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을 하는 틈에 오늘 점심의 주인공이 되어질 식당을 찾았다. 차로 1시간 내외의 거리가 기준이다. 공주를 지나 청양까지 가는 코스가 괜찮아 보였다. 고속도로를 타면 65km에 50분, 무료도로는55km에 70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고속도로는 풍경을 볼 게 없으니 무료도로를 선택했고, 가는 내내 앞차 뒤차 없이 황제골프를 치듯 나 혼자 달렸다.
오늘도 140km를 식당공부에 썼다.
4시까지 문 여는 식당이라 궁금했다.
돼지고추장찌개와 닭도리탕을 팔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고추장찌개만 판다는 것도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시골마을 깊숙이에서 찌개 하나로 어떤 장사를 하고 있을까 기대가 컸다. 깜빡 한눈을 파는 사이에 다 가서 진입로를 놓쳤다. 유턴을 할 것을 다른 길이 있겠지 했더니 야트막한 산을 넘어야 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만한 외길의 흙길은 초보에겐 난감했다. 하마터면 또랑에 바퀴가 빠질 뻔도 했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은 정말 운수 없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짧은 영업시간이야 말로, 최고의 호객 포인트다.
시골집이었다. 사람이 사는 집과 식당으로 쓰는 집 2채가 붙어 있었다. 봄이면 잔디가 파랄 마당을 두고 ㄱ자로 두채의 집이 있었다. 도착한 시간은 1시40분이었다. 마감주문인 3시까지는 여유가 있었는데, 기다리라고 했다. 설마 이 시간에도?라고 놀랄까 했는데 가게 안을 먼저 본 아내가 “상을 치우지 못해서 기다리래”란다. 들어가보니 테이블은 겨우 5개다. 우리보다 방금 전 들어온 어르신 두분이 한 상을 기다리고 있었고, 3개의 테이블은 치우지 못한 상태였다. 부부 둘이 가게의 전부였다. 아내는 만들고, 남편이 치우는 역할이었는데 아저씨의 손이 느렸다. 아니, 일부러 빠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듯 치울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느린 손에 비해 말은 가까웠다. 왜 이렇게 식사가 늦었냐고 먼저 물어주었기에 멀리서 왔다고 대답을 했고, 어디냐는 질문에 유성이라고 하자 유성은 먼 축에 못든다고 농을 걸어왔다. 처음이냐 재차 물었고, 그렇다는 말에 맛이 없으면 돈 내지 마시라고 당부 아닌 당부를 했다.
소중대가 아니라, 돼지 한마리 두마리로 표현했다. 웃음이 나온다.
사람은 척 보면 안다. 맛없으면 돈 내지 말라는 걸 다큐로 덤비는 사람과 변죽의 재미로 웃어 넘기는 사람 구분 정도야 아저씨의 60년 인생에 척하면 착,일 것이다.
푸짐했고, 정말 맛있었다.
반찬이라고 할 것도 없는 3가지 반찬은 그냥 그랬다. 기대도 없었고, 확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다 끓여서 나오는 고추장찌개가 궁금할 뿐이었다. 청양 동네분인 옆 손님도 “유성에서 온 보람이 있을 거에요”라고 식당의 편을 들어주었다. 고추장찌개는 푸짐했다. 2~3인분으로 표시한 대로 3명이 먹으면 적당할 양이었다. 특히 밥맛이 좋았다. 아저씨는 한번 더 “우린 좋은 쌀로 조금씩 밥을 지어요”라고 하셨고, 옆 테이블 아저씨는 함께 온 상대편에게 “여기 밥 남기는 거 아주 싫어해. 본인이 지은 쌀로 밥을 하거든”이라고 하셨다.
고추장찌개를 먹다가 아내가 “어머님이 고추장찌개 잘 하셨는데...”라고 운을 띄우는 바람에 느닷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벌써 엄마와 헤어진지 11년이니, 한 집에서 함께 살았던 28년에 반이 되어가는 헤어짐이라 헛헛했다.
얼마전까진 대표메뉴를 더 팔았고, 부메뉴까지 팔았었다.
사라진 메뉴가 뭔지 과거의 리뷰를 살펴보니 닭볶음탕이 지워졌다. 중 35,000원, 대짜 45,000원이던 닭볶음탕을 빼고 오직 고추장찌개만 팔고 있었다. 부부 둘이서 하는 식당에 한가지 메뉴면 다행이다. 그래야 한다. 두가지도 버겁다. 부부 둘이서 하기엔 진짜 잘하는 메뉴 하나여도 된다. 테이블 5개짜니 내집 내식당에서 그렇게 소문을 내는 것이 옳다. 고추장찌개 소짜를 팔아도 3만원이다. 닭볶음탕 중짜를 팔지 않아도 매출은 다름이 없다. 게다가 4시까지의 영업은 정말 잘한 결정이다. 그런 특징이 없었다면 유성에서 굳이 청양까지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4시까지의 영업이니, 유성보다 더 먼 곳에서도 손님이 오는 식당이 되었다는 걸 주인은 몸소 깨달았다. 테이블 5개에 평균 3.5만원이라고 치면 1회전에 20만원, 4시까지 3회전을 돌린다치면 하루 60만원의 매출이다. 보수적으로 잡아서 50만원이라고 치자. 재료비와 광열비만 들어가는 지출이니 하루 30만원은 어찌저찌 남을 것이다. 한 달이면 900만원이다. 매주 하루씩 쉰다고 쳐도 6~700만원의 소득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골 내 집에서 / 한가지 단일 메뉴로 / 점심 장사만 하고서 6~700을
부부가 벌어낸다면, 남편은 대기업 30년을, 아내는 교직에서 30년을 근무하면서 부은 연금을 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소리 없이 강한 식당. 의미 있게 강한 노후. 그런 식당을 차리는 것이 도시에서 액자노릇과 월세 노예살이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거듭 알리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