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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Mar 26. 2024

스스로 행복해야 하는 곳, 캐나다

스스로 행복해야 하는 곳, 캐나다. 부정적인 의미일까, 긍정적인 말일까.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보겠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한국의 생활과 비교해 볼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심심할 겨를이 없다. 딴 생각할 겨를도 잘 없다. 눈을 뜨면 일어나 머리를 감고 출근 준비를 한다. 집에 있는 밥을 대충 먹고 지하철을 타러 열심히 걸어간다.


지하철을 타서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나를 비롯한 비슷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다 부족한 잠을 잠깐 청한다. (어느순간부터는 모두 폰을 보고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출근과 동시에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친절한 말씨와 웃음과 프로다운 몸놀림만이 나의 하루를 빨리 가게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케어를 한 환자들의 감사한 인사 한마디가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출근해서 가장 설레는 시간인 점심 식사 결정을 하고, 맛있는 점심을 후다닥 먹고나면 너무 시간이 빨리간다.책을 보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인터넷을 하다보면 그야말로 순삭 점심시간이 끝나고 느리게 가는 오후 진료가 시작된다. 


그렇게 정신 없이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에 친구와 맥주 한잔 약속이 있을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환복을 하고 후다닥 병원을 나선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맥주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 하다보면 시간은 훌쩍 가고 아쉬운 마음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집에 오면 가족과는 간단한 인사만 나누곤 티비 시청을 하고 있는 엄마와 같이 티비를 본다거나, 왜 엄마한테는 관심이 없냐는 엄마의 화를 받아주거나 이야기를 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씻고 잠자리에 든다. 대부분은 그런 하루의 반복이다. 


집에서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혼자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쌓아두고 읽다보면 어디선가 모를 자신감이 생기면서 나는 곧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곤 한다.


그렇게 생각과 비용을 모아 중국과 호주 등지에서 독립적인 삶을 보냈다.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해보니 내가 주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이루어 나가던 삶에서 무엇 하나 하고싶은데로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해야하는 것이라곤 남편의 밥을 잘 차려 주는 것이었다.(남편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욕심에서 나온 '좋은 와이프'가 되고자 하는 굴레.. 어릴때부터 뭐든 잘하려는 강박감?같은것이 있어서 더 그런듯 하다.)


나에게는 그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해내야 하는 하루 일과였는데 무언가 내가 하던 '일'이 없어지니 성취감도 없었고 밥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 지루한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한 벗들, 치킨집, 횟집, 고깃집, 김밥집, 순두부집, 자주 가던 책방, 바다의 파도소리.. 모든 것이 그리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국 나가서 먹고싶은 것들을 아이패드에 적고 있더라..


참으로 외로웠다.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참 외로웠다. 일을 하게 되어도 마찬가지였고 그 정점은 아이를 낳고 난 후에 찍게 되었다. 외국 생활 동안 한번도 그립지 않던 한국 집이 그리울 정도가 된 것이었다. 친정 가까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해 본 것 같다.


캐나다에서는 직장 생활을 해도 여가 시간이 많은 편이다. 밖에 나가서 많이 즐길것도 없고 (다 돈이다) 특히 추운 겨울이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말 그대로 나 아니면 놀 사람이 없다. 그런데 나에게 '나'는 참 대면대면한 친구였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는 알았지만 그냥 학교다닐 때 공부해서 그럭저럭 수능 쳐서 대학가서 직장 잘 다니면 그만이었다. 20대 초반만해도 독신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호주를 다녀 온 뒤로 외국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하고자 하는데로 목표를 세워서 잘 이루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참 헛헛하다. 그 헛헛함을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난 캐나다에서.. 나는 진지한 고민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가 뭘 할때 가장 행복하지? 내가 어릴때부터 좋아하던건 무엇이었지? 내가 정말 원해서 학과를 선택했다면 어떤 과를 선택했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질문들 같지만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나는 요리를 더 맛있게 하려고 노력했고, 베이킹도 시작했다. 소소하게 집을 꾸미며 정리도 더 잘 해보려고 하고 화초를 키우기도 하고 텃밭을 가꾸기도 했다. 글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직업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치위생 학과를 다녀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아니었지만(캐나다에서는 특히 좋은 직종이기에) 다시 그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싶었다.  


그러다 이전에 일평생 책 하나를 써본다면 아쉬울 게 없을 것 같다는 빛바랜 바람을 생각해냈다. 캐나다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남편이 책을 만들어 주었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많지는 않지만 소액의 수익도 내고 있다.


스스로 행복해야 하는 곳, 그 과정이 쉽지는 않고 지금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나는 이 점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너무 후회했을 것 같다.


사실 캐나다는 이민자로서 참 외로울 수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에 있었기에 나는 나와 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의 힘든 점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나와 더  잘 지낼 수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 행복할 수 있어야(자신과 잘 지내야)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고 그를 통해 사회에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도 기여할 수 있는 듯 하다. 


나는 나 스스로가 행복한 길, 글쓰기라는 것을 찾았고 나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은 여러 형태의 글들로 다른 사람에게 작은 정보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면 행복감과 보람을 느낀다. 


의욕 충만으로 시작한 브런치의 매일 연재가 버거울 때도 있지만 막상 글을 써나가면 생각지도 못한 나의 생각을 알게되어 흥미롭다. 글을 마칠 때 쯤이면 하루의 공기가 달라지는 듯 하다. 


또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역시 계속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이 기회를 빌어 부족한 글을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구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 준 곳, 나에게는 우물안 행복, 캐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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