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히는 한 번씩 집에서 애만 보는 지속에게 글을 써보라고 했다. 나름 생각해서 한 말이었으나 지속은 그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다. 고만고만한 애 둘에 치워도 티도 안나는 살림살이, 마음의 여유라곤 전혀 없는데 뭐 글을 쓰라고? 창작이 똥 싸듯 나오는 줄 아나. 지속은 뼈와 살을 깎는 인고의 시간을 주지도 않으면서 글 타령을 하는 병히가 미웠다.
병히는 저녁을 먹다 말고 지속에게 웹소설 작가들이 돈을 많이 번다며 또다시 글을 써보길 권했다. 이미 웹소설에 한 번 데인 지속이 떨떠름한 반응이자 병히는 생각지도 못한 말로 지속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게이물이 제대로 쓰면 그렇게 돈이 된다네"
지속은 내가 게이가 아닌데 어떻게 알고 쓰냐고 물었더니 병히는 소설가가 꿈이란 사람이 창작을 못하면 어쩌냐면서 지속을 비난했다. 지속은 요즘 독자들은 작가보다 더 똑똑하고 잘나서 어쭙잖게 씨부렸다간 조롱의 대상만 된다고 말했지만 병히는 핑계가 좋다며 대화를 마치려 했다.
"너 나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
지속의 질문에 병히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끝내주는 게이물을 쓸 테니 네가 남자 좀 만나고 와서 쏘스 좀 줘봐. 날 위해 네 몸을 던지고 와."
병히는 붉으락푸르락 얼굴빛이 변하더니 말 같지 않은 소릴한다며 화를 냈다. 내 기분도 그렇다고. 뭘 알고 경험하고 써야지. 알지도 못하는 걸 쓰는 건 지속에게 불가능했다. 지속의 소설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에서 허구를 십 프로 정도 곁들인 이야기였다. 그저 돈돈 거리며 돈이 될 이야기를 써낼 재간이 없었다.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는구나.
지속은 머릿속이 멍해짐을 느꼈다. 흙수저 촌년으로 태어나 자라며 모난 성격으로 사람과의 교류도 적었고 학원 고인물로 청춘을 다 보낸 시시한 곁다리 인생.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세상을 욕하고 불평하는 것 밖에 없는 계집애. 어느 누가 이런 삶에 공감하고 감명받을까.
지속은 그렇게 절필을 다짐했다. 넘쳐나는 날고 기는 사람들의 수려한 글들을 읽으며 눈은 즐거웠으나 깊은 한숨만 쉬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문학의 꿈을 접고 전업주부로 주어진 하루하루를 퀘스트를 깨듯 보냈다.
"언니, 이런 공모전이 있네요. 수필 한번 써봐요."
대학원 수료 후 얻은 유일한 인맥 춘화의 연락이었다. '전국 주부수필 공모전' 모집요강을 보내주며 한번 도전해보라는 그녀의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지속이 그동안 브런치에 올린 글들에선 볼 수 없는 정제되고 다듬어진 문학적 요소를 듬뿍 넣은 에세이 한편을 완성해 응모해버렸다.
에잇, 되던가 말던가. 어차피 개털 인생 잃을 것도 없지. 쿨한 마음으로 수상자 발표일도 잊은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동상이란다. 세상에 내 수필이? 태어나서 수필은 처음 써봤는데 상을 준다고? 상금도 있었다. 상장과 수상작을 엮은 책도 준단다. 지속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렇게 지속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글로 상을 받았다. 코로나로 직접 수상은 못했지만 택배로 상장과 작품집을 받았다. 50만 원의 상금도 받았다. 세금도 좀 뗐는데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속담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380여 편의 응모작 중 10등 안에 들었으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병히가 정말 기뻐했다. 지속을 속밍웨이라 부르기도 했다.(헤밍웨이라는데 멕이는 건가?!) 병히는 이제 수필가 지속의 매니저로서 컨디션과 스케줄을 관리해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지속은 그 말을 웃어넘겼는데 병히가 진짜 일거리를 물어왔다.
"이 작가님, 건당 십만 원짜리 일이 들어왔는데 혹시 가능하십니까?"
지속이 무슨 일인지 묻자, 늦깎이 학생으로 공부 중이신 시어머니의 시 쓰기 수행평가라고. 두 편을 써주면 20만 원을 주기로 하셨단다. 대신 매니저 수수료가 5만 원이라고...
허, 참나. 지속은 어이가 좀 없었지만 일을 수락했다. 병히는 나름 유능한 매니저로 그 뒤에도 시어머니의 국어 수행평가와 숙제들을 일감으로 물어와 지속은 용돈 벌이를 톡톡히 했다.
"매니저님, 수행평가는 이제 그만하고 싶네요. 제 컨디션이 영 아니에요."
지속이 말하자 병히는 작가님을 미리 살피지 못했다며 사과를 했다.
작년에 상을 받고 몇 개월 동안 이어진 병히와의 작가, 매니저 역할놀이는 웃기고 재밌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5월에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지속은 병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병히는 지속의 필명을 엄청 궁금해했다. 도대체 브런치에 어떤 글을 올리는지 지난 몇 달을 매일같이 물었다. 제발 알려달라고 매니저가 전담 작가가 무슨 글을 쓰는지 몰라서야 되겠냐며 압박했지만 지속은 끝까지 함구했다.
"너 내가 쓴 글 보면 뒷목 잡고 쓰러져. 네 혈압 때문에 절대 비밀이야. "
지속이 말하자 병히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사람들이 나중에 나보고 웃지 않게 수위 조절해서 잘 써줘. 그리고 지속아... 너 설마 내 실명 언급한 건 아니지??"
아이고. 진작 말하든가. 이미 병히가 병히인 거 다 아는데 어쩌지?? 대대적인 이름 수정에 들어가야 하나. 근데 그럼 원글 훼손인데...?
"병히 매니저님, 걱정은 접어두세요. 지속 작가는 무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