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담 Aug 17. 2021

구리 이모네 곱창

불현듯 지나간 추억과 장소, 소중했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나 음악처럼, 음식의 맛과 향도 특별했던 순간의 기억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다. 음식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유독 고삼 시절이나 재수생 시절, 그리고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그립다. 고달팠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 아마도 힘들었던 기억은 많이 희석되고, 오롯이 '꿈'이나 '목표' 한 가지에 열중할 수 있었던 뿌듯한 감정들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곱창을 맛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열다섯에 처음 곱창에 눈을 뜬 뒤 출구 없는 그 쫄깃함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중간고사를 망쳐서, 금요일이라서, 첫눈이 온 기념으로, 남자 친구와 싸워서 혹은 학기가 끝났다는 갖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며 친구들과 교복 차림으로 곱창 골목을 찾곤 했다. 나는 '이모네 곱창 본점'과 넓은 이층 홀까지 학생들로 붐볐던 '유박사 곱창'의 단골이었다.


가게 안에 들어서서 미처 앉기도 전에 이모님들의 현란한 테이블 세팅이 시작된다. 새콤한 미역 냉국과 초고추장 소스 그리고 앞접시와 곱창 먹을 때 필수인 앞치마까지 받으면 곱창 먹을 준비 끝! 꽉 끼는 하복 블라우스 팔을 겨우 들어 앞치마 리본을 동여매고 '곱창 4인분에 순대 추가'를 하면 우리의 이모님은 씨익 미소를 날리시며 병 사이다를 서비스로 주신다. 쇠 냄새 풍기는 '스댕' 컵에 사이다를 따르기도 전에 이미 달아오른 수다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곱창 볶음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링크: 망고플레이트 (https://www.mangoplate.com/restaurants/s34dyj2HwU)


알루미늄 포일이 깔린 철판 위에 곱창과 양배추, 깻잎, 당면, 떡과 순대가 수북하게 담겨 나오면 여고생들의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인생 몸무게 최고치를 찍었던 고삼 시절 찐 살들의 팔 할이 바로 이 돼지 곱창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곱창 골목 입구에서부터 고추장 양념과 각종 야채, 지글지글 고소한 돼지 곱 냄새에 좀비처럼 이끌려 정신없이 곱창에 밥까지 볶아서 먹고 나면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배가 부르다. 여고생들은 꽉 끼는 교복 조끼를 부여잡고 2차로 디저트를 먹으러 가거나 소화를 시킨답시고 노래방에 가곤 했다.


한창 푸릇푸릇한 여고생들이 어쩌다 곱창에 빠지게 되었을까. 금요일마다 교복 재킷에서 고소한 곱 냄새를 풀풀 풍기며 스티커 사진을 찍고, 노래방에 가고, 다 같이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그 동네 곱창 골목은 아직도 잘 있을까. 이모네 곱창에서 곱창에 사이다 한 잔 하며 목이 쉬도록 수다를 떨고 싶은 저녁이다.

이전 11화 코로나와 인절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