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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Aug 03. 2021

코로나와 인절미

인절미를 꼭 먹어야 하는 이유는

타국에서 한국 명절을 보내는 것만큼 속상하고 외로울 때가 있을까. 추석이나 가족들 생일에 함께할 수 없어 드는 죄송스러운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 작년 구정 연휴 즈음, 이직과 맞물려 코로나가 터지면서, 집 안에만 갇혀 지내던 탓에 스트레스 레벨은 이미 극에 달해있었다.


안 그래도 저기압을 유지하던 내 기분은 연휴 전날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마치자마자 수직 하향곡선을 그리며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서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기분 전환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되려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울컥하는 마음을 억지로 삼켜가며 심호흡을 하던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인절미.


원래 떡볶이와 곱창에 들어간 떡 이외에는 쳐다도 안 보는데 그날따라 콩고물은 잔뜩 묻혀 보슬보슬 먹음직스럽고 말랑말랑한 인절미 생각에 입에 침이 잔뜩 고였다. 입안에 떡을 잔뜩 넣고 우물거리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인절미를 갑자기 어디서 구하지?


인디애나는 한인 커뮤니티가 크지 않아서, 떡집은 커녕 캘리포니아나 미시간에서 자주 애용하던 한인 마트 체인도 없다. 그래서 한국 식재료나 라면 등을 사려면 20분 떨어진 작은 아시안 마트에 가야 한다. 거기에서도 일본식 모찌나 떡볶이 떡, 떡국 떡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인절미는 팔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모짜렐라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 오소소 황금빛 콩가루를 휘날리는 인절미를 먹으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제일 만만해 보이는 레시피를 검색해 필요한 재료를 체크했다. 볶은 콩가루와 찹쌀가루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인절미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걸 지금 꼭 먹어야겠다고, 당장 재료를 사러 가자고 졸랐다. 남편은 내가 그날 얼마나 간절하게 인절미가 고팠는지 알 턱이 없었다.


"Baby, do you really want that Tteok today?... (자기야, 그거 오늘 꼭 먹어야겠어? 코로나 때문에 우리 일주일에 한 번만 나가서 장 보기로 했잖아.)"


남편이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울컥 서러운 감정이 복받쳤다. 인절미를 꼭 먹어야 하는 이유를 영어로 설명하다가 할 말도 없고 괜히 서럽고 화가 나서 눈물까지 찔끔 났다. 그깟 인절미가 뭐라고 남편한테 분풀이를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부끄럽다. 집 안에서 달리  받아줄 상대가 없으니 그 불똥이 남편한테 튄 것이다. 눈물 콧물 다 쏟고 나서야 결국 인절미 재료를 사러 나섰다. 미국 마트도 찹쌀가루 (Sweet Rice Flour)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품절. 결국 아시안 마트까지 가서 필요한 재료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도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뽀얀 찹쌀가루에 소금과 설탕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만든다. 어느 정도 반죽이 뭉치면 랩을 씌워 전자레인지에 넣고 상태를 확인해가며 3분에서 4분 정도 돌린다. 떡 냄새가 폴폴 나는 반죽을 꺼내 주걱으로 마구 치대 준다. 떡 반죽을 세게 치댈수록 점점 쫄깃해지는 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돈 주고도 안 사 먹던 떡을 이렇게라도 먹겠다고 있는 힘을 다해 반죽을 치댄다. 하얀 덩어리에 내 못난 감정을 모조리 쏟아 넣고 나니 후련해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콩가루를 넓게 펴준 도마 위에 쫀득해진 떡 덩어리를 살며시 올려놓고 납작해지도록 콩가루를 듬뿍 더 뿌려준 뒤 살살 두드려 잘라 준다. 아기 엉덩이처럼 말랑하고 뽀얀 떡 반죽이 고소한 콩가루를 만나 더욱 보들보들해진다. 콩고물에 설탕을 약간 넣어도 맛있다. 아직도 시무룩한 남편을 불러 따끈따끈한 인절미 한 덩이를 입안에 쏙 넣어준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건넨 인절미를 오물오물 씹는 남편의 표정에 미소가 확 번진다. 방금 만든 따뜻하고 쫄깃한 인절미는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내일 아침은 남은 인절미를 프라이팬에 구워서 진하게 내린 커피와 함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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