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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Mar 12. 2024

캐나다에서 길 건너는 법

차가 서서 부담스러워요

한평생 차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또 차가 오면 먼저 차를 보내고 길을 건너는데 익숙한 나였다.


캐나다에 와서 길을 건널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다름' 중 하나는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사람이 길가에서 건너려고 '폼'을 잡고 있으면 무조건 멈춘다. 어떤 때는 건너려고 한 것도 아닌데 차가 멈추어서 '폼'을 잘 잡아야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예 차가 오는지 보지도 않고 길목에 들어선다. 그만큼 차가 먼저 멈추어 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고속도로같은 넓은 도로가 아니라 동네 길에 한해서이다.) 


한번은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가려고 2차선 도로에서 길을 건너려던 참이었다. 당시 하교 시간이라 아이를 태우러 오는 차들이 줄지어 오고 있던 찰나였다. 아이를 항상 우선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나는 당연히 차를 먼저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차가 우리 앞에 멈춰서서 가지를 않는다. (횡단 보도가 아니었다) 뒷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상황에서 우리를 건너라고 차가 멈춰 섰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미안한 마음에 먼저 가라고 하는데 그 사람도 끝까지 기다리며 오히려 우리가 길을 건너지 않는것에 대해 언짢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약간 '저 엄마는 도대체 왜저러는거야?' 이런 느낌이랄까..

본래는 그 상황에서 차도를 건너가려 하면 안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이곳은 반대이다. 


만약 아이와 엄마가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앞에 차가 쌩하고 지나간다면 100%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지탄받을 만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 100에 1명이 있다면 아주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이민자이거나 진짜 그 사람을 못 보고 지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캐나다에서 '사람 먼저'인 문화는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불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차보다 사람이 먼저는 참으로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보니, 표면적으로는 사람이 차보다 먼저 길을 지나가는 문화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이와 길을 지나갈 때 버스까지 멈추어 주는 경험을 했었다. 그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단지 '사람이 차보다 먼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나와 내 아이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고 하루를 살아가는 소소하지만 큰 응원이고 위로였다. 


그것은 나의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와 내 아이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방식, 다른 아이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차를 몰고 가다 아이와 사람이 있으면 멈추는 것 뿐 아니라, 길을 지나가는 가족을 바라보며 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잠깐 멈추어 선다고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내가 손해보는 것도 없었다. 그 사람들을 뒤에 두고 먼저 빨리가야 할 이유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고맙다며 손을 흔드는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볼 때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길을 건널 때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서 언급했던 '개인주의'와 연결되는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차가 내 앞에 서서 부담스러운 나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물 안 행복 캐나다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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