일 졸업사진 찍는지 몰라서 친구들은 새 옷 사 입고 전문가에게 화장받는데 나만 헌 옷 입고 내가 한 어설픈 화장하고 졸업사진 찍는 게 억울해서 정말 울었던 그 철부지 아가씨가. 배낭여행 중에 기차에서 뛰어내렸던 사건으로 손에 큰 상처가 생겨 안 없어지는 게 10년 동안 속상했었는데 이제는 다 상관없어졌구나, 드디어 자유로워졌구나!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 에세이 모음집을 읽고 있는데 작가와 성별도 다르고 연배도 다르지만 상당 부분 동감하며 읽어 나가고 있다. 시간을 부러 잡아당겨 조로해 버릴 필요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겉치장 욕구의 얄팍함과 속물스러움을 자각하고, 최소한의 치장 시도마저 실패했을 때 껄껄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늙은 것 보면 지나 온 세월이 꼭 허송세월은 아닐 수도 있다.


망한 젤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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