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연수로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학교에서는 매년마다 하는 의무 교육이라서 교육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다. 매년마다 받는 교육이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까. 심폐소생술 교육이 이렇다. 심폐소생술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하는지 이론 교육에서 잠깐 다루고 조를 이뤄 사람 모양의 인형으로 심폐소생술과 자동 심장 충격기 사용 법을 실습해보는 것이 전부다. 그날 역시 비슷하겠지. 기대감이 없었다.
심폐소생술이 생사를 가른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심정지가 되면 신체 내에 산소가 순환되지 못해 결국 뇌손상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뇌가 가장 빨리 손상되기 때문에(뇌세포가 우리 몸에서 가장 빨리 손상된다는 것은 몰랐다) 심폐소생술을 했어도 골든타임이 지나면 뇌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살렸어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은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새롭게 안 사실은. 심폐소생술 하나로 심정지 환자를 살릴 수 없다고 한다. 심폐소생술은 환자의 생존율을 유지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결국 자동 심장 충격기 사용을 위해, 전문 의료진의 도움받기 전(구급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평균 5분)까지 꺼져가는 생명을 유지시킬 뿐이다. 심폐소생술 만으로 떨어진 생존율을 다시 높이거나 살릴 수 없다는 강사의 말에 놀라웠다. 파르르 떨리는 불규칙하고 미세한 심장 박동이 있어야 심장 충격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심폐소생술은 멈춘 심장을 파르르 떨게 만드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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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은 중요하다. 더 안 좋은 상태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심폐소생술은 무엇보다 필요하다. 생사를 다투는 골든타임에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될 이유다.
교육을 들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 사회복지사 역시 심폐소생술 같은 것 아닐까. 심폐소생술은 사회복지사의 역할과 많이 닮아 있었다.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그들의 치열한, 어쩌면 죽음에 가까운, 죽기보다 더 힘든 삶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들이기에.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사람
누군가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연 사람이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사회복지사는 마음의 문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하는 일을 한다. 스스로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철저히 동굴에 있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그들에게 사회복지사는 첫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일 수 있다. 벼량 끝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자신마저 포기한 "나"를 믿어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어서가 아닐까. 물론 심폐소생술로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살릴 수 없다. 사회복지, 사회복지사의 역할도 그러하다. 사회복지사와의 관계, 사회복지 서비스, 프로그램만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요.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본인 스스로 열지 않으면 결코 열리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누구나 변화를 위한 골든타임은 존재한다
모든 질병은 치료 시기가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 빠른 치료는 생존율을 높인다. 심폐소생술 역시 5분 이내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점점 줄어든다. 사회복지사의 일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사람들(아동, 청소년, 청년, 중년, 노인 등)의 삶의 이야기는 다르다. 사회복지사가 다루는 미해결 된 과제, 욕구가 천차만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서비스나 프로그램 개입 시기, 변화를 위한 골든타임은 매번 달랐다. 시기만 다를 뿐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골든타임은 누구나 존재한다. 사회복지사는 골든타임을 알아차리는 느낌, 전략, 경험이 변화와 성과를 좌우한다. 물론 노력, 경험이 깡그리 소용없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마다 다른 골든타임의 존재를 인식하느냐에 따라 개입(상담, 서비스, 프로그램 등)에 따른 변화, 성과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도 성공이다
타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사회복지사가 겪는 딜레마가 있다. 이는 사람의 변화, 서비스나 프로그램 개입에 대한 평가다. 평가 기준에 따라 일을 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동안의 노력에 따른 변화, 성과가 없을 때 좌절하기도 하고 죄책감에 휩싸일 때도 있다. 반복되는 좌절감으로 무기력해진다. 오히려 사회복지사가 먼저 소진되어 두 손 두발 드는 사례도 많다. 누구나 자기의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 열심히 공들여서 그들과 관계 맺고 개입하지만 계획과 전략만큼 변화 없을 때 한계를 느낀다. 어쩌면 심폐소생술처럼 사회복지, 사회복지사의 노력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면 좋겠지만(내 삶의 변화도 쉽지 않은데 타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욕심이고 오만인 것 같다.) 그들의 상황과 처지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위한 골든타임은 존재한다. 사회복지사는 타인의 성장, 변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때론 그 변화가 미미해 좌절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현실과 차이나는 자신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소진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이는 타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부득이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타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분들에게.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도 큰 변화이고 성과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