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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 악플러입니다

자기 고백 편

by 이지속

세상에 불만이 많은 지속은 조용히 티브이를 보는 날이 없었다. 저 여배우 코가 왜 저래? 가슴 수술했네 했어. 보톡스를 너무 맞아서 표정이 부자연스럽잖아. 발연기네 어쩌네. 매체에 얼굴을 비추는 누구든 지속의 먹잇감이 되어 씹히고 뜯겼다.

한 바탕 요란하게 혓바닥으로 죄 없는 여배우를 찰지게 욕하고 나면 옆에서 그런 지속을 보며 병히는 부모의 원수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한심하단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머쓱해져 입을 다물던 지속. 그녀는 자기 안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연예인만 공격의 대상이 아니었다. 서른 후반이 되니 알음알음 아는 지인들이 잡지던 방송이던 매체에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인정을 받았는데 지속은 그 꼴을 보고만 있지 못했다. 축하의 박수 대신 기사에 싫어요를 누른다거나 걱정으로 포장한 교묘한 악플을 써 갈겼다. 기사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지인의 입꼬리가 꼴 보기 싫었다. 지속은 방구석에서 소파에 누워 채널이나 돌리고 있는데 그들은 고급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기에 그 연회장 테이블 위에 질펀한 똥을 싸지르고 싶은 심경으로 악플을 달았다.

특히 지속에게 선물로 준다던 냉장고 대신 빅엿을 날린 노처녀 원장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그녀의 소식을 들으면 주최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원이가 짱짱이로 불리던 임신 시절, 호르몬의 농간 때문인지 그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래서 새벽녘 노처녀 원장이 운영하는 학원 블로그에 악플을 달았다.

'국회의원상은 무슨? 짜고 치는 시험으로 원서비 장사나 하는 주제에'

'언제 적 수업사진으로 홍보를 하는지. 강의 연구 안 하세요?'

포스팅된 게시물에 이 같은 악플을 쓰곤 채 일분도 안 돼서 지웠다. 그러면 마음속 분노가 식는 느낌이 들어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소중한 생명을 뱃속에 품은 지속은 태교처럼 매일 새벽 원장의 블로그에 악플을 쓰고 지운 뒤 잠이 들었다.

"지속쌤 잘 지내요? 나 원장한테 이런 문자를 받았는데 누굴까요?"

과거 학원에서 일하며 친했던 동료 강사의 연락이었다. 첨부된 사진은 원장이 그녀에게 보낸 문자 내용을 캡처한 것으로 내용은 이러했다.

"쌤 오랜만인데 안부 인사도 못하고 미안해요. 내 블로그에 악플이 달려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려는데 보니까 악플러가 쌤하고 친구로 뜨더라고요.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얼마나 한심하고 찌질한 인간이길래 이러는지. 그 루저 인생이 불쌍해요."

지속은 원장이 언급한 루저 인생이란 단어가 100포인트 크기로 확대되어 폰 화면 전체를 꽉 채우는 느낌이 들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다. 그리곤 백 미터 전력질주라도 한 듯 심장이 마구 뛰며 숨이 가빠왔다. 지속은 종종 거리며 안절부절못하다 급한 대로 네이버를 탈퇴하곤 악플로 어떤 처벌을 받는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연락 온 쌤에게는 아직도 원장을 차단 안했냐며 그 여자는 원래 지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늙은 뱀이니 괜히 더러운 일에 연루되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말란 조언 아닌 조언을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행인 건 원장이 '이웃'이 아닌 '친구'라는 단어를 써서 연락 온 쌤은 카카오 스토리 친구를 맺은 이들을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카스 친구가 아닌 지속에게 먼저 연락을 준 것이었다.(코미디가 따로 없지. 지속과 쌤은 블로그 이웃이었다)

지속이 불안감을 느끼자 뱃속에 짱짱이도 불편한 듯 태동이 심했다. 지속은 배가 남산만하게 나와서 손목에 수갑을 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속이 메슥거렸다. 머리가 어지러워 휘청 거리니 주말이라 이른 저녁시간 함께였던 병히가 괜찮은지 물었다.

"병히야... 나 사고 쳤어. 경찰 조사받아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나 절대 사과는 안 할 거야 그냥 벌금 내고 전과자 되고 말지. 절대로 사과는 안 해."

지속의 말에 깜짝 놀란 병히가 영문을 물었고 지속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 동안 말이 없던 병히는 지속에게 걱정 말라고 원장이 컴맹에 기계치라며 네 악플을 증거로 남기지도 못했을 거라고 증거가 있어야 신고가 가능하다고 지속을 안심시켰다.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증거를 가지고 바로 신고하면 될 것을 굳이 교류도 없던 관둔 강사에게 장문의 문자를 남기며 도와달라니. 옳거니! 원장, 너 증거가 없구나!

지속은 쾌재를 불렀다. 그래도 약 한 달은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봐 좀 불안했다. 그리고 지속은 새벽녘 악플 달기를 관뒀지만 원장이 언급한 불쌍한 루저 인생은 맞았기에 여전히 뒷 맛은 씁쓸했다.

한바탕 소동이 휩쓴 뒤 병히는 한 번씩 악플러 관련 기사가 사회면을 장식할 때마다 우리 집에도 악질 악플러가 한 명 있는데 하며 지속을 보곤 실실 쪼갰다. 어느 임산부 악플러가 처벌받은 기사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까워라, 우리 지속이가 최초 만삭 임산부 악플러로 유명해질 수 있었는데!"

정령 지속이 유명해지는 건 범죄뿐인 건가. 지속은 깔깔거리는 병히를 보며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입꼬리가 조금도 올라가지 않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 경험은 후에 브런치 첫 게시글인 '악플러를 잡아라'소설의 모티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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