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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한나 Mar 28. 2023

강남 대저택에서 열리는
금요일 밤 3대3 파티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에

1. 못 지내

새학기 학생들의 패션은 대체로 다채롭다. 어쩌면 내가 너무 구질해서 상대적으로 그래 보이는지도 모른다. 노숙 10일째다. 3월 2일 발표가 난다던 기숙사 추가 모집 발표는 결국 불합격이었다. 이젠 지낼 곳도 없고 지내려했던 곳도 없어졌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젠 본격적으로 살 집을 구하면 되는 거다. 이제 자취 생활 시작.


집도 스마트폰으로 구하는 시대, 어플을 깔고 매물을 찾아보았다. 새학기라 그런지 매물들이 너무 비싸거나 멀거나 구렸다. 그렇게 시작부터 좌절되는 자취생활. 그러다가 노숙 10일차까지 왔다. 장이 꼬이고, 썩은 내가 난다. 살갗은 눅눅하고, 옷천이 닿을 때마다 소금기 바스락 거리는 감촉이 그대로 느껴진다. 가방엔 짐이 하도 많아 어깨가 주저 앉아버렸다. 너무나 지친다. 이마저 청춘답다고 할 수 있을까. 두 자릿 수까지 접어든 노숙생활은 더 이상 낭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방을 구하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한다. 모텔은 비싸고, 어디 저렴한 고시원이라도 들어가서 살기엔... 더는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괜찮은 매물이 나오겠지, 오늘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피씨방, 사우나, 화장실, 학교 건물, 아주 가끔은 낯선 여자집... 내 잠자리는 참 많다.



2. 금요일 밤의 파티

노숙 12일째, 3월 둘째주 금요일. 데이팅 어플에 메신저가 왔다. 이전에도 몇 번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인데 대뜸 오늘 밤에 술자리가 있는데 올 테냐고 묻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집에서 열리고 마실 술만 사오면 된다며, 남자 셋과 여자 셋이 모이기로 했는데 남자 하나가 빵꾸를 내서 부르는 거라고 한다. 다들 2030 나이대에 전에 본 적 없는 사람들이고, 다들 자기 짝 찾으러 모인 자리니까 나도 좋아할 거라며 어필했다. 이상한 사람 아니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고민 좀 하겠다고 했는데 대뜸 주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강남 서초, 밤 10시. 올 거면 오란다.


부동산 매물들을 알아보고, 대학교 온라인 강의와 창업 관련 작업들을 끝마치고 보니 9시쯤 되었다. 잘 곳도 할 것도, 뭔가를 할 힘도 없어서 가장 싼 맥주 몇 캔과 젤리 하나 사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3. 대저택

굉장히 큰 저택이었다. 재벌이나 사는 그런 집 말이다. 초인종 누르기도 겁이 날 정도였다. 대문을 지나 정원을 거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리모콘으로 작동하는 건지 모두 자동으로 열렸다. 내부는 더 웅대했다. 올 화이트 대리석 벽들... 나는 너무도 누추한 몸을 끌고 거실로 향했다.

"오셨네요?"

어플에서 봤던 그 여자가 인사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화려했다.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남자 둘과 여자 셋은 이미 한참 전에 온 듯 익숙하게 앉아있었다.


"저기 화장실 좀 먼저 다녀올게요."

"아, 화장실은 저기에요."

"완전 자기 집인줄~"

"아니, 화장실 가고 싶대니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다듬고 발을 씻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땀에 절은 발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 양말은 도저히 다시 신을 수 없을 거 같아서 패딩 주머니 속에 넣었다.


4. 3대 3

"양말도 벗고 오셨네?"

가운데 앉아있던 남자 A의 말에 "원래 남의 집 올 때는 더러운 양말은 벗는 거라 배웠습니다." 라고 나름 센스있고도 점잖게 답했다.

"이게 뭐야, 필라이트? 와 진짜 오랜만이다."

테이블 위에는 내 초라한 맥주와 다르게 감바스 등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요리들과 와인이 놓여있었다.

"이거 한 1500원하나?"

"왜 그래~ 학생이잖아 대학생. 나도 저 나이 땐 저런 거 많이 먹었어."

그 남자 A는 계속해서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고 나는 일일이 다 대꾸하진 않았다.


"와줘서 고마워요. 내가 불렀어. 앉아요 어서."

여자 셋, 남자 셋은 나란히 앉았다.


끝자리의 남자 B가 손을 건네며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내가 허락했어요."

외모는 30대 중반정도인데 목소리랄까, 제스처랄까 굉장히 신사적이었다. 그 이상의 나이대로 보이는 품격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엉성한 악수를 한 뒤 여섯은 건배를 했다. 와인잔들 속에서 나 혼자만 맥주 캔인게 좀 웃겼다.


"재밌는 시간 보내다 갔으면 좋겠네요, 외로운 사람들끼리."

그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5.  맹수

내용만 보면 굉장히 정상적인 술자리였다. 다만 여자들은 하나씩 겉옷을 벗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명품 지갑을 꺼내고 명함을 건네기도 한다. 사냥감을 포착하기 위해 각자의 무기를 드러내고 타이밍을 보는, 이 젠틀하면서 야생적인 분위기가 음흉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속에서 내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 B는 이 큰 집을 가졌고, 남자 A는 두꺼운 팔뚝과 명품 자동차를 가졌다. 그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밀리기 마련이었다.


"친구는 뭐해요? 24살이랬죠?"


그러다 한 번씩 어플녀가 내게도 질문을 해주었다.


"네"


"군대다녀왔어요? 24살이면 다녀왔겠다. 그죠?"

"네"


"군대 다녀오고는? 학교 다녀요? 대학생?"

"네"


자기가 묻고 자기가 다 대답한다. 내게 주어진 대화의 가닥이 그렇게 끊긴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 수상한 대저택의 전략인가? 혼자 술 마시게 만들어서 취하게 하고, 장기라도 털어가려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덮쳐서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뭐해요?"

끝자리 남자 B가 물었다.

"네?"

"그래서 뭐하냐고요."

"대학교 다니죠."

"그거 말고요. 그냥 대학만 다녀요?"


이미 지나간 화두를 물어잡는 B가 조금 께름칙한 동시에 반가웠다. 그래도 호스트라고 챙겨주는 건가...


"저는... 창업을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내게로 돌아왔다.

"무슨 창업? 구멍 가게라도 내게?" 뭔가 비아냥대는 듯한 말투로 끼어드는 남자 A를 딱 잘라섰다.

"아뇨. 다른 거요."


"뭔데요?" 남자 B가 물음을 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맹수처럼 뚜렷해졌다.

"노트를 만듭니다. 자기계발과 관련된 노트요."

"다이어리 같은 건가요?"

"일종의 다이어리인데, 조금 특별한 다이어리에요."

기회는 언제든 오는 법이야, 다만 그것은 깃털처럼 아무 기척 없이 내려와 바람 불면 순식간에 떠나버리지-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자신을 사업가라고 소개했던 B, 놓치면 안 될 기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당장 가방으로 달려가 내가 만든 노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더욱 집중되었다.


"제가 만든 노트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100일 동안 100번 새기는 노트에요. 그렇게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히 새기는 거죠."


남자 B는 천천히 노트를 살펴 보았다. 종이를 세게 쥐어보기도 하고, 안의 내용들을 유심히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곤 짧게 물었다.

"왜 만들었어요?"

기회의 기척을 확신하게 되는 물음이었다.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고 묵직한 한 마디를 뱉었다.


"복수하려고요."


정적 속에서 뚜렷한 눈동자들이 뚜렷이 느껴졌다.


"너무 많이 졌어요. 너무 많이 무시 당했고, 너무 많이 죽었어요. 이제는... 이제는 정말 이겨보려고요. 매일 한 줄 한 줄 새기면서 끝끝내 이뤄내 보려고요.


저는 여러분들을 매우... 동경해요. 여러분들의 현재는 너무나 멋지고 풍족해보이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패배했던 경험들이 있을 거잖아요. 지금의 화려한 모습들은 그 비릿한 패배들을 홀로 삼켜내면서 끝까지, 미친놈처럼 몰두했기 때문일 거예요. 저 역시 그런 미친놈 중 하나로서, 저처럼 어두운 골방에 쪼그려 앉은 채 우주를 꿈꾸는 다른 미친놈들을 돕고 싶어요."

사뿐히 쏟아지는 기회의 정적.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남자 A가 나지막이 뱉었다.

"흥, 미친놈." 그 칭찬은 무시하고 수습하듯 말을 이었다.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오랜만에 말하니 좋네요. 모두 건배나 할까요?"


짠-


6. 역전

이제는 전세가 역전 되었다. 관심이 내게 쏠린 것이다. 혼자 창업하는 거냐? 가격이 얼마냐?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 이런저런 질문들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물론 그것이 나를 유혹하려는 것은 아님을 안다. 기특해보였거나, 상품이 매력적으로 보였거나... 그런 거겠지. 하지만 그런 관심들이 전세를 역전 시키기엔 충분했다. 이젠 남자 A가 방금 전의 나처럼 놓였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 술을 연거푸 마시는 것.


남자 B가 A에게 눈치를 주었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이거 놔."

그러면서 A는 그 잔을 완전히 비웠다.


"씨발, 그까짓게 뭐라고."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좋냐?"

남자 A가 나를 건들면서 건들거린다.

"좋냐고. 여자들이 관심가져 주니까 좋냐?"

"진정하십시오."

"진정은 지랄. 야, 쟤는 내가 찍었으니까 딴 년 아무나 데리고 나가."

남자 B가 이 진짜 미친놈을 좀 진정시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손으로 이마만 감쌀 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왜? 모텔 갈 돈이 없어? 시발. 꼬질꼬질한 새끼가 말만 번지르르해가지고..."


자격지심. 나 역시 많이 느껴본 감정이고, 내가 누군가 그렇게 느끼게 한 적도 있다. 굉장히 익숙하지.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한 대 치게? 시발 키 크면 다냐?"

남자 A가 반격이라도 할 듯 따라 일어서려 할 때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까불었네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남자 A는 당황하다가도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 이 새끼 이거 웃긴 놈이네. 봤어? 봤어? 이 새끼 진짜... 남자 새끼가 자존심도 없나... 하, 시발 진짜 좃밥새끼..."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다시 여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내가 진짜 시발... 요즘 젊은 새끼들이... 이렇게 좃도 아니면서..."


분위기가 한 순간에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내가 말했던 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 나는 그대로 숙인 허리를 바로하고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하며 거울을 마주보는 동안 남자 B의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아니 왜 다들 말이없어 시발, 분위기 왜 이래? 자, 다들! 건배!"


"야! 왜이래! 돌았어? 건배하자니까!"


그러고는 한동안 잠잠했다. 상황이 어느정도 진정된 것을 감지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여자들은 각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고, 남자 둘은 사라져 있었다.

"어디... 갔나요?"

어플녀는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턱 끝으로 어느 닫힌 방을 가리켰다. 굳게 닫힌 문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러곤 몇 분 뒤 두 사람이 천천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어나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남자 A가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그러곤 말 없이 짐을 싸서 나갔다. 그가 찍었다던 여자 A도 주섬주섬 옷을 껴입더니 따라 나갔다. 예민한 탓일지 모르겠지만 여자 A가 나갈 채비를 하기 전, 남자 B가 눈짓으로 따라 나가라는 눈짓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파티는 끝났습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

남자 B의 목소리와 표정엔 자상하면서도 차가운 이질감이 들었다. 그 말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어플녀와 여자 B도 일어섰다.

"멋지더라, 꼭 잘 되길 바랄게. 다음에 또 봐!"

두 여자는 뭐가 그리 급한지 금세 나가버렸다.


7. 씻어요

2시. 생각보다 술자리는 너무 일찍 끝났다. 남은 밤은 어디서 떼우나- 막막한 현실 걱정에 한숨이 나왔다.

"혹시 내일 출근하세요?"

테이블 정리를 하던 남자 B가 웃으며 되물었다.

"네?"

"아 토요일이구나."

"하하하, 출근... 오랜만에 듣네요. 저도 주말엔 쉽니다."


"저..."

"먼저 씻어요."

"네?"

"씻으라고요."

"......"

"재워달라고 부탁하려던 거 아니에요?"

"......"

"씻어요. 씻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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