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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Apr 16. 2024

캐나다에서 휠체어를 탔더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구나

몇 년 전 자가면역 질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캐나다 헬스카드도 없어서 캐나다에서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자가면역 증상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온 몸의 근육이 다 빠져 뼈만 남은 상태였고 관절염도 심했다. 통증 때문에 물컵을 손에 들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며 혼자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다. 문앞 몇 미터 걷는 것도 하지 못할 지경이 되자 우리는 결단을 내렸다. 한국으로 가서 진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혼자 한국행을 가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더 큰 걱정은 문 앞 몇미터 걷는것도 힘겨웠던 내가 공항에서 혼자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거리였다.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지인이 내가 이용하는 에어캐나다에 휠체어 서비스가 있으니 신청을 해보면 어떠냐고 귀뜸해주었다.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는 휠체어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편이 신청을 해주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공항에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출국 당일 공항에 가서 남편과 눈물로 이별을 하고 출입국 장소로 들어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간다. 이 때부터 나는 휠체어에 앉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휠체어에 타고 가는 순간부터 그냥 하이패스였다. 출입국 심사부터 비행기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나에게 줄 서는 일은 없었다. 남편과의 헤어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뭐지?이렇게 편하게 가도 되나?' 라는 생각에 정신이 들면서 몸이 편안하니 마음도 편안해지며 슬픔이 잦아들었다.


휠체어 서비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심지어 비행기 안에 들어갈 때에도 퍼스트 클래스보다 먼저 들어갔나?(오래되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비행기 안에 가장 먼저 입장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완전히 못 일어서는 것은 아닌데.. 내가 받는 과분한 대접에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 만으로 사람들은 나에게 정말 '당연한'? 친절을 배풀었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의 눈총도, 눈치도.. '저 사람 정말 아픈것 맞아?' 라는 불편한 시선도 없었다. 내가 몸이 불편하기에 가지는 당연한 권리?와 혜택을 주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때는 몸이 너무 안좋아서 그런것에 대해 자세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감사한 마음만 들었던 것 같다.


맨 처음으로 비행기 안에 입장해서 텅 빈 비행기 좌석에 한참 앉아있었다. (그러고보니 퍼스트나 비지니스석보다 먼저 탑승했기에 혼자 오래 있었던 것 같다) 승무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전담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나의 상태를 보고, 정말 비행기를 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지금의 컨디션은 어떤지 어떤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물어봐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내가 어떻게 잘못되어서 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한국을 가야했기에 내 상황을 설명했고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비행을 하는 와중에 내내 그 사람은 나에게 와서 괜찮은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봐주었다. 나는 먹을 힘도 없어서 물만 마시고 있었다. 그 때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일을 경험했는데 일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을 본 그 사람은(이름이 캐시였던것 같다) 자신이 개인식으로 가지고 온 연어 구이를 먹을 수 있겠냐면서 따뜻하게 데워서 내가 조금이라도 먹게 도움을 주려고 하였다.


비행기 마지막 한두시간이 남아있을 때 쯤 그 사람은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는 비지니스석에 좌석을 안내해주어 내가 남은 시간을 발을 뻗고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 뒤로 에어캐나다의 충성 고객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분에게 친절 직원 상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게만 할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그럴 여력이 없었지만 이름이라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금발의 친절을 베풀었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며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다시 전하고 싶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세심한 케어 덕분에 무사히 한국 땅을 밟고 한국 공항에서도 휠체어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이상하다. 같은 휠체어인데 마음이 불편하다. 주변의 시선도 불편하다. 뭔가 내가 아픈 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더이상의 하이패스는 없었다.


어쨌든 캐나다에서 잠깐 그렇게 휠체어를 타본 경험은 왜 캐나다에서 장애 가진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는지 체감하게 해 주었다. 


단지 몸을 편하게 해주거나 혜택을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장애인을 바라보고 가지는 인식인 것 같다.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가진 장애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부일 뿐이지 장애가 그 '사람' 전체의 판단 기준이 된다거나, 그 사람의 존엄성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인 제도, 인식이 더욱 지지를 해주는 방식인 것 같다. 


그와 관련된 예로 남편이 캐나다 대학교를 다닐때 한 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귀가 안들리는 어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수업을 들었을까? 남편은 일반 이론수업만하는 전공이 아니라 컨스트럭션 엔지니어링이라는 목공 일 실습도 있는 과였다.


그 친구에게는 매 수업마다 2명의 통역관이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수어로 통역을 해주어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수없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좋은 성적으로 남편과 같은 해에 졸업을 하였다.


이렇듯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꿈꿔 볼 수 있고, 사회적 제도적으로 지원이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받는 혜택들이 당연한 권리가 되고, 사람들 역시 그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물 안 행복, 캐나다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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