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에 대해서......
흔히 저 집 '잘 산다'라고 하면 돈이 많아서 풍요롭게 사는 사람을 떠올린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모진 시절을 보낸 한국사람들의 DNA에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는 기준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질문을 잘한다고 한다. 질문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질문의 빈도 frequency 보다 질문의 질 quality를 말한다.
성인이 되어 타인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도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질문은 일절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말할 때 쾌감 중추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나도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발화량이 많아짐을 느낀다. 스스로 듣고 있을 때 보다 더 신나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이럴 때 꼭 실수해서 안 해도 될 과도한 정보 즉, TMI를 발설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에 한 커뮤니티에 [읽기만 해도 숨 막히는 질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시험이 끝난 자녀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시험 잘 봤니?”부터 시작해서 과학은 몇 점 받았는지 다른 애들은 몇 점 받았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이런 질문을 읽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는 댓글이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엄마가 애한테 이 정도도 못 물어보냐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댓글도 꽤 보였다.
가정에서, 특히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질문은 ‘확인용’의 닫힌 질문이 압도적이다. 이는 닦았는지, 숙제는 했는지, 엄마의 요구 사항을 완수했는지 등등 엄마는 확인할 것이 많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사람은 답변이 아닌 질문으로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질문에도 ‘끕’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살면서 정말 다양한 질문을 들어보았다. 차마 이 브런치에 올리기 힘든 저질스러운 질문도 있었고,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질문도 있었다.
나 역시 일명 ‘했니/안 했니’의 일차원적인 폐쇄형 질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지만 참 쉽지는 않다.
“학원 숙제 다 했니?” 대신에 “학원 숙제는 몇 퍼센트 남았어?”라고 물어보거나, “빨래 다 개켰니?” 대신에 “빨래는 언제 개킬 거야?” 하는 식으로 살짝 느낌을 바꾸는 정도이다.
정답이 아닌, 듣고자 하는 대답을 들으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는 것은 기본이다. (관심이 없으면 호기심도 없게 마련이다.)
이런 분야의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표현이 들어간 질문보다는 긍정적 표현을 사용하라고 한다. “너 왜 이거 안 했어?” 보다는 “이거 언제까지 다 할 수 있겠어?”와 같은 식이다.
질문 잘하는 또 하나의 스킬은 ‘중립 질문’이다. 나의 개인적 의견이 질문에 녹아있지 않도록 질문한다.
“그렇게 말하면 애들이 기분 나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는 ‘나는 그 말이 기분 나쁘다.’는 나의 의견이 포함된다.
반면에 “그런 말을 들으면 너는 어떤 기분이 들 거 같아?”라고 질문한다면 상대방은 ‘기분’을 탐색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열린 질문이다.
잘 만들어진 질문을 받으면 사람의 의식은 내면을 향하게 된다. 이런 질문을 누군가가 해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전문가를 만나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스스로 나의 잠재의식을 깨우고 잠재 능력을 깨울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잘사는 사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일을 할 때 어떤 느낌을 갖는지, 그 일을 했을 때 어떤 성장이 이루어질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적절한 상황에 '질문을 잘하는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ㅍㅈㄱㄹ : Erik Johansson, <Leap of Fa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