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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구례에서의 첫여름,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보기

자연과 가까이 산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구례에 내려와 살집을 계약한 건 봄이 거의 지나갈 무렵이었다. 화엄사 아래 오래된 시골집을 구해 이사를 하면서, 도시의 고층 아파트를 벗어나 늘 원했던 시골 생활의 낭만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앞섰다. 단아한 기와집에 돌담이 있고 방이 여러 개 있는 아기자기한 집을 보며, 조금만 손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이삿짐을 내리는 순간 현실의 문제와 직면했다. 시골집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천장이 낮아 도시에서 쓰던 옷장을 세울 수도 없었고, 냉장고 하나가 부엌 공간을 전부 차지해 다른 가구는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다. 대대적인 공사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우리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본채에 이삿짐을 쌓아두고, 별채 한 칸은 침실로, 다른 한 칸은 부엌으로 사용하며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첫해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그저 살아보며 고치기로 결정했다. 상상 속으로 집을 고치고,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도저히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면 '다시 팔까?'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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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의 첫여름, 습기와 벌레와의 전쟁


그렇게 불완전한 집에서 맞이하게 된 첫여름. 정태춘의 노래 가사처럼 뜨거운 남도의 태양이 작열했다. 집을 고치지 못했으니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다. 시골집에서의 첫여름은 습기와 벌레,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철물점에서 방충망을 사다 출입문 입구에 달고, 모든 창문을 열어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달래야 했다.


산 아래라 삼선모기는 기본이고, 하루는 지붕에서 지네가 등으로 떨어져 물리기까지 했다. 나는 놀라 소리를 지르고, 남편은 지네를 잡느라, 놀라 정신없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혼쭐이 났다. 그러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아이들처럼 낄낄거렸다. 도시에서는 겪을 수 없는 소동이었지만, 이 황당함이 첫여름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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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다른 여름 나기: 자연의 리듬을 배우다


도시에서 여름은 에어컨이 필수였다. 푹푹 찌는 더위와 습기 때문에 종일 냉방 공간에서 생활했고, 실내외 온도 차 때문에 늘 긴팔 옷을 챙겨 다녔다. 특히 장마철에는 제습기가 필수였다.


그러나 구례에서의 첫여름은 달랐다. 낮은 뜨거운 남도의 열기로 집안이 더웠지만, 해가 진 이후에는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실내 온도를 자연스럽게 낮춰주었다. 터가 좋아서인지 제습기 없이도 실내 환경은 끈적임 없이 쾌적했다. 선풍기 한 대만으로도 밤을 보내는 데 무리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에어컨 없이도 여름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시에서 습관처럼 켰던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 대신, 밤공기의 시원함과 산바람의 청량함을 온전히 느끼는 법을 배웠다. 밤이 되면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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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비상 탈출구, 성삼재 주차장


하지만 매일 밤이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도시보다 짧기는 하지만 구례에도 열대야가 있었고, 선풍기만으로는 잠을 이루기 힘든 날도 있었다.


잠을 이루기 어려운 밤이면, 남편과 나는 비상 탈출구처럼 성삼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해발 1,102m에 위치한 성삼재는 한낮의 열기가 밤의 서늘한 기온과 균형을 이루어 비교적 쾌적했다.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우고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아스팔트의 온기가 등을 통해 올라오고 머리 위로는 칠흑 같은 밤하늘과 수많은 별이 펼쳐졌다. 운이 좋은 날에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볼 수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을 이야기하며 잠시 소원을 빌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기를... 무사히 시골 생활에 정착할 수 있기를…'이 시간은 단순히 더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그 불편함이 주는 새로운 보상을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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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방식의 변화와 소박한 기쁨


낮의 구례는 생명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공간이었다. 뜨거운 태양빛에 정신이 없다가도 그늘로 들어서면 금세 더위가 가라앉았다. 햇빛을 피해 화엄사 계곡을 따라 걸으면 강렬한 태양을 받아 나무들은 더욱 짙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해 질 녘의 서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리듬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농부의 아들인 남편은 집 앞 개울가에 피라미 통발을 놓아 민물고기를 잡았다. 직접 잡은 피라미를 모아 어죽을 끓여 먹는 일은 번거롭기는 하지만 즐거운 연중행사였다. 직접 잡은 재료와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소박한 즐거움과 뿌듯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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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에는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가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거나, 가끔은 몸 전체를 담가 더위를 식혔다. 뜨거워진 몸이 계곡물에 닿는 순간 열기가 식으며 더위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멀리 피아골 직전 마을에서 물놀이를 즐기거나 현지 식당에서 남도의 음식을 맛보았다. 우리는 동네 주민도, 완전한 외부인도 아닌 그 경계에서 구례의 생활방식을 점진적으로 익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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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의 실질적 의미: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하는 이정표


귀촌 첫여름은 예상치 못한 불편함과 문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시와 다른 방식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보내고, 열대야를 피해 성삼재로 이동하며, 직접 채취한 재료로 식사를 해결하는 경험은 귀촌의 실질적인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끊임없이 소비하고 채우는 도시의 생활과 달랐다. 자연의 주기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작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여름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불완전함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해 나갔다는 일종의 튼튼한 이정표로 남았다.


Tip:


지금은 구례도 열대야가 길고, 한여름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어르신이 계실 만큼 뜨거운 남도다. 첫여름과 그 이후 몇 년 동안은 마당에서 은하수를 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시골 마을들도 밝아져 은하수를 만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지리산의 바람과 풀벌레, 새소리에 아침이 시작되는 자연과 가까운 곳이다. 낭만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이 그 너머의 소박한 행복을 발견하는 첫걸음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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