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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2.절망

브런치북_다시, 제주

필리핀 사업을 하고자 마음 먹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당시 저희는 그동안 했던 백화점 입점 매장을 정리하고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의 지인은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입점 제의를 받았다며 남편에게 골프여행겸 함께 필리핀에 가보지 않겠느냐 얘기했습니다. 골프를 좋아했던 남편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삼아 그렇게 필리핀행에 올랐습니다. 이후 정작 사업을 하기로 했던 남편의 지인은 정리하려던 국내 사업이 꼬이면서 필리핀 사업을 할수 없게 되었고, 결국 남편과 지인의 후배라는 사람이 그 사업을 함께 하기로 되었습니다. 


앙헬레스 클락내 필리핀에서 가장 큰 몰에 입점하는 거였고 국내 백화점 입점비용의 삼분의 일로 오픈이 가능하며 현지에서 직접 일을 처리해줄 믿을만한 현지인 매니저가 있다는 얘기에 저희는 자본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빠르면 보름 안에도 입점이 가능한 국내 백화점과는 달리, 입점하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한지 몇달이 지나도록 일은 더디게만 진행되었습니다. 초기 필요하단 금액은 자꾸만 늘어갔고 보다 못한 남편은 한국이 아닌 현지에 머물며 매장이 오픈될 때까지 직접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달이면, 또 그 다음 달이면' 오픈한다는 매장은 한없이 지연되기만 했고, 현지에 있던 남편은 자꾸만 자금이 부족하다며 한국에 있는 제게 더 이체해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애초에 세웠던 계획보다 몇배의 금액이 들어가고도 마지막 얼마면 된다는 소리에 결국 저희 부부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남편의 새차를 잡혔으며 신용카드로 론을 받고도 모자라 현금 서비스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하고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매장 오픈만 하면 바로 현금이 돌고 안정이 될꺼란 얘기에 희망을 걸고 이참에 작은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현지에서 매장을 관리하며 몇년간 좀 여유롭게 지내다 올 계획이었습니다. 

필리핀으로 이삿짐을 모두 실어보낸 날, 텅빈 집 가스도 끊긴 방에 전기장판을 깔고 두 딸아이와 누워 잠을 청하던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남겨질 큰아이에 대한 애잔함으로 저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제가 작은아이와 함께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동업자는 더이상의 투자금을 구할수 없어 손을 떼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였습니다. 매장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남편에게 넘긴다며 사라진 그를 대신해 어떻게든 매장을 오픈하려 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결말이 어찌됐든 저는 이곳에서 끝을 보겠다 결심했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하지 않아 냉장고도 없는 휑한 집에서 병자와 다름없는 남편과 작은 아이의 밥을 해 먹이며 수습을 시작했습니다. 현지 매니저와 미팅을 앞두고 남편에게 모든 서류를 넘겨받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던 저는 서류뭉치를 내려놓은 채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서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뭐라도 갖추었을 줄 알았던 그 모든 서류들은 누구나 인터넷에서 손쉽게 출력할 수 있는 오픈된 정보들의 프린트 더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서류에도 회사의 직인이나 대표자의 사인, 문서를 입증할 공신력 있는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고 서류들에서 투자자이자 실질적인 경영주인 우리의 존재 또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현지인 매니저와 미리 셋팅해 두었다는 현지 직원들의 권리에 대한 내용들뿐이었습니다.

여차하면 법에 도움이라도 받으리라 생각했던 제 기대와는 달리 그 서류들은 아무런 증빙이 되어줄수 없음을 도착한 다음날 아침 깨닫고 가장 먼저 화가 난 건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필요한 서류들인데 외국은 오히려 더 꼼꼼히 살펴봤어야 하지 않았나, 그동안 남편을 믿고 당연한 이런 절차들은 알아서 확인했으리라 믿었기에 실망과 배신감이 더 크게 엄습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매장을 오픈해보지 않은 사람도 아니고 한꺼번에 세네개의 매장도 오픈해 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일처리를 할 수 있는지 정말 한없이 야윈 모습만 아니었다면 남편 먼저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믿을만하다던 현지인 매니저는 제 의심을 뒷받침하듯, 저와 딸아이가 필리핀으로 들어간 다음날 웃으며 집으로 한번 찾아온 이후로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처음에는 10분 늦더니 그 다음에는 30분, 또 그 다음엔 1시간, 1시간 반, 2시간까지도 작정하고 늦게 나타났습니다. 전화를 안 받거나 문자에도 답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갔으며 그동안 진행된 공사에 대한 증빙 영수증도 묵살했습니다. 입점하기로 한 몰의 담당자와 미팅을 주선해달란 요청에도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빠져나갔고 제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까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 놓았습니다. 

도저히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더 투자할 돈도 없었고 직접 가서 본 매장의 완성도가 매니저가 얘기하는 액수로는 턱없이 모자랄 거라 판단을 내린 저희는 매장을 팔기로 했습니다. 몇몇 한국인이 관심을 보이고 보러 왔지만 매장 열쇠까지 가지고 있던 현지인 매니저의 비협조로 그조차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 매장은 더 진전되지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오픈을 못해도 매달 임대료가 나가고 있었고 그 임대료는 한국 못지 않을 만큼의 금액으로 모든걸 쏟아넣은 저희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습니다. 현지인 매니저는 우리에게 더이상 투자할 여력이 안 되면 매장을 포기하고 매니저인 자신에게 그 권한을 줄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제 앞에 놓여진 서류를 본 순간, 결국은 이거였나 싶어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결국은 네가 이런 식으로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처음부터 작정하고 우리에게 달려들었구나.'

죽어도 사인 못해주겠다 했습니다. 이건 엄연히 네꺼가 아닌 우리꺼라 하면서요.

그녀는 며칠 후 평소 보디가드처럼 데리고 다니는 한량 남편을 끌고 우리가 살고 있던 타운에 나타났습니다. 입구에는 총을 둘러맨 가드가 있었지만 현지인들끼리 하는 친밀한 소통 앞에선 총은 한낮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고 그들은 저희집 앞에 차를 대고 서약서를 흔들며 사인을 하라 강요했습니다. 

조용한 타운이 그들과 우리의 언성으로 시끄러워졌습니다. 마침 휴가를 받아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러 온 옆집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분위기는 몹시 험악해졌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현지에 오래 계셨던 분을 통해 전해들은 얘기로 그 매니저는 이미 클락 한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식으로 사업을 빌미로 돈을 가로챈 적이 여러번임에도 한인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그 뒷배경을 믿고 더욱 기고만장하게 군다는 얘기였습니다. 도움을 받으려 현지 한인회를 찾았을 때의 그들의 심드렁한 반응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업초기 믿었던 우리의 동업자 역시 필리핀을 떠난 것이 아니며, 이미 그 전부터 도박판에서 상당한 돈을 잃고 지금도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것도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처음 사업을 소개했던 한국인 브로커도, 운영을 책임질 현지인 매니저도, 일이 잘못됐을때 도와주겠다던 현지의 한국인 목사도, 현지 한인회도 저희에겐 모두 믿을수 없는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달이 휘영했던 그 밤, 그들과 저희 집 앞에서 영어로 격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몇달 전 근처 사탕수수밭에서 시체로 발견된 한인들의 소식이 떠올랐습니다. 집안에는 아직 어린 둘째가 있었고 혹시라도 저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딸아이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무도 없는 이 필리핀이란 낯선 땅에서 고아가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그밤, 저는 결심했습니다. 필리핀을 미련없이 깨끗히 떠나기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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