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 안의 아이를 찾아서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어릴 적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지만 지금은 반짝이는 별을 보며 위성이라고 말하곤 한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 별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아이를 떠올리게 된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소중한 아이가 생각하고 바라보았을 법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법이 없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나비를 수집하니?"라는 것을 물어보는 어른은 없다.
"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곤 한다.
본질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어린 왕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이 떠나온 별에 두고 온 작은 꽃이다.
그의 꽃은 연약한 척하며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이 많고 그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만 어린 왕자는 항상 그 꽃을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자신에게만 있는 유일한 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지극 정성으로 가꾸었던 어린 왕자는 행복했다. 그가 다른 곳에서 똑같이 생긴 꽃이 오천 개나 더 있다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는 불행해졌다.
그리곤 여우를 만난다.
그리고 길들여짐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길들여짐이 무엇이냐고 묻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대답한다.
"그건 너무 잊혀 있는 일이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넌 아직까지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꼬마들과 똑같은 꼬마에 불과해. 그러니 나에겐 네가 필요 없지. 그리고 너에게도 내가 필요 없겠지. 네 입장에서는 내가 다른 수많은 여우와 똑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만일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나에게는 네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거고, 너에게는 내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거야......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세시부터 난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네가 네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게 된 거야."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으면 안 돼. 넌 언제까지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게 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꽃에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된다.
여우는 길들여짐을 간직한 채 슬픔을 머금고 그와 작별한다.
삶이란 우리 모두 언젠가 떠나야 할 어린왕자이자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우와의 관계에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런 불완전한 관계들 속에서 때로는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내어주며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아닐까.
그 관계 속에서 '책임'이라는 것은 짐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관계를 결속시켜 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게 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한 것이다.
어린 왕자가 그 꽃을 돌보는데 시간을 보낸 만큼, 그 길들여짐에 책임이 생기는 것이 건강한 관계. 때로는 항상 그 관계가 평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관계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느 별의 허영심 가득한 허영꾼처럼, 홀로 권력의 의자에 앉아 왕놀이를 하고 있는 왕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보내느라 소중한 꽃을 돌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질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인단다."
여우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되뇌던 어린 왕자의 말에 나도 밑줄을 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