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님은 이번 입원으로 어떤 게 달라지면 좋겠어요?"
"살아도 되겠다.. 안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어요. 사는 게 당연해지면 좋겠어요."
기대는 안 했다. 굳이 나아서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아무 의지가 없었던 나에게는 나아져야겠다는 치료 의지만 생겨도 큰 변화였다.
"자해 자살 충동이 언제, 왜 들었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내 안에 누군가들이 다 날 죽이려는 것 같고,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것 같아요."
해가 지는 걸 보면 묘하다. 사라지는 존재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큰 빛을 내뿜는 노을이 슬프게 좋다.
살아있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죽고 싶게 만든다.
외로울 때는 더 죽고 싶다.
그냥 죽어 사라지고 싶다.
가장 무서운 지옥은 견딜만한 지옥이라던가, 왜냐하면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할 테니까.
이 기분을 잠깐이라도 환기해 주던 건 사랑이었다.
2016년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한테서 모든 나쁜 짓은 다 당한 후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2020년 폐쇄병동 퇴원 후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행복해하는 내 모습은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행복은 불행의 예고편이다.
희극이 가장 아름다울 때 막을 내리듯이 그건 내게 너무 분명하게 존재하는 삶의 법칙이었다.
사랑을 시작하니 자해나 자살 생각이 끼어들 틈이 옅어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응급실은 자주 들락날락했다.
이루지 못할 욕구로 가득 차 있는 상태는 사랑이든 죽음이든 똑같이 고통스러웠다.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 강아지들이랑 있는 게 행복한데 하나도 안심되지 않았다.
내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며 다 앗아갈 것 같아서 불안함이 더 커졌다.
행복과 불안은 늘 함께 자랐다.
'아 우울하다.
웃고 있어도 진짜 웃는 건지 모르겠다.
나아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행복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사라질 것 같아서 자꾸 무섭다.
사랑은 자해야.'
그걸 현실로 마주하니 걱정은 결국 확신이 됐다.
나는 불행을 낳는 거위였다. 매일 알을 낳듯 불행을 품고 따뜻하게 품어 부화까지 시켰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자책감이 가득 차올랐다.
밥은 안 넘어가는데 수면제는 잘 넘어간다. 깨어있는 시간이 괴로워서 하루에 몇 번씩 약을 집어먹고 잠만 오래 잤다.
자는 게 살아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행복을 빌려주던 사람은 있었지만,
결국 갚아야 했다.
아무 조건도 없이 그냥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좋은 마음 하나로 서로를 자기보다 위해주는 그런 관계라니 얼마나 대단하고 신기한 일인가.
내가 생각하는 연애란 그런 거였다.
나를 위해 살지는 못하지만, 내가 죽으면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너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존재의 이유가 되며 이런 감정만 느끼며 살 수는 없을까.
사랑하는 사람만 옆에 있다면 난 더 두려운 것도 없고 불행한 것도 없을 텐데.
숨만 쉬고 있어도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면 죽지는 않을 텐데.
내 행복을 빌어주고 날 아껴주는 사람이 있을 때는 큰 치유를 받기도 했지만, 사랑은 자폭하는 다이너마이트라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없다.
우울증인건 운동 안 해서 그래~라는 말에는 특출 난 유명 운동선수들도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한 사례가 있다고 답을 할 수 있는데, 사랑 못 받아서 그래~라고 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한 때 다녔던 정신과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자해를 해대는 이유에 대해 귀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상담하다가 엉엉 울었다.
그래서 나를 귀하게 여겨 주는 사람에 목을 맸구나 싶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더 이상 내 마음을 낭비하지 않아야지.
나는 나 스스로 귀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