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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 서른

by 설애

여행


손광세


떠나면 만난다.
그것이 무엇이건
떠나면 만나게 된다.
잔뜩 찌푸린 날씨이거나
속잎을 열고 나오는 새벽 파도이거나
내가 있건 없건 스쳐갈
스카프 두른 바람이거나
모래톱에 떠밀려온 조개껍질이거나
조개껍질처럼 뽀얀 낱말이거나
아직은 만나지 못한 무언가를
떠나면 만난다.
섬 마을을 찾아가는 뱃고동 소리이거나
흘러간 유행가 가락이거나
여가수의 목에 달라붙은
애절한 슬픔이거나
사각봉투에 담아 보낸 연정이거나
소주 한 잔 건넬 줄 아는
텁텁한 인정이거나
머리카락 쓸어 넘기는 여인이야
못 만나더라도
떠나면 만난다.
방구석에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떠나면 만나게 된다.
산허리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은사시나무 잎새들
배를 뒤집는 여름날
혼자면 어떻고
여럿이면 또 어떤가?
배낭 메고 기차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이동하다, 옮기다, 여행하다, 벗어나다, 나서다"가 아니라, "떠나다"인 것은 왜일까요?


떠나는 것은

이동의 의미도 있지만 '관계 끊음'의 의미도 있습니다.

목적지보다는 행동에 의미가 있습니다.

수동이 아니라 능동입니다.


예문입니다.


니가 떠나면 남겨진 내가
눈물로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샐거라
너는 믿고 있겠지만
내게 미안하겠지만
난 괜찮아


떠나는 것은 누군가든, 어떤 장소이든,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자 가던, 같이 가던 시인의 말처럼 떠나면

"방구석에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나겠죠.

적어도 방구석은 능동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일단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시죠.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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