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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Aug 13. 2021

그리운 롱 아저씨의 쌀국수

[코로나 이전에 쓴 글입니다.]

많은 미국 회사들이 그렇듯 우리 회사도 점심시간은 꽤 자유로운 편이다. 팀원들끼리 나가서 점심을 먹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간단히 싸온 점심을 혼자 오피스 책상에서 먹고 다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집에서 그 전날 미리 만들어둔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싸와서 먹곤 했다.

Hi! Nice to meet you all! My name is Long.
I know I am short, but you will call me Long anyway.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일하던 건물 2층에 위치한 B사에 새로운 엔지니어가 합류했다. Long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귀엽고 아담한 체구를 가진 롱 아저씨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아재 개그를 구사하며 순식간에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엄청난 인싸력?을 자랑했다. 아저씨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18살을 넘기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고, 30년이 넘게 미국, 독일, 싱가포르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일하셨다고 들었다.


롱 아저씨는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을 점심으로 싸와서 주위 동료들과 나눠 드시곤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12시에 모여 아저씨가 요리한 새로운 베트남 음식을 나눠먹고 후식으로 녹차를 마셨다. 나를 포함해 다들 혼자서 대충 끼니를 때우던 직원들이 이제는 다 같이 커먼룸에 모여 아저씨가 싸온 음식을 나눠먹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18살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나 입맛이 변했을 만도 한데 아저씨는 쌀국수는 물론 정통 베트남 식당에서도 보기 어려운 베트남 요리를 직접 만들어 오신다. 베트남 음식이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먹게 된 롱 아저씨표 점심 메뉴들은 하나하나 진짜 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접시를 비우게 된다.

© marekminor, 출처 Unsplash

 아저씨가 만든 음식  내가 가장 좋아했던 메뉴는 단연 쌀국수. 캘리포니아와 미시간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베트남식 쌀국수) 전문점들을 도장깨기 하듯 다녔지만  아저씨의 쌀국수는 차원이 다르다. 진짜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진하고 깊은 육수 , 그리고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갈   퍼지는 양고기 미트볼 향과  뒤를 잇는 깔끔한 고수 그리고 라임의 풍미까지 완벽하다.


아저씨는 음식이 남으면 집에 가서 남편이랑 먹으라고 손수 포장까지 해주면서 음식 값은커녕 재료값도 끝내 받지 않으셨다. 어떤 날은 예전에 같이 일하던 한국인 동료한테 레시피를 배웠다며 직접 담은 김치를 작은 유리병 가득 채워 내 책상 위에 툭 두고 가신 적도 있다. 그날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가 "Is that Kimchi? Smells funky!" 라며 슬쩍 눈치를 주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아저씨가 만든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아저씨는 미국 사람들은 이 맛을 즐길 줄 모른다며 매운 소스랑 베트남 땡초 같은 것도 몰래 챙겨주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동안 회사 빌딩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아저씨가 온 이후로 왠지 모를 안도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아저씨가 슬로우쿠커로 14시간 동안 직접 끓여 만든 쌀국수 국물이나 스프링롤 같은 것들은 집에서 매일 먹던 메뉴도 아닌데 집밥처럼 반갑고 익숙했다.


내가 다른 곳에서  오퍼를 받기 직전에 아저씨는 플로리다에 있는 회사로 이직 제안을 받아 떠나셨다. 틈만 나면 구글맵으로 플로리다에 있는 온갖 아시안 슈퍼마켓과 레스토랑 리스트를 자랑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던 아저씨는  지내실까. 오늘 문자 하나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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