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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Jun 09. 2020

아기 없이 살기로 했다

파란만장 난임극복 이야기 열한 번째

  10번 이상의 인공수정을 하고 6번의 유산. 그리고 4번의 시험관을 하고 나서 우리 부부는 아기 없이 우리 둘이서 알콩달콩 이쁘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힘든 상태였고 양가 부모님께서도  많이 했던 시술로 인해 내 몸이 너무 상하니 그냥 둘이서 재미있게 이쁘게만 잘 살라고 하셨다. 


 특히나 남편은 내가 시술하는 것을 더 이상 옆에서 못 봐주겠다고, 내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자기는 딱히 아무것도 해줄 것도 없고 도와줄 것도 없는 게 더 속상하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남편의 그 마음을 알고 나서 우리 부부는 아기 없이 살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회사 근무처가 서울에서 용인으로 발령이 나면서 공기 좋고 조용한 집으로 이사를 한터라 우리 부부는 새로운 마음으로 잘 살아보자라고 한 번 더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꼭 해보고 싶었던 강아지를 키우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둘 다 강아지를 무척 좋아해서 파양 된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닥스훈트 믹스견이라 성질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매일 같이 산책도 다니고 놀아주면서 우리 부부에겐 힐링이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리고 오빠의 딸인 세상에서 하나뿐인 조카가 그 당시 7-8살 즈음이었는데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놀다 가고 방학을 하면 방학 내내 있다 가고 하는 등 나름 바쁘게 잘 보냈다. 조카가 돌 즈음에 오빠가 이혼을 하면서 친정엄마와 내가 거의 딸처럼 키우다시피 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다시 또 말하지만 니 몸이 상할까 봐 더 이상 못 봐주겠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시술하지 말거라. 우리는 손자, 손녀 다 필요 없고 너희 둘만 재미있게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면 된단다. 그런데도 네가 도저히 포기가 안된다면 언제든지 지원해줄 테니 다시 시도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얘기하렴."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사실 시어머니도 아이를 더 갖고 싶으셨는데 남편을 낳으신 후 양쪽 나팔관에 자궁외 임신이 두 번 되면서 두 쪽 모두 나팔관 절제를 하셨고 그래서 무녀독남인 남편 하나를 키우셨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그 당시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주셨던 것 같다.


  아기 없이 살기로 했는데 포기가 안 되는 그 마음을 말이다.

임신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임신은 되는데 유지가 안 되는 것이고, 이상하게 인공수정은 잘 되는데 임신 확률이 더 높은 시험관은 왜 네 번 다 실패인지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다니던 난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시험관 4차까지 하고 남아있던 수정란을 냉동해 둔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마지막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조용히 예약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우리가 키웠던 강아지 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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