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일흔넷
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반만 접었다가
또 반에 반을 접는 마음은,
세탁기에 동반입수하는 거랑 같은 마음일까요?
부부로 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설마,
아내를 접는 것은 아니겠죠?
혹시 이렇게, 빨래처럼 접어버리는 것은...
아내가 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려 한다
아내의 완력에 빨래처럼 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소불위한 잔소리의 권능에 못 이겨
끝내 구겨져 세탁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인이 둥지에 드는 새처럼 본인의 섭섭하고 괘씸한 마음을 접는 것이겠죠.
저는 접지 말고 풀었으면 합니다.
구겨지지 말고 펴졌으면 합니다.
결국 한 사람만 조용히 접다보면 모르고 넘어가게 되니까요.
정답은 없지만, 여러모로 생각하게 됩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