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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Mar 18. 2024

캐나다에서 '가족'의 의미

일반적으로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에게는 가장 사랑하면서 가장 아프기도한 단어이다.


SNS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가족들을 사랑하지 마세요.' '나랑 안맞는 가족 때문에 괴로울 때' '엄마를 잃어야 내가 산다'

와 같은 제목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을 보면 '가족'은 나에게만 아픈 단어는 아닌 것 같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맞벌이를 하시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님 밑에서 우리 가정은 그렇게 화목하지 못했다. 나는 어릴 때 모든 가정이 다 그런 줄 알았고 세상에 화목한 가정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서면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모두 애증의 관계일 수 밖에 없으며 가족끼리 애정 표현을 한다거나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친구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 친한 언니가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으며 진실되지 않은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화목한 모습의 가족을 보더라도 그것은 연기일 것이며 집 안 사정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족'의 테두리에서 나는 빨리 독립을 하고 싶었고, 사실 여기 저기 떠돌이 생활을 한 것도 그 이유가 크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지만 집에 돌아가면 상황은 또 도돌이표였다. 결혼 전에 여자 혼자 따로 사는 것에 대한 '편견'에 나 역시 감히 한국에서는 도전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고 캐나다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사는 '가족'들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다. 나의 '정상적인 삶'의 기준으로 보면 '비정상적인 가족'들이 많다. 어릴때부터 귀함과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자란 자녀들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또 너무 이쁜 자녀들을 낳아서 조부모의 지원과 사랑을 받으면서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이런 현실이 있다는 것이 나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나는 저녁시간이나 휴일이 되면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더 재미있고, 그것이 일상이었다. 나에게 이 곳 사람들의 가족 위주의 여행, 식사, 휴일 보내기 등은 유난스러웠다.


캐나다에서는 가족의 일이라면 거의 회사의 눈치를 보는 일이 없다. 회식도 야근도 거의 없지만 엄마가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야근하고 회식하고 들어온다는 것은 여기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 학교도 가족 여행으로 빠지는 일도 다반사이다. (다음 학년 올라가기 위한 출석 일수에 무리만 없다면 아무런 터치가 없다) 심지어 근무 시간도 아이를 픽업해야 한다면 매니저들이 별 말 없이 사정을 다 봐주거나 스케쥴을 조정해준다.


회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혹은 연말에 가족들까지 모두 함께 회사에서 초대하는 식사 자리도 있는 편이다. 그만큼 모든 사회의 패턴이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데 그 개인의 삶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곳에서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보통 한 평생을 같은 도시에 살거나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함께 사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루하게도 느껴졌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캐나다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게 되면 거의 조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같은 집이 아니고 가까운 동네 혹은 도시) 그렇게 하여 가족들끼리 함께 자주 모이고, 여행도 가고 아이도 봐주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조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데에는 조부모의 삶도 있다. 그분들 역시 자신들의 삶에서 포용이 되는 한에서 아이들도 봐주고 또 자신의 삶도 즐기시는 듯 하다.


캐나다에서도 물론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혼이 매우 흔해서 재혼한 가정도 많으며 그로 인해 각 부모의 아이들이 만나서 함께 살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을 중요시하고 가족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화목하게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정말 많은 희생들을 하며 살고 있는데도 때로는 그것이 진정으로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거나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워 상처로 남아 애증의 관계로 변하기도 한다.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같은데 차이점은 뭘까? 사회적인 시스템과 문화의 차이도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근본적인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하는 것의 유무가 아닌가 싶다. 


캐나다에서는 어릴때부터 아이와의 대화가 정말 자연스럽고(집 안에서 뿐 아니라 학교나 어딜 가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다) 저녁 식사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며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부부들도 서로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대화를 많이 한다. 


서로에 대해 이해가 많아질수록 당연히 오해하는 폭도 줄어들고 애정의 깊이도 깊어진다. 그것이 화목한 가족의 비결이 아닐까.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아이가 자랄 수 있고, 그 아이가 자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새로 알게 된 '가족'의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우물의 한 부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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