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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14. 2019

건물주가 꿈인 세상

저 푸른 초원 위에 마당 있는 집을 짓고.

요즘 청소년들의 꿈이 공무원과 건물주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건물주가 돈도 잘 벌고 먹고살기도 편해서라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지 싶어 피식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어쩐지 씁쓸해지는 현실 같아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속으론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어느 날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슈퍼마리오의 모델이었던 실존 인물의 직업은 무엇일까요?라는 퀴즈문제의 정답이 공개되었는데 배관공일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건물주임이 밝혀졌다. 슈퍼마리오도 건물주였다니 알 수 없는 배신감.



어릴 적 수많았던 나의 꿈 중 한 가지 역시 건물주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건물주가 아닌 집주인이 꿈이었다. 누군가는 꿈이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다고 말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주인이 꿈이었던 것, 집에 대해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된 것 모두 자라면서 이어던 집에 얽힌 수많은 사건사고들 때문이다.


연이은 아빠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형편 탓에 우리 가족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이사라면 아주 이골이 날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옮겨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원치 않게 다양한 성격의 집주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래 전 .12세 인생 끓어오르는 분노로 가득했던 그날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5학년 1학기. 그 당시만 해도 각 학교마다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의무였던 시였다.


가정방문이라는 뜻 그대로 풀자면 교사가 학생의 가정과 환경을 이해하고 가정과 긴밀한 연락을 가지기 위해 방문한다는 뜻이었는데 그 시절 가정방문의 숨은 목적을 따지자면 가정과 긴밀한 협조를 하여 아이들의 고민과 문제의 원인 및 배경을 알기보다 집이 자가인지 월세인지 사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어렸을땐 집에 냉장고, 텔레비전, 피아노, 세탁기, 자가용 등의 유무를 조사하기도 했었으니까.


집이 자가라 해서 그 집에선 반듯한 아이가 나고 월세를 살며 형편이 어렵다해서 비뚤어지고 모난 성격의 아이가 나 것도 아닌데.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도 그렇다. 변변치 못한 환경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거지 꼭 그걸 어려운 형편에 빗대어 그렇게 말해야는지 그럼 용은 이과수 폭포나 나이아가라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에서만 나오는 게 맞는 건지 어린 나이에도 가정방문이라는 그 모순적인 조사가 참 싫던 나였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그때를 정리하자면 한마디로 말해 "느그 아지 뭐하시?"가 아무렇지 않게 활발히 성행했던 그런 시절. 12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주인 부부가 작은 백반집을 운영하던 가게 안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밝은 대낮에도 건물 어둠침침했었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들어설 때면 백반을 운영하던 주인이 마당에 널어놓은 생선에서 늘 꼬랑꼬랑한 냄새가 났었다.


화장실 역시 모두 함께 사용하던 공동 화장실로 집 밖을 돌아나가는 길에 따로 있어 새벽에 화장실이 급하게 가고 싶을 때면 주무시던 엄마를 깨워 함께 다니곤 했었다. 겨울철엔 살을 에는 추위로 엉덩이까지 꽁꽁 얼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 백반집엔 나보다 한 학년 위인 얼굴이 까맣고 주근깨 투성이었던 여자애가 있었다. 그 가 살던 방과 우리가 오고 다니던 좁은 마루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조였는데 같은 학교라 해도 학교에선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고 집에서 조차 어쩌다 한번 볼까 말까 같은 집에 산다고 해도 서로 얼굴 보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봄 내가 그렇게도 끔찍하게 싫어하던 가정방문의 날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시간이 되자 당시 남자 담임선생님께서 낡고 좁은 그 집 대문으로 들어오셨고 엄마는 주스와 다과 거리를 준비하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방에 들어가 있었던 터라 두 분 사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간 지는 아무것도 몰랐고 빨리 끝나 담임이 낡고 좁은 대문을 나서기만을 두 손 모아 바라고 있었다.


잠시 후 상담이 끝났는지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하는 담임 선생님 목소리에 방에서 나와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순간 얼굴 한 번 마주치기 힘든 집주인 딸이 자기 방 창문으로 놀러 와 있던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란히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누구니?"

누구냐는 담임의 말에 그 얘는 학년과 이름을 답했다. 그리고...


"그런데 여긴 왜? 같이 사니?"

"여기 우리 집인데요? 쟤가 우리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건데요?"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데요... 우리 집이에요...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와 함께 히죽히죽 거리며 웃고 있는 그 얘를 보며 원 펀치 쓰리 강냉이를 날려 누런 이를 후드득 모조리 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 얘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나였다.


어색해진 미소와 함께 "그렇구나..." 하시 담임이 떠난 후 난 끓어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해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엎드려 씩씩거리기만 했다.

어린 내 자존심에 깊은 스크래치가 새겨진 순간.


'얼굴도 까맣고 못 생긴게 꼴랑 콧구멍만한 집도 집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스스로에게 퍼붓던 그날. 그날의 기억은 꽤나 오래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후로 다른 집들을 여럿 거치면서도 내 기억 속에 집주인에 대한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 때 살았던 2층 양옥집, 꽃과 식물을 좋아하셨던 엄마께서 작은 화분에 방울토마토 모종을 딱 하나 심었던 날 "우리 집 무너지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당장 치워요!"를 외치던 주인 여자를 보며 꾹 입술을 깨물었고 고등학교 때 살았던 골프장 옆 위치한 집에선 가족들이 며칠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어 신고했었는데 오히려 동네 소문나면 집값 떨어진다며 "당신이 책임질 거야!" 귀가 찢어질 듯 아빠에게 소리를 내지르던 주인 남자를 보며 속이 뒤집히도록 화가 났었다.


집값 떨어질 건 걱정되면서 주인 인심 더럽게 나쁘다 소문은 신경도 안 쓰였던 건지.


분함에 손바닥이 찍힐 만큼 주먹을 세게 쥐고 억울함에 입술이 부풀어 오를만큼 이를 꽉 물었던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쓰리고 쓰렸던 날들.


내가 크면 엄마를 위해 꼭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을 지어주고 싶었던 어린 나의 꿈은 하루하루 그렇게 굳어져갔다.



이 넓은 땅에 우리 가족 살 작은 집 하나 없다는 게 화가 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즐거운 우리집이라는 건 노래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역시 집주인의 꿈은 아직 너무 멀리 있지만 난 오늘 밤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며 저 푸른 초원 위에 마당 있는 집을 짓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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