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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Sep 20. 2021

미래의 학교체육 #3 - 스포츠와 기록, 그리고 데이터

스포츠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열쇠, 기록과 데이터.

'악마의 게임', '이혼제조기', '3대 막장제조 게임'...이 정도 되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면 무법천지의 가상세계나 선정적이고 잔혹한 폭력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게임은 바로 숫자와 문자로만 가득한 이상한 스포츠 게임인 '풋볼 매니져(Football Manager: 이하 FM)'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숫자와 문자로만 가득한 이 게임은 엄청난 몰입성을 가지고 있는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또 다른 수식어가 바로 '미래로만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에 빠져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데이터 기반 시뮬레이션 축구 게임 '풋볼 매니저(Football Manager)' (*출처 - http://www.gameinsight.co.kr )


FM 이라는 게임의 구조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한 축구팀의 감독(Football Manager)이 되어 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게임 속에서 팀을 운영하는 방법이 아주 간단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화면에 제공되는 수 많은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요즘 이야기로 풀어서 말하면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의미있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축구팀을 운영하는 것이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다. 우리 팀에 어떤 선수가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축구 경기를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함은 물론이요, 어떤 선수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 수많은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연구하여 내린 판단을 바탕으로 경기가 진행되는데, 텍스트와 작전판 위의 아이콘 만으로 표현되는 경기 중계 화면을 보며 성취감과 후회를 반복하게 된다. 이런 방식의 게임이 정말 재미있을까?




스포츠 경기의 '기록(Record)'


'스포츠(Sports)'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규칙(規則: Rule)'과 '경쟁(競爭: competition)'이다. 스포츠란 규칙 안에서 경쟁을 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의미인데, 이 본질적 행위들은 경기의 결과로 귀결되며 경기의 결과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숫자 또는 단어 등의 기록으로 표현된다. 스포츠 경기의 결과로 생산되는 기록들은 경기 결과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데, 바로 이 가치판단에 의하여 스포츠는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


예를 들면, 기록을 근거로 경쟁하는 달리기와 같은 스포츠에서 선수는 보다 빠른 시간 안에 정해진 거리를 달리기 위해 노력하며 그 결과는 시간이라는 숫자로 표현된다. 이 때, 숫자로 기록되는 경기 결과는 여러가지 상징성을 가지게 된다. 달리기 경기에서 '시간'이라는 기록으로 인하여 선수들이 다양한 방식의 도전과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상대 선수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목표라면 모든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 경기의 우승자는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달리기 경기의 결과는 상대적 순위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얼마전 도쿄 올림픽에서 100미터 달리기 1위를 기록한 선수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미터 결승전의 우사인 볼트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질주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사인 볼트의 역사적인 기록 9초58 (*출처-https://www.sportingnews.com)


스포츠 경기에서의 기록은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에게 목표를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달리기 경기에서 시간이라는 명확한 기록이 경기의 결과로 나타나는 순간, 단순한 순위 경쟁을 넘어 과거 자신의 경기 기록 또는 위대한 선수의 전설적인 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습을 할 때도 여러가지 형태의 기록이 중요하게 활용된다. 막연하게 '오늘은 감이 좋은데?'라고 느끼면서 하는 주먹구구식의 훈련이 아닌, 자신의 컨디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훈련방법을 찾아 명확한 훈련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적인 의미에서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높이뛰기 경기에 참가한 우상혁 선수는 스포츠 경기에 참가한 선수가 기록과 데이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높이뛰기 경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까지도 빠져들게 만드는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경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경기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상혁 선수를 보고 가장 놀랐던 부분은 인터뷰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믿고 쓸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는 부분이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자신이 어떤 경기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기를 해냈다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만의 신뢰할 수 있는 계획을 데이터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일종의 공식과 매뉴얼을 만들어 냈다는 의미인데, 지도자와 함께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미 선수로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지금보다 더 잘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우상혁 선수의 인터뷰를 접하고 난 이후에 이 선수와 지도자가 앞으로 만들어 낼 도전의 과정에 더욱 큰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 우상혁 선수는 계획이 다 있었다. '데이터'에 근거한 계획이. (*출처-KBS Sports 유튜브 채널 캡쳐)


우상혁 선수만큼이나 인상 깊은 선수가 2020 도쿄 올림픽 높이뛰기 경기에 또 있었다. 바로 여자 높이뛰기 은메달을 획득한 호주의 맥더모트 선수다. 이 선수는 경기 중 끊임없이 노트에 기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선수가 단순히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일기를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이후에 공개한 노트에는 자신이 느낀 점을 기록한 문장 외에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경기 내용을 데이터화 해 둔 기록이 있었다. 자신의 퍼포먼스를 기록하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음 기회에 개선할 점을 명확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선수에게는 노트에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만의 '루틴(Routine)'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맥더모트 선수가 경기 중 기록했다는 자기 평가 데이터. 자신의 모든 점프를 각 요소별로 10점 만점으로 정리하였다. (*출처-맥더모트 SNS)


https://www.youtube.com/watch?v=gkJ0bgFUT10

호주의 맥더모트 선수, 기록하는 행동도 인상적이었지만, 경기력 그 자체로서 충분히 훌륭했다. (*출처-스포츠머그 유튜브 채널)


우리나라 체육 교과 교육과정에서는 이렇게 기록에 도전하는 스포츠를 묶어서 '기록 도전'이라는 영역(단원)으로 체계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기의 결과가 명확한 형태의 '기록'으로 표현됨과 동시에 상대 선수와의 상대적 순위 경쟁도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이 영역에서 다루어진다. 바로, 육상, 체조, 수영, 양궁, 사격, 골프 등의 스포츠 종목이다. 스포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3대 기초 종목, 즉 다른 스포츠 종목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육상, 체조, 수영이 모두 이 영역에 포함된다. 스포츠 문화가 발전하면서 보는 스포츠보다 하는 스포츠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록을 바탕으로 도전하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골프나 양궁을 특히나 더 사랑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코로나 상황으로 개인화된 스포츠를 중심으로 체육 수업이 재편되면서 더욱 많은 체육 교사들의 기록 도전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열쇠, 데이터(Data)


스포츠 경기의 기록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몸짓'에 가치를 부여하고, 아무것도 아닌 숫자와 문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아주 신기하고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이 모여서 가치를 지닌 집합체, 즉 '데이터(Data)'가 되면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야구는 자본주의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프로화에 성공한 스포츠 종목이기도 하며, 통계적인 숫자로 선수들의 가치를 판단하여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종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A라는 선수가 정말 잘 한다.'라는 설명보다는 '대부분의 선수가 0.300만큼 하는데, A라는 선수는 0.500만큼 하기 때문에 정말 잘 하는 선수다.'라는 설명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다양한 부분에 적용한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기록성 덕분에, 우리는 2021년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오타니 선수의 경기를 100년전의 전설적인 선수 베이브 루스의 기록과 비교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는 단순히 일차원적인 수준에서의 가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데이터는 또 다른 데이터와 융합되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대중화된 이후 백여년의 시간 동안, 좋은 타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타율이었고 좋은 투수를 판단하는 기준은 평균자책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타율만으로 좋은 타자를 판단하지 않는다. 타율이 높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아웃되지 않고 1루로 진출할 수 있는 '출루율'과 득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2루타 이상의 안타를 기록할 확룔인 '장타율'이 높은 선수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개념인 OPS가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WAR(승리기여도), WHIP(이닝당안타볼넷허용율), ERA+(조정자책점) 등의 데이터 역시 선수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이 발전하고 대중화되면서 과거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기술적 도움이 스포츠 현장에도 적용되고 있다. 군사용 레이더 기술을 응용한 '스탯캐스트(Statcast)'시스템이 메이저리그 야구에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탯캐스트는 필드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자동적으로 수집하여 경기의 모든 요소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과거에는 감히 측정하려고 시도할 수도 없었던 공의 회전수,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쳤을 때 공이 날아가는 각도, 외야수가 홈베이스를 향해 던진 공의 거리와 속도 등 야구 경기의 모든 행동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기록하여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야구의 패러다임도 완전히 바뀌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타자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공을 배트에 정확하게 맞추어 낮고 빠르게 공을 날려보내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지만. 이제는 공을 강하고 치기 위한 스윙속도를 빠르게 하고 보다 높게 공을 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변화하였다.


야구의 모든 것을 센서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기록하는 시대. 메이저리그 야구의 '스탯캐스트(Statcast)' 시스템 (*출처-MLB.com)


다른 종목도 사정은 비슷하다. 야구 못지않게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왔던 미식축구(NFL)에서는 선수들을 선발하는 단계부터 '컴바인(Combine)'이라고 불리는 공개 체력테스트를 통하여 선수별 데이터를 기준으로 가치를 확인하고 있으며, 단순히 개인별 기록(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만 측정하던 농구에서도 슈팅 구역별 득점 성공률 등의 보다 세부적인 기록이 경기와 선수를 이해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지구촌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축구 경기 중계방송에서 전반전이 끝나면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며 해설가가 말로 경기내용을 설명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기 관련 통계 역시 다양하지도 않고 신뢰하기도 어려웠다. 경기의 점유율을 보여준다고 해도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정확한 수치는 아니었으며,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수치라고는 슈팅 시도 횟수, 파울 수, 경고나 퇴장 수 등의 간단한 카운팅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경기 영상을 분석하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하여 선수의 경기력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센서를 직접 활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축구 경기를 이해할 수 있는 더욱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축구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8/2019030800265.html


축구 경기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Match Statistics' (*출처-UEFA 트위터)


축구 데이터 회사 Opta 社, WhoScored 社의 데이터를 활용한 두 선수의 비교 자료 (*출처-WhoScored 트위터)


스포츠 현장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데이터가 생산되고 있지만, 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는 기호에 불과하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의미없는 숫자가 될 수 도 있고, 아주 가치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야구 경기에서 타자의 타율은 높을수록 좋은 수치지만, 투수의 평균자책점은 낮을수록 좋은 수치다. 축구 경기에서 한 팀의 슈팅 시도 횟수가 30회라고 하더라도 그 중 골문을 향한 유효 슈팅이 한 번도 없었다면 그 팀이 득점할 확률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리는 스포츠 문화의 폭과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데이터,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스포츠에서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가치를 이해하고 찾아낼 수 있는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수 많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융합하여 의미있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스포츠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에 과거에 정설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접근 방법은 없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야구 경기에서 역량있는 투수가 가능한 많은 공을 던지는 것이 팀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투수의 어깨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경기당 투구수를 관리하는 것이 팀의 승리에 더 도움이 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강호 리버풀은 2018-2019 시즌에 승점 97점을 기록하며 최종 순위 2위를 기록했다. 리버풀이 2위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 시즌의 리버풀이 2015-2016 시즌에 승점 81점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 시티보다 경기력이 떨어지는 팀이었다고 생각하는 축구팬은 없을 것이다. 직전 10여년 동안 80점대 후반의 승점을 기록하면 리그 우승이 가능했지만, 유독 이 시즌은 승점 98점의 맨체스터 시티가 있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세부적으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가 4패를 기록한 반면에 리버풀은 1패밖에 기록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시즌의 리버풀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2019-2020 시즌에 승점 99점을 기록하며 우승한 리버풀보다 2018-2019 시즌의 리버풀이 위대한 팀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8-2019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종 순위. 승점 97점의 리버풀이 2위를 기록했다. (*출처-네이버)


과학적인 연구방법론에서 연구결과의 신뢰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수집된 데이터의 수가 얼마나 많은가의 문제이다. 1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100,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신뢰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보다 타당한 경쟁을 위하여 가능한 많은 경기를 하여 더 믿을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상대적인 비교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3번의 타석에서 1번의 안타를 기록한 A선수의 타율과 300번의 타석에서 100번의 안타를 기록한 B선수의 타율은 삼할삼푼삼리(.333)로 동일하지만, 두 선수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판단하기에는 A선수의 실력을 평가할만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타당성이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야구 경기에서는 타자들의 규정 타석 수와 투수의 규정 이닝 등을 경기 규칙에 명확하게 설정해 놓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도 스포츠 종목마다 다를 수 있다. 야구 경기에서 순위를 산정하는 기준은 팀의 승률이다. KBO 리그의 경우 승률이 7할에 가까운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3할대의 승률을 기록하는 팀은 꼴지를 할 확률이 높다. 축구 경기에서는 경기결과에 따라 부여되는 승점을 누적하여 순위를 산정한다. 배구 경기 역시 승점으로 순위를 산정하지만, 축구와는 다르게 세트스코어 3-2로 패배하는 경우에도 1점의 승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축구의 경우 리그 순위에 따라 최종적인 시즌 우승팀을 결정하지만, 야구·농구·축구 등의 종목은 리그가 끝나면 상위팀들의 플레이오프 토너먼트를 실시하여 최종 우승팀을 결정한다. 똑같은 승리라고 하더라도 종목에 따라 가치를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스포츠 데이터 해석의 경향이 변하는 과정 역시 재미있는 측면이 많다. 90년대 농구의 불문율은 '공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의 소유권이 있을 때 무리한 공격을 시도하여 상대에게 득점 기회를 넘겨주는 것보다는, 경기의 템포를 죽여서라도 더욱 확실한 방법을 찾는 것이 승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농구 경기를 하다가 보면 가장 많이 하던 말이 '볼 아껴!!', '천천히!!' 등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0년 중반들어 스테판 커리로 대표되는 골든스테이트의 빠른 템포의 가능한 많은 슛을 시도하는 농구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면서, 다소 무리해 보이기까지 하는 장거리 3점슛을 빠른 템포로 시도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더 많은 득점을 기록하기 위해 더 많은 슈팅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데, 수학적으로 참이 분명한 이 명제를 증명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스포츠는 우리 사회 그 어떤 분야보다 변화가 빠르고 과감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무대다. 똑같은 데이터라 하더라도 어떻게 해석하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방식의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단순한 경험적 지식에 근거하여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더욱 과학적인 방법으로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체육 교육에서 의미있는 데이터는 무엇일까?


체육, 음악, 미술 등의 수행 중심 교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어떻게 평가를 할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지식을 평가하는데 최적화된 평가체제인 중간고사·기말고사 등의 정기고사보다 수업 중 학생의 수행을 관찰하여 평가하는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이다. 체육 교과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계획하는 것이 곧 체육 교과 교육과정을 계획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학교의 체육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들여다 보는 것이 평가계획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인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백워드 교육과정 설계(Backward Design)'을 수십 년 전부터 체육 교사들은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문으로 안내되는 '학생평가 내실화 계획'에서도 백워드 디자인이 표준이 되었다. (출처: '2021 학생평가 내실화 지원계획' 4쪽, 2021.2.2. 서울시교육청)


학생의 수행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측정된 기록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스포츠 현장의 관심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따라서, 체육 교육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이 바로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포츠 현장에서 경기력을 평가하는 방식을 체육 교과 수업의 맥락에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완전학습을 위한 성취기준 달성에 학교교육의 방향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순위에 따른 평가점수 부여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탁구 수업 초창기 단식 리그 순위로 평가기준을 설정하고 운영했을 때, 순위의 고착화로 인하여 수업의 후반부에 학생들의 동기부여가 부족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경기력 평가를 위한 판단기준을 순위가 아닌 승률로 변화시키자 끝까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계속되는 것을 경험했었다. 이제 다시는 탁구 단식리그 수업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하나 있는데, 세트 득실을 평가기준에 반영하지 못했던 점이다. 학생들의 경기력 피드백을 위하여 세트득실 등의 데이터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추가적인 점수 부여 등으로 동기부여에는 활용하지 못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활용했던 단식 리그 경기 운영용 엑셀 파일은 다음과 같다. (*부끄럽지만, 과거부터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유는 더 좋은 방식으로 개선되어 공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pestudy/220955994943


과거의 체육 수업에서 학생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은 교사의 관찰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성적이라는 중요한 결정의 근거를 전문성이 있는 교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수집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교사의 일회성 관찰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신뢰성이 높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원격수업 국면에서 많은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학생들의 과제수행 영상과 움직임 추적 센서를 활용한 데이터 수집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확한 데이터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하여 수집할 수 있다면, 교사는 데이터의 해석과 적절한 순간의 피드백 제공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의 질 향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체육 수업에서 테크놀로지의 적용은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축구 경기에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출처-조선일보)




우연히 '삼국지' 게임 광고를 보면서 삼십여년 전에 즐겼던 삼국지 게임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치력·매력·전투력·충성도 등의 숫자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이터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많은 친구들과 함께 그 게임의 재미를 느끼며 즐겼었다. 성인이 된 이후 알게 된 'FM'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데이터는 스포츠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도구다. 체육 교육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수행을 데이터로 만들어 수집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들이 더 많이 개발되고 확산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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