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몽 Oct 14. 2021

Autumn latte

캘리그래피 일기 023h Day.

내 핸드폰은 빨간 숫자들이 그득하다. 새 메시지 알림이 기본 백 개다. 열지 않은 이메일의 숫자는 이미 만 단위를 넘은 지 오래다.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지도 않는다. 종종 주니가 내 핸드폰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엄마는 이걸 보고 견딜 수 있냐며. 그렇다. 난 잘 견딘다. 이를 뒤집어 보면 참 무디다. 게으르기도 하고 신경을 안 써도 너무 안 쓰는 편이다. 거기에 결정 장애까지 가지고 있어 각종 인터넷 쇼핑몰의 장바구니는 항상 더 이상 담을 수 없다며 아우성이다. 뭔가 굉장히 굼뜬 편인데 가끔 상상을 초월하게 재빠르게 행동할 때가 있다. 바로 필 받았을 때!

오늘이 그런 날이다. 웬걸 날씨까지 도와준다. 더 추워지기 전에. 북경의 여기저기를 다녀봐야겠다는 의지로 집을 정리하고 나섰다. 일차 목적지만 정하고 출발. 오늘의 빵집은 자전거로 40분 정도면 도착한다. 처음 가는 길이라 플러스알파가 한참 되리라 예상하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지난번 후통 가는 자전거길보다 깔끔하다. 바람도 시원하고 햇살도 따뜻하다. 이런 것을 하늘이 도왔다고 하던가? 콧노래를 부르며 룰루랄라 빵집으로 가는 길. 즐겁다 즐거워. 북경에 찜해놓은 핫플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한 곳.

간판부터 너무 앙증맞다. 진열장 안에 누워있는 빵들이 나를 보고 방긋 웃는듯하다. 냄새는 또 어떠한가! 향긋하고 고소하고~ 결정 장애로 손만 바쁘다. 뭘 골라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배부르면 조금 남기지 하며 이것저것 쟁반 위로 슬라이딩.

밤 케이크도 맛있고, 녹차 크림빵도.... 검은깨 빵도... 스콘은 말해 뭐해. 달콤한 바나나빵까지... 어라. 다 먹었다. 감사하게 맛있게!

이차 장소와 삼차 장소로 물망에 오르던 곳들을 열어보고 동선을 짠 후 다시 출발. 비슷한 빵집으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실망. 그러나 딸기 크림이 가득한 초코가 묻어있는 도넛이 맛없을 리가... 빵의 종류가 좀 적어서. 어렵게 찾았는데. 이어 바로 삼차 장소 커피집으로.

싼리툰 뒷골목이라 여기도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찾았다. 인생 커피집. 붉은색   아파트 한가운데 하얀 상자 모양. 파란 하늘과 조화가 끝내준다. . 너무 좋다. 진짜 좋다. 커피집 한가운데 천정으로 하늘이 보인다.  아래서 바로 갈아서 내려지는  또한 손에 발까지 더해 엄지 . 귀에 감기는 음악까지 완벽한 취향 저격. 커피가 궁금하다. 서둘로 메뉴판을 살핀다. 그래. 가을 라테, 너를 마실래.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내게 국화향이 살포시 다가온다. ... 국화향과 달큰한 모과가 묘하게 엉겨 이날의 가을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면을 지닌 칼날,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