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변함없이 고요하다.
오랜만이다.
고리타분한 관습들이 불쾌하게 나열된다.
나는 몇 걸음을 옮기다 이내 하늘을 올려보고야 만다.
어지럽게 교차하는 어제의 흔적에 이만 눈살을 지푸리고 만다.
걸음마다 가벼워 버거워지는 몸과 반비례하게 마음이 가볍다.
하루를 잘 견딘 몫으로 살아 있는 숨을 쉰다. 아니, 왜인지도 모르겠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에 모든 근심을 덜궈낸다.
혹한 겨울에도 풀잎 무성하던 거리는 삭막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어 낸다.
몇 년째 같은 모습으로 작은 이기심들만이 힘겹게 꽃을 피워낼 뿐이었다.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는 길이 더욱 환하게 빛난다.
반 바퀴를 돌고 나면 여전히 같은 번호를 세기 고는 제 자리를 지키는 가로등 빛에 괜히 울적해지고야 만다.
쓸만한 것들은 새로운 것을 이겨내지 못한다.
정지된 화면은 비로소 바뀐다.
작은 변화가 이리도 반가운 것인지, 몇 해가 지나서야 깨닫는다.
바짝 마른 고랑에도 생명이 움튼다.
한참이나 응시해 본다.
사람들은 소통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규칙으로 한결 가벼워진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대로 괜찮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고랑을 따라 작은 희망을 품는다.
햇살이 따사롭다.
비가 오기 전 하늘은 전조를 예고하듯 짙은 농도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기어코 지지 않는 석양빛은 맑은 컬러를 구름 위로 자아낸다.
필름을 들이대면 반드시 담기고야 마는 미지의 색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